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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니왕 Oct 18. 2024

성스러운 사랑 32화

1-32화 충성

 “중대 승차! 승차!”

 눈을 금방 감은 것 같은데 일어나란다.

 “안 일어나나 새끼들아! 승차 방송 안 들리나!”

 고참들은 잠도 없는지 언제 일어났는지 벌써 출동 준비를 마치고, 입에서 쌍욕을 발사한다.

 “소대! 승차!”

 “승차!”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버스에 타면 진압복을 갈아입고, 헬멧을 무릎 위에 올리고. 각을 잡고 앉는다.

 ‘씨발~ 누가 의경 편하다고 지원해라 했노?’ 잡아서 패고 싶다.

 힘든 자세로 앉아도 엉덩이가 의자에 닿으면 졸린다.

 이리저리 눈치 보며 살짝 눈을 감다 보면 어디서 누가 때리는지 모르지만 뒤통수를 한 대 맞는다.

 “소대! 하차!”

 “하차.”

 쫄따구들은 방패 든다.

 고참들은 봉을 든다.

 분위기가 다르다.

 냄새부터가 지독하다.

 우리가 내리니 저기 끝에서 차례대로 순찰대 중대가 빠진다.

 순찰대 중대 애들이 못 막으면 우리가 오는 식이다.

 근데 여긴 학교가 아니다.

 ‘마장동 시장’ 큰 간판이 얼룩진 헬멧 사이로 희미하게 보인다.

 “씨발! 시장이다. 마장동 시장이다. 시장 사람들 철거 데모다. 조심해야 한다. 정신 차려라. 대학생 하고 다르다. 아무나 때리면 안 되고, 잘 막아야 한다.”

 내 뒤에서 진압복을 잡은 고참이 흥분했는지, 신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목소리가 들떠있다.

 뭔가가 내 앞으로 날아온다.

 나는 본능과 훈련으로 익힌 방패술로 막는다.

 그런데 방패가 피투성이가 된다.

 “잘했어. 선지다. 선지 던진 거 니가 막은 거다. 쫄지마라.”

 “네! 알겠습니다.”

 방패는 온통 피로 물들였다.

 저쪽 끝 소대에서 고함이 들린다

 “뒤로 빠져!”

 “우리 소대 아니다. 신경 쓰지 마라. 3소대 신병 새끼가 헬멧 뺏긴 거 같다.”

 뒤에 고참이 상세히도 중계해 준다.

 진압하다 보면 시위대가 방패고 헬멧이고 무작정 뺏어간다고 들었다.

 ‘씨발~’ 신병이면 내 동기다.

 걱정이다.

 한참을 정신없이 막다 보면 시위대가 물러난다.

 뒤에서 무전 소리가 대충 들린다.

 “이동하라”는 것 같다.

 한숨 돌린다.

 “잘했다. 신병!”

 “감사합니다.”

 내 뒤를 잡은 고참이 칭찬해 준다.

 우리는 닭장 버스 옆에서 두 줄로 마주 보고 줄을 서서 담배 한 대씩 핀다.

 정말 꿀맛이다.

 “아이~ 씨발~ 또 우리 소대야!”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저기 끝에서 분대장이 소대장 무전을 듣고는 “씨발 씨발”거린다.

 대충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 같다.

 2소대, 3소대 애들은 철수하고 중대로 들어가는데 우리 소대는   이동한다는 것 같다.

 “소대 승차해서 사복으로 갈아입는다. 승차!”

 “승차!”

 닭장차에는 없는 게 없다.

 간단한 사복과 운동화가 항상 있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진압복을 갈아입고 사복으로 갈아입는다.

 사복을 갈아입어도 누가 봐도 군인들이다.

 “지금 청구동으로 간다. 누가 JP 테러한다는 소리가 있어 불심 검문 및 순찰 업무가 떨어졌다.”

 소대장님은 짜증이 가득한 말투로 전달한다.

 “2인 1조로 움직이는데 조는 ‘방패와 봉’ 알지? 새끼들아! 짱박히지 말고, 무전 잘 받고 알았나?”

 “네~ 알겠습니다.”     

 

 “야~ 신병~ 전화할 때 있으면 해라.”

 “괜찮습니다.”

 “괜찮기는 빨리해.”

 내 사수 고참은 공중전화카드를 준다.

 “자~ 이거로 해.”

 “감사합니다. 근데 부산인데 괜찮습니까?”

 “하하~ 왜 이 새끼야? 내가 짠돌이로 보이나? 그냥 다 써~”

 “감사합니다.”

공중전화부스 안에 들어가서 수화기를 드는데 손이 덜덜 떨린다.

 번호를 하나씩 누르는 손은 상처투성이다.

 “여보세요”

 “충성! 아버지! 아들입니다.”

 “그래 아들 괜찮나? 몸은 괜찮나?”

 아버지 목소리 듣자마자 터져버린 울음은 멈출 줄 모른다.

 “왜? 왜 우노? 누가 괴롭히나? 맞았나? 아들?”

 “괜찮습니다. 다 잘해줍니다. 아버지는 어디 아픈 데 없습니까?”

 “그래~ 괜찮다.”

 “나도 쫌 바꿔줘 보소.~”전화기 너머로 엄마 목소리가 들린다.

 “아들아~ 있어봐라. 은진이 같이 밥 먹고 있는데 바꿔 줄게.”

 “내 바꿔 달라는데 와 은진이 바꿔 주는교?” 엄마는 고함을 지른다.

 “여보세요.”

 “은진아~ 괜찮제? 아픈 데는 없제?”

 “응~ 나는 괜찮다. 있어봐라. 어머니 바꿔줄게.”

 “여보세요. 아들~ 아이고~ 아들 괜찮나? 어디 안 아프나?”

 “괜찮다. 엄마는 아픈 데 없나?”

 “없다. 나는 세상 마 편타. 걱정하지 마라. 있어봐라. 은진이 바꿔줄게.”

 엄마는 내 목소리 한번 들으려고 그렇게 바꿔 달라고 했나 보다.

 “여보세요. 니 지금 어딘데? 이제 전화할 수 있나?”

 “아이다. 사복 근무 나와서 고참이 전화해라 캐서 하는 거다.

근데 니 괜찮제? 검사도 계속 받고 있제?”

 “그래. 안 그래도 어머니랑 검사받고 밥무고 오늘은 여기서 잘라고.”

 “잘했다. 은진아~ 내 이제 전화 끊어야 한다. 아~ 맞다. 말자는 잘 있제? 니가 좀 챙겨 주고 공부도 좀 가르쳐주고 해도.”

 “안 그래도 그리한다. 혼날라? 빨리 끊어라. 또 전화해라.”

 “응”

 그렇게 자대 와서 한 달 만에 처음으로 전화통화를 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새끼야~ 눈물이나 닦아라. 가자.”     

 

 나는 한 번의 휴가와 몇 번의 외박을 갔다 왔다.

 그사이 나는 계급도 하나 올라갔다. 그리고 나의 공주님이 태어났다. 다행히 아무도 아프지 않고 건강하다.

 중대에서 포상휴가 3박 4일을 받아서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왔다. 군 생활도 적응이 되고, 애기도 잘 크고 있다니 나는 문제가 없다.

 말자는 원하는 대학에 원하는 과에 합격했다.

 동우는 뒤늦게 공부에 맛을 들었는지 그만하면 괜찮은 대학을 갈 수 있는데 다시 삼수를 택했다.

 벌써 군대 온 지 1년 2개월이 됐다.

 시간이 참 잘 간다.

 이제 1년만 참으면 집에 간다.

 1997년 나라가 난리다.

 처음 들어보는 IMF라는 게 터졌단다.

 여기저기서 데모다.

 진짜 이때 군대 왔으면 나는 탈영을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대 내무실에서 잠을 잔 적이 1달에 5번도 안 된 것 같다.

 닭장 버스에서 자고, 지하철역 화장실에서 씻고 한다.

 고참들도 힘들어서 퍼지는데 신병들은 얼마나 힘들겠나 싶다.

 힘이 들어도, 편해도 군대 시간은 똑같이 흘러간다

 조금씩 사회도 안정을 찾아가는 것 같다.

 우리가 내무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 밖이 조용한 거다.

 

 “충성! 면회 왔는데 말입니다.”

 “면회가 왔으면 왔지? 왔는데 말입니다는 뭐고?”

행정반에 있는 놈이 뛰어와서 보고한다.

 “그게 여자인데, 형수님이 아닌 것 같다는데 말입니다.”

 “니가 어떻게 아노? 우리 와이프인지? 아닌지?”

 “정문 근무자가 무전이 왔는데 아닌 것 같다고 합니다. 키가 크고 이쁘다고 했습니다.”

 “네네. 그럼 우리 와이프는 작고, 못났네?”

 “그게 아니지 말입니다.”

 “시끄럽지 말입니다, 당직사관님한테 외출증이나 끊어놔 주지 말입니다.”

 “여기 있지 말입니다. 외박증. 당연히 형수님인 줄 알고 소대장님께서 1박 2일 외박을 주셨지 말입니다.”

 “오호~ 좋았어. 내 올 때 맛있는 거 사 올게.”     

 말자는 부대 휴게소에서 멀뚱멀뚱 있다.

 “야~ 말자야~ 가자.”

 “뭔데? 어디가? 왜 사복이고?”

 “소대장님이 1박 2일 외박 끊어졌다. 마누라 면회 왔다고 놀다 오라는데? 돈도 3만 원 주던데.”

 “무슨 군대가 이렇노? 내 올라가서 말해야겠다.”

 “됐다. 가시나야. 가자.”

 “그라고. 내가 이제 말자라 부르지 마라 캤지? 이름 바꾼 지가 1년이 다 됐다.”

 “알았다. 미안. 근데 니 서울에 무슨 일로 왔노? 내 보러 온 거는 아닐 거고?”

 “아버지가 갔다 와봐라 카더라. 사고 치고 있나 없나 보라 카던데? 괜히 왔네. 얼굴에 살찐 거 봐라. 굴려 가겠다.”

 “가시나야. 그럴 거면 은진이랑 우리 공주랑 같이 오지? 공주는 잘 있지?”

 “네네. 공주는 잘 있다.”

 “공주는? 잘 있다? 그럼 은진이는 못 있나?”

 “잘...있다.”

 “뭐지? 이 대답은? 그건 그거고 우리 뭐 좀 먹자. 내 외박이라도 내일 집회 있어서 오전에 복귀라 오늘 부산은 못 간다.”

 “부산을 왜 가노? 왔다 갔다 힘들게. 그래 뭐 먹으러 가자.”

 “가시나 이거 이거 수상한데? 니. 사고 쳤나? 오빠한테 말해봐라. 이말자 씨”

 “말자라 하지 마라 캤제?”

 우리는 가까운 통닭집으로 갔다.

 나는 가자마자 은진이한테 호출했다.

 “반반에 우리 1700하나 주세요.” 주문을 하고 얼마뒤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0000번 호출하신 분?”

 “내다. 어디야? 어딘데 이리 시끄럽노? 집 아니야?”

 “어? 근데 이 번호 뭐야? 니가 이 시간에 왜? 외출 나온 거야? 아직 휴가 3달 남았잖아?”

 “말자가 면회 와서 1박 2일 외박 나왔어. 근데 집에는 못 간다. 내일 일찍 복귀해야 돼.”

 “그렇구나. 근데 말자는 왜? 서울에 볼일 있다나?”

 “아니, 그냥 근데 니 어디고?”

 “잠시 친구 보러 나왔어.”

 “애는? 델꼬?”

 “아니. 어머님이 봐주신다고 해서.”

 “그래. 알았어. 별일 없지?”

 “응, 말자 좀 바꿔주라.”

 말자는 전화를 받고 이상하게 대답만 하고 끊는다.

 “뭐라는데? 니는 왜 바꿔달라는데? 그라고 왜? 알았다만 하고 끊어?”

 “별 이야기 안했다.”

 “수상하다. 솔직하게 말해라. 무슨 이야기 했노?”

 “아이~ 진짜 별 이야기 안 했다니깐? 근데 우리 이거 먹고 어디가노?”

 “묵고, 동대문 가서 야시장 좀 보고 자러 가야지.”

 “미친 거 아니가? 니랑 같이 자자고?”

 “가시나. 응큼하네? 으이구. 찜질방 가자. 동대문에 억수로 좋은데 있다. 부산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나는 말자가 말은 안 해도 무슨 일이 있는 거를 알 수 있다.

 끝까지 말을 안 하고 말자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돌아갔다.

 나도 부대 복귀 후 찝찝한 마음이 있었지만, 며칠이 지나니 잊어버렸다.


 ‘1998년 언제 오겠나?’했는데 왔다.

 친구 놈들은 이제 군대 가서 뺑뺑이 돌고 있다고 힘들다고 하루하루 교대로 편지가 온다.

 그리고 드디어 지동우가 대학을 입학했다.

 부산에서 제일 좋은 대학 갔다고, 아저씨가 동네 떡 돌리고 잔치했다고 한다.

 생각하면 기특하다.

 내가 아들 대학 보낸 기분이다.

 멍하게 내무실에 누워 있다.

 이제는 누워 있어도 잠도 안 오는 짬밥이다.

 “1소대 사복으로 환복하고 승차!”

 “오호~ 좋았어. 기상 기상! 빨리 사복 입고 승차!”

 선임들은 신났다.

 소풍 가는 기분이다.

 “승차!”

 “승차!”

 “잘 들어라. 지금 신당동에 신창원이가 떴다는 제보가 나왔다.

2인 1조로 순찰 들어간다.”

 “오예~ 니 돈 있나? 돈 좀 빌려도?”

 우리는 신났다. 떡볶이 사 먹을 생각부터 한다.

 “야~ 인간들아. 집에 가기 전에 신창원이 같은 놈 잡아서 포상받고 좀 하자. 아무튼, 무전 잘 받아라. 고참들은 밑에 애들 잘 데리고 다녀라.”

 “네. 알겠습니다.”

 이날이 시작이었다.

 우리는 이날부터 매일 사복 입고 대기한다.

 하루는 약수역, 하루는 한양대, 신창원이는 밤낮을 안 가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그렇게 우리는 몇 달을 출동했다.

 중대장님도 도저히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윗선에 보고 해서 우리 중대는 한 달을 긴급출동 외에는 출동을 안 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군생활을 2달을 남기고 내무반에서 늘어지기 시작했다.

 “충성! 면회 왔습니다.”

 “면회? 올 사람이 없는데? 제대 얼마 남았다고? 면회지? 여자가? 남자가?”

 “그건 모르겠습니다. 물어보고 옵니까?”

 “아니다. 내려갔다 올게. 혹시나 모르니깐 외출증 끊어주라.”

 “네! 알겠습니다. 충성”

 나는 대충 입고 면회장으로 간다.

 “오~ 박상태! 니가 어떻게 행님한테 면회를 오고.”

 “내 군대 간다.”

 “왜? 이제 가노? 그때 휴학 안 했나?”

 “응? 이번 학기까지 하고 휴학했어. 은진이가 말 안 하더나?”

 “응. 은진이가 말 안 하던데?”

 “은진이는 애 낳아도 여전히 학교에서는 날아다닌다. 역시!”

 “잠깐만. 학교에서?”

각시붓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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