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은 믿고 기다리는 것이었다.
우등생에 재치와 유머로 인기도 많았던 아들은 우울증과 함께 게임으로 빠져들었다.
불안한 마음이 왜 게임으로 쉽게 이끌리는지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현생에서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어 불안한 마음은, 내 마음대로 모든 조건을 통제할 수 있는 게임을 통해 안정감을 찾는다고 한다.
게임은 시간 낭비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게임 중독에 빠지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아이의 마음을 생각하면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어서 밤 10시까지만 하라고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11시가 되고 12시가 되고. 협상이나 거래도 결국 무너지고 속수무책으로 내가 밀렸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는 사춘기의 반항심 때문인지 새벽에 일어나 몰래 컴퓨터를 켜기도 했다. 급기야 주말에는 밤을 새기에 이르렀다.
점점 게임에 집착하다가 중독이 되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병원과 상담센터에 상의해 보았다. 병원에서는 죽을 만큼 중대한 일이 아니면 그냥 두라고 하고, 상담센터에서는 습관을 서서히 잡아가야 한다고 했다.
결국 내가 판단해야 했다. 그 판단의 기준은, 아이를 통제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아이를 지켜낼 수 있느냐 였다.
이상하게도 핸드폰으로는 게임을 하지 않았다. 폰에 시간제한을 걸어놔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폰은 거의 꺼져 있었고 집에 오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랐다. 숏폼은 안 보니 다행이라고 생각도 했다. 그런데 내가 외출해서 집에 있는 아들에게 전화를 하면 항상 받지 않았다. 그리곤 잠시 후 보이스톡으로 연락이 온다.
난 이유를 알아야 하는 사람이다. 이유만 안다면 최대한 수긍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아이는 내가 궁금한 점에 대해서는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나의 질문 자체가 아이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왜?”가 들어가는 질문을 하면 안 되었다. 모든 말에서 “왜”를 빼야 했다. 너무나 답답했지만 그냥 참고 기다리며 관찰했다.
난 묻지 않았다. 이해가 되지 않아도 공감하고, 내가 걱정되는 점에 대해서만 말해 주었다. 엄마가 사랑하기 때문에 걱정하는 마음임을 지속적으로 아이에게 전달했다. ‘죽지 않고 내 곁에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으로 아이를 ‘손님’처럼 극진히 모셨다.
시간이 지나면 퍼즐이 맞춰진다. 학교에 다녀온 물건들은 집에 오면 만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폰도 못 보고, 물병도 꺼내 놓지 못하고, 가정통신문도 보여줄 수 없었던 것이다. 책도 프린트물도 만질 수 없으니 공부도 당연히 할 수가 없다. 그제서야 나는 아이의 행동이 아니라, 아이의 세계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난 아들이 밤에 자는지 안 자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식사를 거르고 과자만 먹어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식욕이 없어서 굶을 때가 많았기에 먹고 싶다는 것이 있으면 다 먹게 해주었다. 옷이든 가방이든 이불이든 빨아 달라는 대로 빨아 주었다. 등교 후에는 난장판이 된 방과 욕실을 매일 청소해 주었다. 시험에서 50점을 맞았다고 해도 수고했다고 했다.
그냥 아들을 믿기로 했다. 믿게 해줘서 믿는 게 아니라, 내가 믿기 때문에 믿음직한 아들이 될 거라는 믿음이었다.
아들은 아주 조금씩 달라졌다. 2학기에는 반장 선거에 스스로 출마하고 당선되었다. 캡컷으로 영상을 만들고, 캔바로 이미지를 만들었다. AI도 익숙하게 사용하기 시작했다. 무엇이든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갖고 배우고 도전하는 것이 좋은 신호라고 생각했다. 무기력은 우울의 증상이니까.
기말고사를 앞두고 아들은 꼭 1년 만에 스스로 공부를 했다. 과목별로 목표 점수를 세우고, 노트 정리를 했다. 수업 시간에는 열심히 임한다고 했으니 믿었다. 결과와 상관없이 그 과정이 이미 날 감동시켰다. 아이의 마음이 회복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아들은 성취감까지 얻었기에 더 열심히 해보고 싶은 동기를 얻었다.
시험이 끝나고 학교에선 이런저런 행사가 있었다. 축구대회에서는 감독을 맡아 반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음악발표에서는 혼자만 의상과 소품을 준비하고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전교 학생에게 이름을 알렸다. 무대에서의 스포트라이트와 환호에 흥분한 아이는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다.
이렇게 얘기하면 주변에선 오염강박이 다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도 하루에 비누를 1개 정도 사용한다. 전보다 덜 씻지만, 바닥에 떨어뜨린 비누는 다시 주워서 사용할 수 없어 그냥 버려야 한다. 여전히 기분이 안좋으면 10분이상 손을 씻고, 손가락사이는 아직도 비누코팅으로 하얗다. 샤워하면서 물이 튀는 변기 뚜껑을 만지기 싫어하고 물 내리는 레버도 만지지 않는다. 그로 인해 나는 아침마다 마스크를 쓰고 욕실을 청소한다.
샤워 후에는 속옷도 입지 않고 극세사 담요를 몸에 두르고 생활한다. 방에 들어갈 때는 항상 노크를 하고 잠시 기다렸다가 문을 열어야 한다. 담요를 추스를 시간을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동 시에는 담요를 붙잡아야 하기에 한 쪽 손만 사용할 수 있다. 무언가를 옮길 때는 많은 시중이 필요하다. 담요는 항상 바닥에 쓸고 다녀 내 실내화를 자꾸 다른 곳에 옮겨 놓는다.
밤에는 노트북을 침대에 놓고 보면서 잠든다. 몇 시에 자는지는 알 수가 없다. 아침에는 일어날 때까지 짜증 나지 않게 다정하게 깨워야 한다. 가까스로 일어나면 세수도 안 하고 옷만 입고 집을 나서는 아이에게 웃으며 인사한다.
학교 교사들도 오염강박에 대한 지식이 없다. 그리고 당연히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아들의 담임은 결벽증이면 아이가 청결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그 청결의 기준이 지극히 주관적인 것임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제, 나도 아이도 담임의 이해를 바라지 않는다.
남들이 보기엔 아직도 참 갑갑한 상황일 것이다. 사실 나도 아직 많이 힘들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1년 전과 지금은 너무도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지금 행복하고, 앞으로도 행복할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