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언어권이든 사람은 '엄마, 아빠'라는 단어를 배우는 것을 시작으로 언어를 습득한다. 아이는 한번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 자기를 표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말을 한다. 이처럼 언어를 사용할 줄 아는 한 우리는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진다. 누군가에게나 나를 표현하고 싶다는 욕구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라면, 어쩌면 우연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우리는 모두 언젠가 필연적으로 글을 써야 할 운명일지도 모른다.
하루키는 소설가의 일에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을 말한 적이 있다. 그 순간은 대단하고 거창한 순간이 아니었다. 그는 아주 뜬금없게도 '야구선수가 2루타를 쳐냈던 그 순간'에 소설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하루키 같은 대가도 뜬금없이 시작하는 것이 글쓰기다. 그러니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밥 먹다 말고, 양치질하다 말고 '글 한 번 써볼까'하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내가 꾸준히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 순간은 강원국 작가님을 만나 뵌 순간이다. 나는 분명히 기억한다. 강원국 작가님은 빛나는 눈빛으로 '저는 앞 길이 무지개예요!'라고 말했다. 누군가는 환갑 즈음이 인생에 석양이 저무는 시기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강원국 선생의 눈빛은 노을빛이 아니라 새벽빛이었다. 내가 회사를 다니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 중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빛나는 눈으로'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말하기보다빛나지 않는 눈빛으로 '지금까지 한 일'을 말했던 것이다. 내가 언젠가 저 나이가 돼서도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말하고, 눈빛이 새벽빛으로 빛나려면 나도 글을 써야 하는 건 아닐까? 내게는 그 순간이 2루타의 순간이었다. '경욱 씨, 글 잘 쓸 거 같은데 계속 써요'라는 평범한 인사말이 될 수 있는 그 말이 내게 기름을 부었다. 그래서 나는 필연적으로 오늘도 글을 쓰고 내일도 쓸 거다.
글을 쓴다는 것은 온전히 나 스스로 끝내야만 하는 일이다
글은 누구도 대신 써주지 않는다. 오직 나만이 나의 생각으로 쓸 수 있는 것이 글쓰기다. 하루키는 글을 쓰는 사람에게 펜이나 키보드를 넘겨줄 불펜투수는 없다고 말했다. 글쓰기는 뇌하수체 끝에서부터 손끝까지, 온전히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내가 끝내야만 하는 일이다. 끊임없이 나에 대해 집중하고 누구보다도 나다운 방식으로 내 생각을 온전히 쏟아내기에 글쓰기는 나의 삶을 완성해가는 수련이자 과정이다.
글쓰기는 나를 나답게 만들었다. 머릿속 깊은 곳의 내 생각을 손끝까지 끌어내어 모니터로 옮기는 과정에서 나도 잊고 있던 내 생각을 매일매일 새로고침 했다. 먹고사는 일에 치여 무뎌지고 잊힐만한 생각들이 다시 내게 다가왔다. 글을 써내려 갔기 때문에 나는 온전히 나일 수 있었다. 글쓰기는 나 스스로 다짐하고 또 생각을 다져내는 일이다. 자기를 믿고 집중해서 반복하면 무한한 가능지의 세계가 열린다는 '쿠에이즘'이 글로써 실현되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삶을 함께 더 잘 살아내는 일이다
글쓰기 전의 나의 삶과 글쓰기 시작한 후의 나의 삶이 달라졌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로고스(논리), 파토스(감정), 에토스(화자)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에토스라고 했다. 강원국 작가님은 그 말을 인용하며 '결국 잘 쓰기 위해는 잘 살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글을 쓸 수 있어서 더 잘 살 수 있었고 글을 쓰기 때문에 더 잘 살고 싶어졌다.
강원국의 글쓰기에서 강원국 작가님은 글은 풍경이고 독자는 바람이라고 했다. 바람 없는 풍경은 고철덩어리이지만 바람과 함께하는 순간 풍경은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그 존재 이유를 발한다. 혼자 쓰고 혼자 읽는 글은 일기장에만 남을지 몰락도, 같이 쓰고 같이 읽는 글은 서로의 삶을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브런치라는 플랫폼이 풍경이 되려는 우리 각자에게 따뜻한 바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아직 완성된 풍경이 아니기에 부족하다. 그래서 때로는 아름다운 소리가 아니라 꽹과리 소리를 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활소음조차 잘 모이면 음악이 된다. 우리의 풋내 나는 꽹과리 소리조차 함께 모이면 나름의 하모니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 하모니가 소음공해로 남을지 아름다운 교향곡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겠지만, 우리가 이 곳에서 함께 만들어 낼 그 음악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