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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욱 Nov 02. 2019

글을 쓴다는 것

글을 쓴다는 것은 본능적이고 필연적으로 시작되는 일이다

어느 언어권이든 사람은 '엄마, 아빠'라는 단어를 배우는 것을 시작으로 언어를 습득한다. 아이는 한번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 자기를 표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말을 한다. 이처럼 언어를 사용할 줄 아는 한 우리는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진다. 누군가에게나 나를 표현하고 싶다는 욕구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라면, 어쩌면 우연한 것처럼 보일지라도 우리는 모두 언젠가 필연적으로 글을 써야 할 운명일지도 모른다.


하루키는 소설가의 일에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을 말한 적이 있다. 그 순간은 대단하고 거창한 순간이 아니었다. 그는 아주 뜬금없게도 '야구선수가 2루타를 쳐냈던 그 순간'에 소설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하루키 같은 대가도 뜬금없이 시작하는 것이 글쓰기다. 그러니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밥 먹다 말고, 양치질하다 말고 '글 한 번 써볼까'하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내가 꾸준히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 순간은 강원국 작가님을 만나 뵌 순간이다. 나는 분명히 기억한다. 강원국 작가님은 빛나는 눈빛으로 '저는 앞 길이 무지개예요!'라고 말했다. 누군가는 환갑 즈음이 인생에 석양이 저무는 시기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강원국 선생의 눈빛은 노을빛이 아니라 새벽빛이었다. 내가 회사를 다니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 중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빛나는 눈으로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말하기보다 빛나지 않는 눈빛으로 '지금까지 한 일'을 말했던 것이다. 내가 언젠가 저 나이가 돼서도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을 말하고, 눈빛이 새벽빛으로 빛나려면 나도 글을 써야 하는 건 아닐까? 내게는 그 순간이 2루타의 순간이었다. '경욱 씨, 글 잘 쓸 거 같은데 계속 써요'라는 평범한 인사말이 될 수 있는 그 말이 내게 기름을 부었다. 그래서 나는 필연적으로 오늘도 글을 쓰고 내일도 쓸 거다.


글을 쓴다는 것은 온전히 나 스스로 끝내야만 하는 일이다

글은 누구도 대신 써주지 않는다. 오직 나만이 나의 생각으로 쓸 수 있는 것이 글쓰기다. 하루키는 글을 쓰는 사람에게 펜이나 키보드를 넘겨줄 불펜투수는 없다고 말했다. 글쓰기는 뇌하수체 끝에서부터 손끝까지, 온전히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내가 끝내야만 하는 일이다. 끊임없이 나에 대해 집중하고 누구보다도 나다운 방식으로 내 생각을 온전히 쏟아내기에 글쓰기는 나의 삶을 완성해가는 수련이자 과정이다.


글쓰기는 나를 나답게 만들었다. 머릿속 깊은 곳의 내 생각을 손끝까지 끌어내어 모니터로 옮기는 과정에서 나도 잊고 있던 내 생각을 매일매일 새로고침 했다. 먹고사는 일에 치여 무뎌지고 잊힐만한 생각들이 다시 내게 다가왔다. 글을 써내려 갔기 때문에 나는 온전히 나일 수 있었다. 글쓰기는 나 스스로 다짐하고 또 생각을 다져내는 일이다. 자기를 믿고 집중해서 반복하면 무한한 가능지의 세계가 열린다는 '쿠에이즘'이 글로써 실현되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삶을 함께 더 잘 살아내는 일이다

글쓰기 전의 나의 삶과 글쓰기 시작한 후의 나의 삶이 달라졌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로고스(논리), 파토스(감정), 에토스(화자)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에토스라고 했다. 강원국 작가님은 그 말을 인용하며 '결국 잘 쓰기 위해는 잘 살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글을 쓸 수 있어서 더 잘 살 수 있었고 글을 쓰기 때문에 더 잘 살고 싶어졌다.


강원국의 글쓰기에서 강원국 작가님은 글은 풍경이고 독자는 바람이라고 했다. 바람 없는 풍경은 고철덩어리이지만 바람과 함께하는 순간 풍경은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그 존재 이유를 발한다. 혼자 쓰고 혼자 읽는 글은 일기장에만 남을지 몰락도, 같이 쓰고 같이 읽는 글은 서로의 삶을 더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브런치라는 플랫폼이 풍경이 되려는 우리 각자에게 따뜻한 바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아직 완성된 풍경이 아니기에 부족하다. 그래서 때로는 아름다운 소리가 아니라 꽹과리 소리를 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활소음조차 잘 모이면 음악이 된다. 우리의 풋내 나는 꽹과리 소리조차 함께 모이면 나름의 하모니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 하모니가 소음공해로 남을지 아름다운 교향곡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겠지만, 우리가 이 곳에서 함께 만들어 낼 그 음악을 기대한다.


어떤 소리를 내더라도 그 끝에 결국 우리는 조금 더 잘 살게 될 테니까.


같이 써요 브런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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