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팔리는 책?
대부분의 사람들이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이유는 출판된 책을 가진 진짜 '작가'가 되고 싶어서다. 강원국 선생님은 '글은 읽히기 위해 쓴다'라고 말씀하셨다. 햇병아리 주제에 도가 넘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잘 팔리는 글'을 쓰고 싶다. 글은 자아실현의 도구이기도 하지만, 일기장에 잠자고 있을 것이 아니라면 출판이란 과정을 거쳐 서점에 진열되는 순간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리는 상품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잘 팔리는 책이 무조건 좋은 책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시장성과 무관하게 순수예술 성격의 글쓰기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든 책은 출판하는 이상 팔려야 한다.
어떤 책이어야지 잘 팔릴 수 있을까? 엄청난 자본력을 투입하면 잠시 잘 팔리는 책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할 정도로 돈이 넘쳐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것이 지속적이기는 힘들다. 그러므로 잘 팔리는 책이란 어떤 이유에서든 많은 사람들이 돈을 내면서까지 살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어야한다. 그런 가치있는 글은 아마도 이 시대에 독자들이 원하는 부분을 긁어준 글이거나 이 시대상을 잘 반영한글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직 내가 책을 잘 팔아본 적은 없으니 최근 3년간 어떤 책이 잘 팔렸고 왜 잘 팔렸는지 얕게 공부한 내용을 공유하고자 한다. 이 글은 절대 정답이 될 수 없다. 다만, 브런치에 글을 쓰며 언젠가는 작가가 되기를 꿈꾸는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으로서 동료분들과 함께 고민해보고 더 나은 답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이 글을 공유할 뿐이다. (그러니 댓글로 의견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무명작가(일반인)도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2018년
3년간 베스트셀러 1위를 보면 공감과 위로의 글이 인기를 얻는 것은 여전한 흐름인 것 같다. 다만 서점을 자주 찾는 사람들이라면 이미 다들 느꼈을 테지만, 최근 3년간의 가장 큰 트렌드 변화는 '보통사람이 쓴 공감 에세이' 돌풍이다. 브런치 작가님들 대부분이 나 같은 보통사람이실 테니 '물 들어 왔습니다 노 챙기세요!'라고 외치고 싶다.
2016년까지는 유명인 위주로 베스트셀러가 형성됐다. 베스트셀러 리스트를 보면 혜민스님, 한강 작가, 설민석 강사 등 이름만 들어도 누군지 아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조금 넓게 보자면 당시까지는 무명에 가까웠던 채 사장님이 쓰신 지대넓얕의 활약이 독보였다. 하지만 채 사장님도 결국 팟캐스트로 다진 탄탄한 기반이 있었으니 따지자면 당시에도 유명 작가만 아니었을 뿐이지 나름 인플루언서(?) 내지는 유명인(?)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2017년부터는 트렌드가 바뀌어서 유명인이 아니어도 베스트셀러를 쓸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신이 선택한 책이라고까지 불리는 '언어의 온도'의 등장 덕분이다. 이기주 작가는 '언어의 온도' 출판 전까지만 해도 무명에 가까운 작가였다. 정말 말 그대로 '갑툭튀'한 그를 제외하면 2017년에도 여전히 문재인 대통령, 설민석 강사 등 유명인들이 베스트셀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책이 베스트셀러 1위가 되면서 출판시장의 큰 흐름은 이미 바뀌기 시작했다.
2018년에는 더 이상 유명인이 아니라 '우리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사랑받았다. 유시민 작가, SNS로 50만 독자를 거느린 하태완 작가, 82년생 김지영으로 대박을 낸 조남주 작가를 제외하면 베스트셀러 상위에 무명작가에 가까운 작가들의 약진이 돋보이는 한 해였다. 언어의 온도는 여전히 5위에 들 정도로 인기를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례한 사람에게~', '나는 나로~', '죽고 싶지만~'도 모두 기존에 크게 이름을 떨치지 않았던 무명에 가까운 작가들이었다. 누군가는 이런 책들의 공통점을 '가벼운 글', '인스타에 올리기 좋은 감성 글'로만 평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책들이 이토록 사랑받은 이유는 지금 '우리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2018년은 미투 운동, 페미니즘으로 뜨거웠던 한 해다. 이 책들은 단순히 힐링, 위로, 감성 에세이여서 성공했다기보다는 지금 현재 우리들이 사는 사회에서 느끼고 있던 여성들의 답답함과 갈증을 솔직하게 풀어내고 그 사회 속을 살아가는 한 여성으로서 고민한 내용을 담은 책이었기에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 독자들에게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다고 생각한다.
베스트셀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이 중에서 참고 삼을 만한 책들인 '언어의 온도', '무례한 사람에게~', '죽고 싶지만~' 각각에 대해 조금만 더 공부해보자.
1. 언어의 온도 - 이기주
이 책은 2016년 8월 출판 초기에는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하다 2017년 3월부터 베스트셀러 1위에 들기 시작했다. 출판계에 흔치않은 '역주행' 베스트셀러인 셈이다. 몇 권의 책을 내긴 했지만 무명작가에 가까운 사람이 베스트셀러 1위에 등극하고, 게다가 출판 첫 3주면 결판난다는 서점가에 역주행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등 그의 책은 도서 마케팅계 이변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워낙에 드문 일이다 보니 그의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을 여러 가지 이유로 설명한다. SNS에 공유하기 좋은 감성 글귀가 많아서, 표지가 이뻐서, 저자가 만든 출판사에서 낸 책이라 공을 많이 들여서, 저자가 잘생겨서, 저자가 기자 출신이라 아는 사람이 많아서 등등. 이렇게 이유가 비엔나소시지처럼 줄줄 나온다는 것은 그 비법을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출판계 누군가는 이 책을 신이 선택한 책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진짜 성공 이유는 신만 알지도 모르지만 이기주 작가가 생각하는 성공 이유를 담은 기사가 있어 공유한다. 그는 출간 전 크라우드 펀딩으로 출판 자금을 조달하고, 직접 전국을 돌며 열심히 홍보하고, 라디오 활동과 인스타그램 활동을 활발히 했다고 한다. 듣다 보니 '예습 복습 철저히 해서 서울대 갔어요'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가 이 책에 정성을 얼마나 쏟았는지는 짐작이 가게 하는 대목이다.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70423000115
2.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 정문정
개인적으로는 브런치 작가들에게 가장 희망적인 베스트셀러는 정문정 작가의 책이 아닐까 한다. 아는 사람들은 이미 다 알겠지만 그녀는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기 때문이다. 정문정 작가의 서문은 ㅍㅍㅅㅅ을 통해 노출 됐다. 수많은 공유와 좋아요를 받으며 바이럴을 탄 이 글은 특히 다음 1boon에서는 아직도 2번째 최고 조회수를 기록하며 인기글로 남아 있다.
덕분에 본격적으로 광고비를 쓰기도 전에 온라인 상에 강력한 바이럴을 만들어내며 기분 좋은 출발을 했고 금방 베스트셀러로 진입했다. '인생 자체는 긍정적으로, 개소리에는 단호하게!'를 외치는 그녀의 책은 권위주의, 갑질, 군대 문화로 가득한 우리 사회에 답답함을 느끼던 2~30대 여성들에게 시원한 사이다가 되며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https://brunch.co.kr/@annejeong/62
https://brunch.co.kr/@brunch/121
3.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 백세희
텀블벅에서 2,000만 원을 후원받아 독립 출판한 책으로 입소문을 타고 흥행에 성공했다. 심지어 백세희 작가는 출판이 처음이다! 가벼운 우울증이라고 할 수 있는 기분부전 장애(가벼운 우울증이 지속되는 상태)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의사와의 대담을 기록했다. 그게 특별한 죄가 아닌 줄 알면서도 누군가에게 들키기 싫은 자신의 모습을 솔직히 그려내는 모습에서 많은 여성 독자들이 공감했다.(20대 여성의 구매가 38.7%, 30대 여성이 31.8%) 누구나 행복할 수 있듯이 누구나 우울할 수 있는 거라는 작가의 말에 많은 독자들이 공감한 결과이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849886.html
2019년에는 어떤 책이 잘 팔릴까?
어차피 예측이란 내가 작두 타지 않는 이상 맞추기보다 틀리기가 쉬운 것이니까 그냥 내 맘대로 찍어본다. (내가 부담없이 찍는만큼 이 글을 읽으시는 예비 베스트셀러작가님들도 부담없이 의견 나눠주셨으면 좋겠다. 그래야 내가 막 찍는 죄책감이 덜 할 것 같다.)
나는 최소한 19년 상반기에도 에세이의 인기는 지속될 것으로 예측한다. 왜냐하면 올해 에세이가 사랑받은 가장 큰 이유는 '나랑 다르지 않네'라는 공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그래, 맞아 맞아'라는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진솔한 에세이들은 한동안 계속 인기를 끌 것 같다.
페미니즘은 19년에도 중요한 화제 중 하나로 다뤄질 것 같지만, 2018년의 베스트셀러와 같은 2030여성들을 타깃으로 한 위로 에세이는 조금씩 힘을 잃어갈 것 같다. 왜냐하면 이미 비슷한 콘셉트의 책들이 서점에 워낙 많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에 독자들이 점차 피로감을 느낄 것으로 예측한다. (참고: 올해 에세이 출간 종 수는 2,672 종으로 최근 3년 사이 가장 많이 출간됐다.)
다만 에세이의 흐름은 '위로'에서 점차 '직업이나 일상'쪽으로 흐르지 않을까 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유행하는 '현직 교통경찰이 알려주는 음주운전 단속 썰' 류와 같이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 하나하나의 생생한 삶의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서로 다른 위치에서 서로 다른 역할을 하지만 그런 상대방도 나와 비슷한 고민,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구나 같은 반응을 이끌어 낼 것 같다.
이번에 잘 팔린 책들에 대해 공부하며 이제 '책을 판다는 것'은 더 이상 단순히 출판된 종이책만 파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느꼈다. 과거에는 책이라는 미디어에 콘텐트를 담은 것만 팔았을지 모르나 현재는 책이라는 미디어에 담긴 콘텐트를 책 이외의 다양한 미디어에도 담아 동시에 팔아야 한다. 그러니까 단순히 '책'을 판다기보다는 나의 '콘텐트'를 판다고 생각해야 맞고 TV, 라디오 같은 매스미디어, 페이스북, 인스타 등 뉴미디어를 모두 효과적으로 사용해야만 한다. 이기주 작가가 꾸준히 라디오와 인스타그램 활동을 한 것, 정문정 작가가 출판 전 ㅍㅍㅅㅅ를 통해 서문을 미리 노출하거나 세바시에서 강연을 하는 것, 백세희 작가가 텀블벅을 통해 출판 자금을 모은 것 등이 그 사례다.
2018년에는 무명작가에 가까운 사람들이 작가로, 그것도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장했다. 언젠가 작가가 되기를 바라는 브런치 작가들에게는 희소식이고 2019년은 반가운 해다. 아직 출간은 김칫국 사발 드링킹하는 머나먼 얘기이지만 약간만 설레발 좀 쳐보자면 '어쩌면, 정말 어쩌면 우리 중 누군가도 또 다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꿈을 꿔볼 수 있게 됐다. 뭐 어때 꿈꾸는 데는 돈 드는 것도 아닌데. 꿈이 언젠가 현실이 될 때까지 예비작가님들 모두 파이팅하시길 바란다.
* 얕은 공부에 기반한 글이라 빈틈이 많습니다. 친절히 지적해주시고 채워주시면 열심히 더 공부하겠습니다
참고자료)
Yes 24 연도별 베스트셀러 분석 및 도서판매 동향 발표
http://ch.yes24.com/Article/View/32212
http://ch.yes24.com/Article/View/34813
http://ch.yes24.com/Article/View/37588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0464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