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지금은 혐오표현이 난무하는 시기다. 꼴페미, 한남충, 맘충, 틀딱 등 서로가 서로에게 무례를 넘은 극렬한 혐오표현을 던지고 있다. 한국일보의 기사 파편사회에서 공감사회로에 따르면, 최근 4년간 인터넷 공간 게시물에서 사용된 감정어를 분석한 결과 우울하다거나 힘들다는 단어는 전체의 12%였던 반면 혐오나 극혐이라는 감정어는 무려 전체의 75%를 차지하며 지금이 혐오표현의 시대라는 것을 재확인시켜주었다. 젠더갈등이든 세대갈등이든 그 무슨 갈등이든간에 무차별적인 혐오 언어로 서로가 서로에게 융단폭격을 가하고 있는 셈이다.
융단폭격은 정밀타격과는 다르게 넓은 범위를 공격하는 방식이다. 그러다 보니 애초에 공격하고자 했던 대상과는 다르게 엉뚱한 사람에게도 그 피해를 입힌다. 예를 들면 A라는 사람은 '일부 몰지각한 누군가'를 욕하려 했으나 융단폭격적인 혐오 언어를 쏟아내다 보면 지나가는 B가 그 말에 피해를 입고 왜 죄 없는 나까지 싸잡아 피해를 주냐며 다시 또 융단폭격적인 혐오 언어를 되돌려주며 갈등이 커지는 양상이다. 지금도 이와 유사한 양상으로 페이스북이든 기사 댓글이든 어딘가에서 수많은 게릴라전이 이어지고, 또 확전 되고 있다.
그 전투가 치열해지면 치열해질수록 옆에서 쏟아지는 혐오 언어를 피하고싶은 마음에 '언어의 벙커'라도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생긴다. 벙커는 인명, 재산 등을 보호하기 위해 군사적 목적을 위해 만든 방어용 진지를 의미한다. 사격 진지나 참호와는 달리 벙커는 대부분 지하에 위치한다. 덕분에 그 방어력은 배가되어 핵공격에도 '절대 안전'한 곳이 된다. 물리적으로 핵공격도 막는 벙커가 존재한다면, 어떤 혐오 언어도 막아주는 언어의 벙커도 존재할 수 있을까. 만약 언어의 벙커가 존재한다면 이런 무차별적인 혐오 언어를 피할 수 있지않을까.
그렇다면 언어의 벙커가 되어줄만한 것은 무엇이 있을까. 혐오 언어는 내가 그 공격 대상이 되지 않아도 미간을 찌푸리게 만드는 아주 부정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융단폭격의 스플래시 데미지 때문일 것이다. 그런 간접효과조차 보지 않게 만드는 절대안전한 언어의 벙커라면 원천적으로 그 혐오 언어를 차단해야만 한다. 그래 어쩌면 언어의 벙커라는 것은 '무관심'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를다. 누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마음으로 이런 융단폭격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은 채 그냥 내 속만 편하면 괜찮다는 그런 '무관심'. 혐오 언어에서 피해를 보지 않기 위해 고개를 돌려버리고 귀를 닫아버리는 무관심을 발동하면, 부정적인 기운은 원초적으로 근절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 일뿐 나는 안정적일 수 있으나 밖은 여전히 언제 끝날지 모르는 융단폭격의 시대가 이어질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언제까지고 서로가 서로에 대한 혐오가 넘쳐나는 사회가 아니라 이 혐오의 융단폭격 시대가 지나고 언젠가 서로가 서로에 대해 조금 더 조심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사회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그 혐오의 직접 대상이 아니더라도 이야기를 함께 들어야 한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마음으로 이런 갈등이 발생했을지 상대방의 마음을 상상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군사용어에서 벙커는 안전한 방어시설이지만 골프에서 벙커는 의도치 않은 장애물을 의미하기도 한다. 혐오 언어에 상처입지 않기 위해 무관심이라는 벙커로 들어가는 것이 오히려 이 혐오의 시대를 끝내는 데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 이 글은 Random Restaurant 기획 글 입니다.
Random Restaurant, Weekly cuisine 프로젝트란?
그 주에 인기가 있었던 단어들을 무작위로 조합한 제시어를 공통으로 활용하여 산출물을 만들고 주 1회씩 공유하는 것을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