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마켓 거래를 하며 나를 돌아본다.

누가 너무 미우면 사랑해 버려요

by ranran

불황기에는 소비자들은 가성비와 합리성을 추구한다고 하더니 2023년 당근거래를 하면서 몸소 느끼고 있는 중이다. 앱과 플랫폼을 이용해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본인들이 원하는 것을 최대한으로 얻어내려는 극한의 가성비 추구자들의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루미큐브를 한번 사용하고 더 이상 하지 않아 당근마켓에 내놓았는데 구성품이 다 있는지 조목조목 물어보고 제시한 가격에서 3000천 원을 더 깎았다.


5천 원에 내놓은 스타벅스 컵은 더 낮은 가격을 제안했고 더 가격이 조정이 안되냐며 물어왔다. 그나마 산다고 해놓고 좀 생각하고 다시 연락 주겠다며 2분 뒤 채팅이 왔다. 실컷 뾱뾱이로 포장을 해 놓고 종이백에 넣어서 기다리는데 그런 답이 오니 좀 허탈했다.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 제품을 숨기기 해 놓았다. 또 그 상품에 대해 살지 말지 물어올 거 같은 공포심에 차라리 제품을 안 팔기로 했다.


구루마를 팔 때는 갑자기 오늘 밤에 가도 되겠냐며 밤늦은 시간에 챗이 왔다. 이건 무슨 경우인가 싶었지만 바퀴소리가 요란하게 구루마를 끌고 편의점 앞으로 나갔더니 현금을 내민다. 2천 원을 내어 주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나는 그저 계좌이체할 거라고만 생각하고는 빈손으로 털레털레 나갔었다.


'그럼 미리 잔돈을 갖고 나오라고 하던가...'

속으로 별 생각이 들었지만 편의점에 들어가 죄송함을 무릅쓰고 혹시 잔돈으로 바꿔주실 수 있냐며 아주머니께 부탁드렸다.

"새해 첫날부터 이렇게 돈 바꾸러 오는 건 아니지..."


그랬다. 1월 1일 00시 2분.

오늘은 2023년의 첫날이었다. 나도 잊고 있다가 순간 너무 죄송했다. 장사하는 사람에게 이 무슨 실례인가... 거래자에게 2천 원을 건네주고 다시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제로 사이다 하나를 집어 들고 2천 원을 건네며 너무 죄송하다고 지금 물건 샀으니까 아까 돈 바꾼 것은 퉤퉤퉤라고 말씀드렸다.


말이 나오는 대로 뱉은 거 같은데 어찌 됐든 장사하는 사람에게 첫날 첫 개시가 중요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분의 장사운이 나로 인해 행여 날아갈까 봐 아까 것은 무효라고 제대로 표현하고 싶었다.


오늘도 당근 거래자와 만나기로 했는데 오기 30분 전에 본인이 잔돈이 없다며 2천 원을 깎아달라고 한다.

'하아...' 속으로 짜증이 밀려왔다. 나는 정중하게 계좌이체를 부탁했다.

그리고는 몇 번의 당근거래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이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분명 어제 잠들기 전까지만 해도 '빨주노초파남보' 에 속하지 않는 다른 색깔로 살아가리라 다짐을 하며 잠들었었다.

옅은 회색빛도 아름다울 수 있고 투명함을 띄는 누군가도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걸 알아채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모두가 자체만으로 오롯이 아름답다 느낄 수 있는 심미안을 지닌 어른으로 살아가리라 다짐한지 불과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또다시 내가 정한 틀에 당근거래를 하며 만난 사람들을 평가하고 끼워넣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미워지려는 마음이 들면 사랑해보려고 노력한다는 한 영화감독의 말처럼 나도 미워지려는 마음이 들기 전에 다르게 생각해보려고 했다.



루미큐브를 사려고 한 사람이 만약 우리 친언니였다면..? 깎아줄 수도 있고 거저 줄 수도 있다. 좀 더 다정한 말로 답장을 건넬 수도 있었다.


12시가 넘은 시간에 오토바이를 끌고 와서 물건을 사는 사람이 만약 우리 오빠라면..?(남자형제는 없지만 있다고 상상해 본다. )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정초부터 한 푼이라도 더 아껴서 열심히 살려고 애쓰는 한 가장의 모습이라면..?

갑자기 그렇게 생각해보니 다 그럴 수도 있다고 너그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작은 연민의 시선으로 누군가를 바라본다면 그 어떤것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용납하지 못할 것도 없다.

모든 것이 생각하기 나름이고 마음먹기에 달렸다.


내 작은 그릇을 들여다보게 되는 하루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아빠가 보낸 택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