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사람

나의 샤랑 조야

by ranran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잠깐의 고민도 없이 대답할 수 있다.

바로 엄마라고. 엄마는 소녀 같은 사랑스러움과 아이 같은 천진난만함과 귀여움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이런 엄마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제대로 알게 된 것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이후였다.


스물일곱의 나이에 시집와서 20년 넘게 병든 시어머니를 모시고 산 며느리의 얼굴에는 웃음이 별로 없었다.

더 정확히는 항상 그늘져 있는 듯이 어두운 표정이었다.

엄마는 사리돈을 달고 살았다. 심한 두통을 달고 살았던 엄마는 다른 어떤 약도 잘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리돈만 고집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엄마는 놀랍게도 두통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렇게 달고 살았던 사리돈도 엄마의 주변에서 일절 찾아볼 수 없었다. 사리돈이 사라지고 엄마의 얼굴에는 조그맣게 웃음꽃이 피기 시작했다.


원래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웠는데 할머니와 같이 사는 몇십 년간 본연의 자아가 가리어져 있던 게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할머니의 부재 전과 후로 엄마의 얼굴빛은 꽤 차이가 많이 났다.




엄마는 할머니가 계실 때는 마음 편히 잠도 못 잤다. 우리 방문 뒤에 원래도 작은 몸을 더 작고 작게 만들어 웅크린 채로 몰래 잠을 잤다. 어른이 계시면 다 그런 거야라고 엄만 얘기했지만,

'어른이 계시면 잠도 왜 내 마음대로 못 자는 거야 대체 이런 게 시집살이란 거야.' 싶었다.


뜨개질과 바느질, 요리는 물론이고 손으로 하는 건 뭐든 잘하는 우리 엄마. 그래서 미용사도 되었나 보다. 젊었을 때 대형병원에서 일했던 경험으로 매번 할머니 배나 팔에 주사를 놓고는 알코올솜으로 소독해 주던 모습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중학생 때 할머니가 편찮으셔서 대학병원에 입원해 계시고 아빠가 밥을 한 적이 있었다. 밥을 한 경험이 전무한 아빠는 밥이 타서 까만 누룽지가 일어날 만큼 밥을 완전히 태우고 흰 부분만 골라서 우리를 먹인 적이 있다. 그때 엄마는 왜 밥을 이렇게 해서 태우냐며 아빠를 나무랐다.


내 생각에는 '그래도 밥이라도 해서 우릴 먹였는데 엄만 왜 저렇게 화를 내는 거야?' 어린 마음에 이해가 안 갔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밥을 태운 게 속상한 게 아니었다.

그녀의 고단한 시집살이에 탄 밥까지 더해져서 와락 짜증이 난 것이리라.




나에게 괴로운 기억이 하나 있다.

괴로움의 크기만큼 기억은 또렷해서 마치 화상같이 선명한 기억.


고등학교 1학년 겨울.

녹지 않은 눈이 길가 곳곳에 있고 땅은 반을 얼어버려 걷기도 조심스러웠던 그날.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향하던 나는 빨간 대야에 자신의 몸을 싣고 빙판길에 대야를 앞으로 밀며 나아가는 한 노인을 보았다.

우리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당뇨후유증으로 다리 하나를 잘랐다. 차도와 인도 사이의 공간을 자신의 몸을 앞뒤로 반동을 주어 밀며 아파트 밖을 향하고 있었다. 저 멀리서 엄마가 뛰어오고 있었다.


아마도 같은 아파트에 사는 아줌마들이 근처 미용실에서 일하던 엄마에게 쫓아가 말해 준 것이리라. 여기 시어머니가 저런 몸으로 밖에 나와있으니 어서 집으로 가보라고.

그때 엄마의 얼굴색과 표정을 봤어야 한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어무이 대체 이 몸으로 왜 이 추운 날에 나왔어요!!"


걱정과 어이없음, 화가 뒤섞여 무슨 감정이라고 정확하게 표현도 못할 얼굴로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던 엄마는 곧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교복차림에 책가방 어깨끈만 말없이 주먹으로 꽉 쥔 채 내 앞에 펼쳐진 이 기막힌 장면에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차올라 울음이 왈칵 나왔다.


창피함은 둘째였다. 일단 엄마와 함께 할머니를 집으로 모시고 가는 게 먼저였다. 주변 사람들이 같이 힘을 보태 할머니를 집으로 옮기고 엄마는 다시 손님들이 기다리던 미용실로 발걸음을 돌렸다.


아픈 노모를 부양하고 두 딸들을 건사하기 위해서 다시 일터로 가는 수밖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미처 추스르지 못한 감정을 다독일 시간도 엄마에겐 사치였다.


다시 미용실로 발걸음을 돌리면서 얼마나 울었을까.




최근에 부모님이 다니는 교회에 가서 점심을 먹은 적이 있다. 그곳 할머니권사님들 한분 한분 안아드리며 귀여운 딸노릇을 하던 사람이 바로 엄마였다.


일단 한 분 안아드리면 다 안아 드려야 한다며 안 그럼 서운해하신다고 내게 조용히 속삭였다.


그렇게 엄마는 난로가에 서서 할머니 권사님들을 한 분 한 분 따뜻하게 앉아드렸다. 엄마의 표정도 따스했다.

교회에서 엄마는 소녀 같고 다정다감하며 귀여운 사람이었다.


엄마는 이런 성향의 사람이었을 것이다. 병든 시어머니를 모시며 찍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살면서 엄마 본연의 이러한 성격들은 다 묻고 지내왔기에 잠시 사라진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이렇게 밝고 따뜻하고 귀엽고 소녀 같고 아이 같은 천진함과 사랑스러움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내가 단지 늦게 알아챈 것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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