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미쳤구먼. 미쳤어.'라고 말할 때가 있다.
미쳤다는 말은 원래 정신적으로 병이 생겨 온전한 생각이나 행동을 하지 못 할 때 쓰는 말이다. 그러나 때로는 어떤 일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을 보고도 그렇게 말한다. 미친 것에 준할 만큼 바르지 않은 상태를 핀잔과 비난을 섞어 지적할 때 주로 쓴다. 헤어 나온다는 것은 일단 어디에 빠졌다는 것을 전제한다. 틈만 나면 그것을 할 생각만 한다거나, 그것을 하기 위해 없던 틈도 만들어 낸다거나 하는 정도를 기준으로 해도 좋겠다.
한자로는 미친 것을 광(狂)이라고 하는데 미친 대상을 앞에 붙여 말을 만들면 '그 대상에 미친 사람'이라는 말이 된다. 예를 들면 낚시광, 야구광, 바둑광, 골프광, 축구광 등이다. 느낌이 왠지 일본말에서 온 듯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게 일본말에는 다른 표현이 있는 것 같다.
재밌는 것은 공부에 미친 사람에게는 광을 붙이지 않고 벌레를 붙인다. 독서광은 있지만 공부광은 없고 book worm이라고는 하지만 study worm이라고는 하지 않고, 일본말도 べんきょうばかり(벤꾜우바까리)라고 하여 미친 것과는 상관이 없다. 아마도 책벌레라는 말에서 고상함을 탑재한 벌레가 공부를 파먹다가 공붓벌레라는 이로운 곤충으로 진화한 것이 아닐까 싶다.
빠지는 것으로 치자면 술과 담배를 빼놓을 수 없는데, 희한하게 음주광이나 흡연광은 없다. 낚시, 야구, 바둑, 골프, 축구 등과 다르게 이것들은 건강에 해롭다. 몸에 안 좋다는 것을 누구나 알지만 또 너무나 우리 주변에 가까이 있고, 근거는 약하나 순기능이 있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도 있어서 쉽게 광을 붙일 수 없었나 보다. 대놓고 까기가 좀 미안한 그런 것일까?
어쨌든 여기에는 아름답게도 사랑 애(愛)를 붙여준다. 애주가와 애연가. 문득 최초로 사랑 애를 앞에 붙여 부른 사람이 술과 담배를 즐기는 사람임에 틀림없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안 좋은 걸 자신도 알고 주변에서 싫어하는 것도 아는데, 어떻게든 이걸 포장하고 합리화해서 예쁜 이름으로 불러야 자기 위안이 되니까 말이다.
구조가 비슷한 단어로 애처가가 있는데 술담배와 배우자가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는지는 알 수가 없다. 저 처의 남편이 쓸 때는 처에 대한 아부의 성격이 담길 것이고, 다른 처의 남편이 쓸 때는 저 남편에 대한 비난과 질투의 의도가 담길 것이다. 바리에이션으로 공처가가 있는데 이 말은 주의해야 할 것이 여기 등장하는 처는 말 그대로 공포의 대상이므로 그 처가 듣는데서는 안 쓰는 게 좋겠다.
사실 의학적으로 또는 정신건강학적으로 이 상태를 가리키는 말은 따로 있다. 알코올 중독(中毒)과 니코틴 중독(中毒), 영어로는 각각 Alcoholism, Nicotinism 또는 Alcohol poisoning, Nicotine poisoning이다. 포이즈닝, 말 그대로 독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담뱃갑에 붙은 경고처럼 Addictive, 중독성이 있다. 사용할수록 계속 사용하고 싶어 지고, 사용하고 싶지 않을 때 사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본인의 의지와 다르게 뇌와 몸이 이것들을 부른다. 그리고 우리는 거기에 의존하게 된다. 애주가와 애연가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본인들이 중독되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부분 그것은 심리적인 방어기제에 불과하다.
베트남은 지금 코로나19로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고 있다. 한 때 식당도 거의 보름 동안 문을 닫았고 그 필요성에 대해서는 모두가 잘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그 틈에도 누군가는 누군가와 둘러앉아 하던대로 술을 마셔야 했는데 그 모습은 당연히 남의눈을 피하고 밀폐된 곳에 모여서 벌어져야 했다. 가장 상투적으로 등장하는 모두발언은 '코로나19는 알코올로 소독해야 한다.' 또는 '여기 모인 사람들이 가장 검증된 안전한 사람들 아닌가?' 하는 따위의 말이다. 단순한 농담일 수도 있지만 합리화를 이렇게라도 하고 나야 맘이 편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알코올 중독은 자주 합병증을 만드는데 그것은 관계중독이다. 모여야 마시니 끊임없이 자리를 만든다. 비즈니스에 필요한 경우는 제외하더라도 거의 매일 저녁 사람들을 모은다. 나중에는 술과 관계가 주객이 없고 선후가 없어지면서 별 목적 없는 자리가 연속되게 된다.
'똥 마려운 강아지'라는 표현이 있다. 안절부절 못 하는 상황을 표현한 말인데 내가 올해 담배를 끊기 전의 상황을 보면 딱 그렇다. 몸과 뇌가 니코틴을 필요로 하면 나는 강아지가 된다. 식사 중이든 미팅 중이든 언제든 그때가 찾아온다. 술도 마찬가지다. 나도 직장생활을 포함하여 오랜 시간을 중독 속에서 살았고, 지금도 밥벌이를 하려면 중독의 호수에서 헤엄을 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술이든, (담배는 일단 끊었고), 관계든, 골프든 뭐든 간에 그 바닥에서 뒹굴어야 일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상대가 있는 게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슬기롭게 나를 지키며 살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생각하려 한다. 일은 평생 열심히 하고 살았기 때문에 별도의 노력을 더하지 않아도 소위 몸이 기억해서 열심히 한다. 이제는 나를 에워싸고 있는 것들과 나 사이에 균형을 찾아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였고, 나이고, 나일 것인데 그간 자의든 타의든 내가 아닌 모습으로 산 적도 있었다. 더 늦기 전에 나로 초점을 되돌리고 싶다. 그것이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