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도 나흘 연휴, 하지만...

한국과 다른 베트남의 나흘 연휴

by 멧별


베트남에서 2020년 4월 30일부터 5월 3일까지는 나흘간의 연휴다. 그래서 뭐?라고 할 수도 있는데 한국도 똑같이 연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나라의 연휴는 노는 이유에서 약간 차이가 난다. 한국은 부처님 오신 날, 근로자의 날, 토요일, 일요일 이렇게 나흘이지만, 베트남은 국가통일을 위한 남부 해방일 , 국제노동절, 토요일, 일요일 이렇게 나흘이다.


Wikipedia에 따르면 4월 30일을 Ngày Thống nhất(통일한 날), Ngày Chiến thắng(전승한 날), Ngày Giải phóng (해방한 날) 또는 Ngày Giải phóng miền Nam(남부가 해방한 날)이라고 두루 부르지만 정식 명칭은 Giải phóng miền Nam, thống nhất đất nước(국가통일을 위해 남부가 해방한 날)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노동자는 열심히 일하라고 국가에서 부지런할 근 일할 로, 놈 자, 근로자의 날이라고 독려한 것으로 보이지만, 베트남은 소위 May Day를 기원으로 Ngày Quốc tế Lao động(국제 노동의 날)이라고 부른다. 베트남 말을 한글로 직역했다.


표본이 너무 작아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지만 내 주변 베트남 사람 한 명에게 물어본 바로는 본인은 부처님은 아는데 그의 생일은 모른다고 한다. 그는 다른 베트남 사람도 모를 거라고 자기를 합리화했지만, 바로 혹시 노인들은 알 수도 있을 거라고 균형을 잡았다. '생일에 왜 노느냐'는 그의 질문에 한국은 예수님의 생일에도 논다고 하자, 어느 종교 창시자의 생일도 공휴일이 아닌 베트남의 일관성과 유권자 비중이 높은 양대 종교 창시자의 생일이 모두 공휴일인 한국의 형평성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것 같았다.

'미스 사이공'이라는 뮤지컬이 있다. 베트남 전쟁 당시 사이공(지금의 호찌민시티)에 살던 낌(Kim 金)이라는 베트남 여자, 그녀의 정략결혼 상대인 베트남 인민군 투이(Thuỷ 水), 사이공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 크리스, 그가 미국에 돌아가 결혼한 미국 여자 엘렌의 사각관계를 그린 전쟁 배경 치정극이다. 그런 스토리들이 다 그렇듯 무책임한 어른들은 무고한 아이를 탄생시키고 만다.


전쟁의 막바지에 크리스는 킴을 버리고 사이공을 떠난다. 1975년 4월 30일로 추정되는 그날 헬리콥터가 미국 대사관 꼭대기에서 떠나는 장면은 실제로 세상에 많이 공개되었다. 거기에 탑승하려고 모여있는 미국 사람, 베트남 사람, 그 외 사람들 중 크리스도 한 명이었을 것이다. 나중에 킴은 아이를 아빠에게 보내고 본인은 자살한다.


'버리고'를 극의 정황은 '어쩔 수 없이 남겨두고'로 몰아가는 경향이 있으나, 그런 정황은 영화 '킬링필드'에서 프놈펜에 남겨지는 현지인 기자에나 적용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 '전쟁 속에 싹튼 아름답지만 슬픈 사랑의 비극적 결말'이라는 참 대단한, 자기 일이 아니라고 참 객관적인 수식어를 볼 때 역사를 바라보는 작가와 평론가의 시각을 생각해 본다. 사각관계에서 비참하게 죽는 베트남인 두 명과 살아남는 미국인 두 명의 국적비 균형과 국적간 불균형도 곱씹어 볼 부분이다.

우리는 이 스토리가 낯설지 않다. 바로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에서 모티브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배경은 19세기 말 또는 20세기 초 일본으로 바뀌어 지금은 짬뽕으로 유명한 나가사끼. 게이샤 초초상은 미군과 결혼하고 애도 낳는데 미군은 떠나고 애는 빼앗기고 본인은 자살한다. 제시카 알바 주연의 직설적인 제목 'The sleeping dictionary'라는 영화도 있다. 미국이 영국으로, 일본이 말레이시아로 치환되면 같은 맥락의 영화다.


예술물을 만든 사람들, 등장하는 미국인, 영국인, 모두 통틀어 서양인인데 이들을 피벗 플레이처럼 고정축에 놓으면, 다른 축은 일본 찍고, 베트남 찍고, 말레이시아 찍고, 온 동양을 찍고 다닌 것이다. 이것은 어떤 인식의 문제라고도 볼 수 있겠다. 해리포터 시리즈에는 한 때 그와 썸을 탄 초 챙(Cho Chang)이라는 동양계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 그녀의 이름 초는 나비부인의 주인공 초초(蝶蝶)상과 같은 '나비'라는 의미의 일본어이다. 그런데 챙은 중국 성씨이다. 중국인 아버지에 일본인 어머니가 이름을 지어줬구나 하면 뭐 쿨하게 넘어갈 수도 있지만 뭔가 가볍게 만들어진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오페라 투란도트에 등장하는 '핑팽퐁'과 유사한 느낌으로 영어로 칭챙총(Ching Chang Chong)이라는 말이 중국인 발음을 비하하는 뉘앙스가 있다는 사실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서양인 해리는 동양인 초에게 쉽게 반하고, 썸을 타다가, 영화에서 초가 불사조기사단을 밀고하면서 등을 지고, 해리의 관심은 지니 위즐리로 옮겨간다. 초는 그렇게 뭔가 좀 어설프고 두서없고 연약한 캐릭터로 그려진 경향이 있다.


이런 가해와 피해의 문제는 꼭 서양과 동양의 관계에서만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 불균형이 있는 국가 간 관계에 항상 대두되는 문제이다. 또한, 전쟁의 그늘이 이를 부추기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도 이런 일에 자유롭지 않다. 이 또한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인 것 같다.


지난 세기, 영토 안에서 구시대 이념 분쟁이 벌어졌던 한반도와 베트남, 그 분쟁의 결과는 다른 모양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지금은 대한민국과 베트남이 다름을 이해로 풀면서 경제협력에 엄청난 시너지를 내고 있다. 영화 '타짜'에서 곽철용의 장례식에 등장한 아귀는 복수를 하겠다는 곽철용의 부하를 보고 이렇게 말한다.

"복수라는 그런 순수한 인간적인 감정으로 접근하면 안 되지. (중략) 값을 받는다 뭐 이런 자본주의적인 개념으로 나가야지."


최근 두 나라 간에 코로나19 대응 조치로 인한 반목이 싹트고 있는 시점에서, 협력이 서로 먹고살 방편을 만드는 일이라 생각해본다면 어떤 '감정'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어떤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리라 믿는다. 똑같이 나흘을 쉬고 5월을 맞을 두 나라가 밝은 미래를 다시 열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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