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뀌는 것과 그대로인 것

이천 물류창고 화재

by 멧별

이천의 물류창고에서 화재가 발생해 서른여덟 분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08년에도 같은 이천에서 물류창고 화재로 마흔 분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전세계 산업재해사망률 1위 국가입니다. 아래의 글에 '모두 그렇진 않지만'을 너무 많이 써야해서 생략합니다. 글의 첫머리에 항상 저 말을 넣어서 읽는 수고를 대신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08년과 2020년은 십년이 넘는 세월의 차이가 난다. 그 세월의 차이를 넘어 거의 동일한 양상의 화재가 발생한 것은 우연의 일치는 아닌 것 같다.


그간 대통령이 바뀌고 국무총리가 바뀌고 장관이 바뀌고 도지사와 시장이 바뀌었다. 또, 무슨 일이 생기면 재발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또다른 바뀌는 부류인 국회의원들이 법을 바꾼다.


그대로인 것도 있는데 나라가 정한 법과 규정을 국민과의 접점에서 전파하고, 관리하고, 점검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그대로다. '그대로' 또는 '언제나'의 의미를 담는 우리말 중에 '늘'이라는 말이 있고 신조어로 '늘공'이라는 말도 있다. 그들은 사회에서 상당한 크기의 집단을 형성하고 있고 '회사원'이라는 광범위한 지칭에 버금갈 광범위한 지칭도 가지고 있다. 서울의 한 지역에는 그 집단에 들어가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시험준비를 하고 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그 집단에 들어간 그들이 가지는 긍지에 비해 다소 겸연적게 영어로 그들을 가리키는 명칭에는 'servant'라는 말이 들어가고 한자로 그들을 칭하는 명칭에도 '僕'이라는 말이 들어간다. 둘 다 '종'이라는 뜻이 있다. 그들에게는 위하고 따라야할 주인이 있다는 말인 것 같다. 그들은 뭐가 부족하다고 말하는 경향이 있는데 '인력', '시간', '급여' 등이 예이다. 농담을 좋아하는 분들은 '급여'에 맞춰서 일의 양과 시간을 제한한다는 식의 합리적이면서도 재밌는 말을 하기도 한다. 부디 여기까지 말머리에 '모두 그렇진 않지만'을 꼭 넣어서 읽으셨길 바란다.


회사의 직원들도 바뀐다. 이직도 하고 퇴직도 하고 면직도 된다. 오래 남은 사람에게는 수식어를 좀 붙여서 장기근속, 정년퇴직 등의 말로 그 사실을 추켜세워 준다. 그리고, 회사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일하는 것이 권장된다. (나는 그래서 그런 생각으로 일한다.)


그대로인 것도 있는데 회사의 진짜 주인이다. 회사를 설립하기 위해 맨먼저 돈을 태운 사람이라고 보면 되는데, 나중에 다른 사람들도 회사에 돈을 태우고 싶게 만드는데 골몰하지만, 본인이 맨먼저 낸 사람임은 잊지 도록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 티를 낸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죽으면 그를 둘러싼 지위나 상황들은 바뀌기 마련인데 여기서는 그렇지 않고 대물림이 되면서 그대로 이어진다. 이들은 영어로 Entrepreneur, Owner, Capitalist, Shareholder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는데, 옛날에 어떤 경제학자가 이들의 행동 방식을 탐탁치않게 여겨서 이들과 척지는 이론을 하나 만들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추종하여 한 때 온세상이 양편으로 나뉘어 피터지게 싸우고 으르렁대던 추운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그 추종자들이 기존 생각을 조금씩 고쳐가며 반대쪽과 손을 잡아가고 있어서 피를 볼 일은 줄어든 것 같다.


불이 난 회사도, 불을 낸 회사도 모두 그들이 소유하고 있다. 그들은 크기와 계약관계에 따라 서열이 분명한데 피라미드식으로 위로 갈수록, 시류를 반영해서 말하면 다이아몬드 등급으로 갈수록 많이 가지게 된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적게 가지게 되므로 이런저런 비용을 줄여야 남는게 있는데, 그 비용에는 안전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장비나, 충분한 시간이나 인력 등이 포함된다. 즉, 그 비용이 줄면 안전도 준다. 저 아래 실버 등급에서 현실적으로 그 비용을 부담하기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다른 말로 그 비용이 포함 안 된 가격으로 서비스를 제공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겠다. 아니면 그 비용이 포함된 가격이었는데 그 비용을 그 용도로 안 썼을 수도 있겠다. 여튼 그런 결정은 등급에 상관없이 피라미드 안에 속한 회원, 즉 Owner 또는 Capitalist 또는 Entrepreneur 또는 Shareholder(많은 경우 그들의 Agent)가 내리는 것이니까 그 외의 사람들은 잘 모를 수도 있겠다. 부디 여기까지도 말머리에 '모두 그렇진 않지만'을 꼭 넣어서 읽으셨길 바란다.


지금부터는 '모두 그렇진 않지만'을 안 넣고 읽어도 무방하겠다. 그간의 수고에 감사드린다. 불은 불에서 옮겨 난다. 그것이 용접불이든 담뱃불이든 전기 스파크든 간에 그 불을 다룬 자의 실수가 화재의 원인일 수 있다. 하지만 쓰여지지 않은 비용이 있다면, 그 비용이 실제 쓰이는지 점검하고 강제해야할 주체가 없다면 화재는 쉽게 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몹쓸 불감증이 있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으나 그 증상은 누군가 만들어 놓은 어떤 환경과 양상에 오랜 시간 아무생각 없이 익숙해져 버린데서 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기계가 고장나면 점검을 하는 순서가 보통 매뉴얼화 되어 있다. 예를들어 냉장고가 멈추면 전기코드가 뽑히진 않았는지, 스위치가 꺼지진 않았는지, 퓨즈가 끊어지진 않았는지 이런 순서대로 점검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똑같은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일종의 오류이고 고장이다. 그간은 바뀌는 것들의 오류를 의심해 왔다면, 이제는 그대로인 것들도 점검해보면 좋을 것 같다. 안전수칙을 다 지켜서 한 시간이 걸리는 일을 한 시간 동안 해도 되는 세상, 선로를 점검하는 한 시간 동안 열차도 한 시간 서있어야 하는 세상, 청소하는데 한 시간 걸리는 기계는 한 시간 동안 세워야하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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