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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멧별 Dec 20. 2020

동학개미 쓰지 마라.

청포장수 울고 간다.

동학개미란 말이 등장했다. 코로나로 외국인이 한국 주식을 대량으로 매도하자, 그 물량을 소위 개미투자자들이 '티끌모아 태산'식으로 사들인 것을 동학농민항쟁(동학혁명, 이하 동학) 비유한 표현이다. 힘이 약한 절대다수가 힘이 강한 소수에 맞서 싸운(?) 형국에서 아마 을 떠올렸나 보다. 재치 있는 우리말 활용이라는 점을 인정하지만 동학을 안다면 쓰지 말라고 하고 싶다.


동학을 나만 잘 안다고 부리는 현학적 허세가 아니다. 넷플릭스에서 2019년에 방영된 드라마 '녹두꽃'을 본 사람이면 누구나 그 의미를 잘 알 수 있다. 나는 동학이란 말에 눈물부터 난다. 그간 여러 작품들이 그 사건을 말해 왔는데, 2014년에 읽은 황석영의 '여울물 소리'로 나는 다시 동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몇 년 뒤 나는 드라마 '녹두꽃'을 만난 것이다.

'녹두꽃'의 부재는 '사람, 하늘이 되다.'이다. 이것은 종교이기도 한 동학의 정신이다. 그 유명한 '인내천人乃天' 즉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는 이념이다. 무능한 왕조와 타락한 자본독점 귀족들, 그들의 수족이 되어 이익을 취했던 중간계층들이 그때의 조선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 아래 개돼지 취급을 받던 이들, 세금 수탈의 숙주로 피를 빨리던 이들이 받은 고통은 처참할 정도다. 그런 이들에게 본인들은 개돼지가 아니고 사람이며, 사람은 하늘만큼 귀하다는 교리는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을까?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키고 싶은 그 무엇이 되지 않았을까?


기나긴 밤이었거든 압제의 밤이었거든
우금치 마루에 흐르던 소리 없는 통곡이어든
불타는 녹두 벌판에 새벽빛이 흔들린다 해도
굽이치는 저 강물 위에 아침햇살 춤춘다 해도
나는 눈부시지 않아라

폭정에 폭정에 세월 참혹한 세월에
살아 이 한 몸 썩어져 이 붉은 산하에
살아 해방에 횃불 아래 벌거숭이 산하에

[이 산하에 中 - 노찾사 2집]


지금 우리가 자본주의를 채택하여 국가 경제를 유지하고 있다고는 하나 '돈과 목숨'을 동일시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주식은 돈이고 동학은 목숨이다. 주식이 물질이면 동학은 정신이다. 동학개미와 동학혁명 간에 공통점을 찾자면 행동으로 옮겼다는 점이다. 개미는 주식을 매수했고, 동학농민들은 봉기했다. 하지만, 행동의 목적이 이문과 생존이라는 점에서 또 다르다. 더 많은 돈을 벌려고 매수했지만, 사람다운 삶을 살려고 봉기했다. 누군가 퉁쳐서 '어차피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는 거니 똑같은 거 아닌가?'라고 말한다면 굳이 반박하고 싶지는 않다. 허나 먹고사는 것에 문제없는 개미들은 좀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주식을 매수하지만, 동학농민들은 착취와 차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먹고사는 것만 보장되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 둘은 다른 것이다.


동학농민들의 오지랖은 목숨을 지키는데 그치지 않는다. 나라를 집어삼키려는 외세의 침략에도 맞선다. 국가도 못한 일을 본인들이 하겠다고 나선다. 당시 갑오년에 조선왕조의 궁궐은 일본군에게 점령당한다. 식민사관이 '갑오왜란'을 '갑오경장'으로 각색하여 오래 전 내 머리에 잘못 심어놨다. 동학혁명이 일어나고, 그걸 막겠다고 조정은 청나라를 끌어들이고, 그걸 빌미로 일본군이 상륙하고, 그 일본군이 조정공격하고, 그걸 몰아내겠다고 동학농민들이 또 일어나고, 일본군이 조선군대와 함께 그들을 몰살시키는 처한 코미디가 전개된다. 그렇게 그들은 모두의 목숨을 소중하게 만들기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친다. 그들이 갈망하던 것은 바로 개인과 국가의 독립이었다.


동학개미들은 정말 외국인투자자를 외세라고 보고 맞서 싸운 것인가? 아니지 않냐는 것이 내 생각이다. 주식투자자들은 항상 그 외세의 밀물과 썰물을 관찰한다. 그 사이에서 주가에 조수간만의 차가 생기고, 그것을 조금 빨리 대응하거나 예측하면 이문이 남는다. 동학개미들은 한국 주식시장 주권의 독립을 위해 주식을 대대손손 보전할 마음 없다. 과거 IMF 시절 바이코리아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드라마 속 주인공 백이강과 백이현은 중간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지방 아전의 이복형제들이다. 아버지는 이방을 하면서 재산을 끌어모은 자로서 신분의 벽을 넘기 위해 백이현을 출세의 대리인으로 키운다. 서자인 백이강은 이방을 물려줘서 재산을 유지하는 대리인으로 이용하려 한다. 그러나 소용돌이치는 역사 속에 두 젊은이의 가치관은 심한 변화를 겪게 되고 동학농민항쟁을 중심으로 다른 운명에 처해지게 된다.


그렇게 인간은 서로를 배신한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은 목숨을 담보로 정신을 지켜낸다. 동학농민항쟁도 그 두 부류의 사람들이 섞여서 싸운 것이다. 슬픔과 서러움으로 목욕을 한 사람들이 죽창을 들고 일어섰을 때 뜻은 하나였고 기세는 드높았다. 그러나 또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두려움과 이기심으로 그 일을 그렇게 끝맺고 만다. 거기에  대단한 조선왕조도 많은 방송분량을 차지한다. 화 '브레이브 하트'에서 동맹약속을 깨고 윌리엄 월레스에 등을 돌리던 스코틀랜드 귀족들이 오버랩된다.


그래서 말인데 동학개미쓰지 말자. 100년도 전에 무명옷에 짚신 신고 죽창 하나 들고 일어났던 그들을 기억한다면 그렇게 말하면 안 될 것이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 전래 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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