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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멧별 Oct 09. 2021

캄보디아 격리 14일

마지막 날은 왔고, 잠은 안 왔다.

출장으로 오게 된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한참 전부터 부산스럽게 출장 준비를 할 수밖에 없었던 건 역시나 코로나로 복잡해진 절차 때문이다. 그래도 나 같은 해외 노동자들을 위해 나라에서 마련해준 제도가 있어 백신을 2차까지 신속히 맞을 수 있었다.  대한민국 만세. #필수목적출국자


출발 전 두 번째 관심사는 역시 14일 격리였다. 첫 번째 관심사는 당연히 '일'입니다요~ 보^^헤헤. 생업에 있어 나는 진심이고, 겸허하고, 충분히 저자세다. 보디아는 신 접종과 상관없이 입국 시 14일 격리를 해야 하고, 지금은 13일째, 토요일 새벽 4시다.


상세한 출입국 정보가 급하신 분들은 맨 아래 링크로 직행하십시오. 훌륭한 정리로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신 작성자분께 감사드립니다.

공항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곳 없네. 면세점에서 한도 빵빵한 신용카드를 긁어대던 그 많 인걸들이 사라진 출국장은 휑했다. 마카로니 웨스턴 영화에 나오는 황야가 떠오를 만큼 썰렁한 그곳에 혹시 바람이라도 분다면 동글동글 텀블위드들이 굴러다닐 것만 같았다. 탐욕스러운 자본주의 소비 성지의 몰락은 꽤 통쾌한 맛도 있었으나, 그 성지에서 노동으로 벌이 하는 사람들의 곤궁함이 염려되어 일면 침통하기도 했다. 서울에 아파트도 한 채 없는 사람이 이런 걱정을 하면 사람들은 '오지랖이 넓다.'라고 할 것이다. 어쨌든,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오백년 소비 도읍지

비행기를 타고부터 격리 숙소에 당도할 때까지의 여정은 경험상 대략 이러했다.

1. 탑승 후 지정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고 비행기가 뜰 때까지 얌전히 기다린다. 여기까지는 마스크를 벗으면 안 된다는 것 외에 기존과 차이가 없다.

2. 놀랍게도 기내식이 나왔다. 나는 기내식의 시대는 끝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맛있게 먹으면 된다. 여기까지도 큰 차이가 없다.

3. 기내에서 나눠주는 3개 양식을 꼼꼼히 작성한다. 입국신고서 및 세관신고서는 기존에도 있었고, 여기에 코로나 관련 건강상태표가 추가되었다. 숙소 명확히 기재하지 않으면 나중에 지적질당한다. 여담이지만 앙코르와트 보러 씨엠레압에 갔을 때 숙소명을 소문자로 적었다고 접수 거절당해서 금전손해를 겪었던 기억이 났다.

4. 착륙 후 행렬을 따라 가면 먼저 건강상태표를 달라고 한다. 보고 돌려준다.

5. 검역 카운터에서 서류 전체를 달라고 한다. 여권과 비자, 기내 작성 3개 양식, 포르테보험서류, 음성확인서, 호텔예약서류 등이다. 확인하고 도장 찍고 스캔 뜨고 돌려준다.

6. 그다음 카운터에서 서류 전체 이상 유무 다시 확인하고 돌려준다. 그 옆 어떤 부스에서 호객행위를 하는데 유심칩을 파는 건지 뭔지 모르겠지만 나는 외면했 별 탈 없었다.

7. 입국심사대서류 전체를 다시  제출한다. 여권을 돌려주지 않는다고 웃통을 까고 고성을 지르지 말자. 영어로 No return?이라고 유창하게 물어보라. 그러면 No return! 14 day hotel return!이라고 플루언트 한 영어로 알려준다.

8. 수하물 벨트에서 짐을 찾는다. 요령은 팬데믹 전과 같다.

9. 통관 검사대를 지나면서 세관신고서 제출한다. 해리포터가 9와 3/4 플랫폼에 들어가듯 카트를 힘차게 밀고 휭 지나가려 했으나 어김없이 가방 모두를 검사대에 밀어 넣으란다. 술 2리터에 담배 2보루까지 면세라고 하는데... 행운을 빈다.

10. PCR 검사를 받는다. 여기서 다시 호텔 예약 서류를 내야 하고, 2차 접종 확인(Coov) 또는 맞은 백신 종류를 물어볼 수 있다. 그래서 서류는 2부 또는 사본을 가지고 있으면 좋겠다.

11. 다음은 카운터. 격리 지정 호텔 4곳에서 차린 카운터가 있다. 본인이 예약한 호텔 앞에 가면 보딩패스를 요구한다.

12. 안내에 따라 기다리고 있으면 셔틀버스가 오고, 짐과 함께 실려가면, 줄 서서 호텔 체크인하고, 짐 찾아서 방으로 옮겨 달라고 하고, 본격적으로 격리 시작된다.


나는 9개월 전 베트남 주재원을 마치고 귀국할 때 한국에서 14일 격리를 해 본 경험이 있. 조국에서 이밥에 고깃국 먹는 격리와 달리, 타국에서의 격리는 어떨지가 좀 걱정되긴 했다. 이를 위해, 선구자의 발자취를 쫓아가며 준비한 것들은 다음과 같다. 

살로 돌아온 비상식량들

이 중 핵심은 라면포트다. 라면 끓이기, 커피물 끓이기, 레토르 식품 데우기 등 다양한 용도로 쓰인다. 준비는 매우 훌륭했다. 그러나, 문제는 식사가 입에 안 맞는다고 한 개, 반복되는 메뉴가 지겹다고 한 개, 출출하다고 한 개, 심심해서 한 개 먹다 보면 살이 찐다는 것이다. 지금 격리 마지막 PCR 검사 외출을 위해 올 때 입었던 바지를 입고 있는데 숨이 잘 안 쉬어진다.


다 있다는 가게에서 사 올만한 준비물을 꼽아 보자면, 다용도로 쓸 스테인리스 국그릇, 목재 수저, 스펀지 수세미, 주방세제, 위생비닐백, 멀티콘센트, 물티슈, 샤워타월 등이 있겠다. 읽을 책도 있으면 좋은데 e-Book으로 대체 가능하고, e-Book의 장점은 잠이 오지 않을 때 스마트폰에게 대신 읽어 달라고 하면(TTS : Text To Speech) 금방 잠에 빠질 수 있다. 적어도 나는 그다. 유용한 준비물 가운데 나는 빨랫줄과 빨랫비누를 추하고 싶다. 평소 한 2주 정도는 같은 셔츠에 같은 팬츠로 버틴다거나, 속옷 등을 1회용으로 가져오신 분들은 해당사항이 없겠다. 격리기간 중에는 세탁물 서비스 안 되니까 간단한 빨래는 손으로 하고 빨랫줄을 설치해서 말리면 뽀송뽀송 깔끔한 격리생활이 가능하다. 섬유유연제는 필요 없다. 어매니티 린스를 대용으로 쓰면 된다.


평일은 그나마 갑갑함이 덜하다. 태블릿과 스마트폰으로 재택근무 형태의 업무를 보기 때문에 화상회의와 서류 작성 검토 등으로 시간이 착실히 간다. 한국 업무 시작 오전 9시는 여기 오전 7시로 양국의 업무를 다 보면 하루가 좀 일찍 시작하고 똑같이 끝나는 꼴이 된다. 일과 후와 주말이 무료하다. 평소 집에 머무르기를 좋아하는 분들도 여기는 또 집은 아니기 때문에 느낌이 다를 것이다. 주말에 캠핑을 가는 나 같은 사람은 출장에 묻혀버린 두 번의 연휴와, 한국의 맑은 가을 하늘과, 불잉걸에 익어가는 고기와, 기타 반주에 실린 한 소절 노래 가사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동영상이나 영화 플랫폼, 핸드폰에서 하는 게임 등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하지만 하루 온종일 그것만 는 것도 할 짓은 아니므로 취미생활을 하나 동반해 오는 것도 좋을 듯하다. 나는 우쿨렐레와 칼림바 사이에서 갈등했다. 원래 취미인 기타는 예선 탈락했고, 결국은 부피와 음량 부분에서 칼림바에게 패배한 우쿨렐레도 본선 탈락했다. 칼림바는 아직 초보 단계라 흥미도 유지되고 소리도 크지 않아 잠들기 전 침대에 기대어 연습을 하면 맘이 편해지곤 했다.

칼림바

제한된 공간에서 14일을 지내다 보니 정말 제한적인 활동만 하게 된다. 거기다가 꼬박꼬박 제공되는 끼니에 삼식이가 될 수밖에 없다. 본전 생각에 바리 공양을 하게 되는 심리도 있어서 섭취량은 평소보다 많을 수 있다. 그래서 매 끼니 후에 운동을 권장한다. 나는 주로 '국민체조 3회 반복' 동영상과 주부를 대상으로 한 홈트를 따라 했다. 보는 사람 없으니 창피할 일도 없다. 다만 층간 또는 옆방 소음은 주의하도록 하자. 나는 옆방에 일본 여자분이 찬송가를 계속 불러서 괴로웠다. 같이 고생하는 처지에 컴플레인을 하지는 않았다.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위드 코로나라는 말로 대표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 격리라는 말도 좀 있으면 예전처럼 법정에서나 쓰이는 말로 회귀할지 모르겠다.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고 더 많은 사람은 살아남았다. 코비드19 대유행은 아마 인류 역사에 꽤 많은 페이지를 차지하는 사건으로 남을 것이다. 여기 남긴 이 짧은 경험과 기록도 참조할 필요 없는,  심심풀이 읽을거리 정도가 어서 되어버리면 좋겠다.


https://www.notion.so/74b82aabd8f44408aa5e1385163131b8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빨래를 말리려고 여기다가 옷걸이를 걸고, 빨랫줄을 맺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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