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를 통해 하루하루의 의미를 기록하던 때가 있었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당시 해외에서 근무하던 나는 한국 본사에 리포트를 쓰는 기분으로 그날그날 있었던 일들을 남겼다. 사는게 다 그렇지만 의도와는 다르게 무위로 끝나는 일도 있다. 그런 날은 그런 날대로 그 허무함과 함께 다음의 각오를 남겼다. 지금도 가끔씩 SNS는 소위 앨고리듬을 돌려서 그날들의 기억을 일깨워 준다. 지금도 그 기록을 볼 때 나는 가슴이 뛴다. 살면서 몇 번은 모든 것을 걸고 승부를 한 적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때가 그런 때 중 하나다. 그중에서도 으뜸이다. 일이 잘 풀려서 노력과 성과에 그치지 않고 '보람'이라고 하는 부상도 받았다. 그래서 특별하다.
하루하루는 지구의 자전과 공전이 멈추지 않는 한 계속된다. 그래서 나에게도 해가 뜨는 아침과 달이 뜨는 밤이 온다. 그 속에 계획을 세우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을 받으며 일을 실행해나갈 때 매순간이 의미있어진다. 한가지 조건이 있다면 자기주도라는 형태를 갖추어야 효과가 배가된다는 것이다. 때로는 남이 시키는 일만 할 때 안정감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군가 말했듯이 배는 항구에 있으면 안전하지만 그것은 배가 만들어진 목적이 아니다. 항해가 시작될 때 비로소 배는 가치가 생기고, 선장의 입장이 될 때 항해의 모든 것을 온전하게 느끼며 주도적으로 일을 할 수 있다. 물론 갑판장이나 조타수나 요리사까지도 주인의식을 가지고 항해에 임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그런 이상적인 모습은 현실에 잘 없다. 말에도 그런 늬앙스가 묻어 있는데 주인 뒤에는 '의식'이고 노예 뒤에는 '근성'이다. 주도적으로 일을 이끄는 열의와 보람은 또 따로 있는 것이다.
싫으면 자영업하라는 말이 있다. 세상에 갑과 을의 관계는 없어지지 않겠지만, 그래도 을의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입장, 더 나아가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 일제강점기를 그린 소설을 읽다보면 '지주'로 대표되는 자본가와 '매국노'로 대표되는 정치가, 그리고 이들을 통칭할 수 있는 '지배계층'이 거의 모든 악행을 저지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반대편에는 '피지배계층'이라고 할 수 있는 '힘없는 나라의 소작농민'이서있다. 그 두 계층 사이에 항상 주구들이 존재하는데 순사, 마름, 밀정 같은 계층을 예로 들 수 있다.
현대의 '직장'이라는 것은 어떠한가. 긍정적으로 보면 개인의 이상을 조직의 목표에 맞춰서 경제적 이익과 노동의 보람을 느끼는 것이 직장이다. 또 부정적으로 본다면 급여를 받아 삶을 이어가고 싶은, 또는 이어갈 수 밖에 없는 다수의 사람들이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삶을 저당잡힌 채 부당한 대우와 강박과 회유와 실직의 공포 속에 살아가는 장소라고도 할 수 있다.이상적으로 보는 것과 현실적으로 보는 것으로 구분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민중이 대단한 것은 유구한 역사를 채워 나갔던 그 하루하루들, 지옥과 같을 수 있는 그 하루하루를 어떻게든 살아나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하루도 사실은 그렇지가 않으며, 우리의 일상은 이야기가 되고 글이 된다. 그들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우리는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