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금

갚을 수 없는 빚

by 멧별

휴가 짐을 싸다 보니, 오래 묻어 두었던 기억 하나가 불쑥 떠올랐다. IMF 구제금융 때 내놨던 금. 그때 국가는 국민들에게 금을 모아서 위기를 극복하자고 했고, 당시 신입 은행원이었던 나는 지점 실적에 보탬이 되기 위해 금을 내놨다. 그런데 사실, 그 금은 내 것이 아니고 어머니의 것이었다. 어머니께서는 내가 실적 얘기를 하자 어디선가 금을 꺼내 주셨다. 당시 살림이 넉넉지 않았는데도 금을 간직하고 계셨다는 것이 지금 생각하면 매우 신기한 일이다. 그러곤 시간이 흘러 우리는 그때를 까맣게 잊고 지냈다.


나는 '어머니에게 그때의 금을 돌려 드려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도 금을 따로 모을 형편은 아니라, 가지고 있는 금이라곤 근속 20년 순금 휘장뿐이었는데, 그것을 가방에 넣었다. 물론 아내의 흔쾌한 승낙도 받았다. 받으신 어머니는 "나는 그때 네가 취직한 것이 너무 좋아서, 금이 아깝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고 하신다. 가세가 한 번 휘청하고 직업전선에 뛰어든 어머니는 고생을 많이 하셨다. 그럼에도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를 존중하고, 자식들에게 헌신했다. 지금도 풍족하지 않을 생활이지만 자식의 도움을 최소화하고자 뭔가를 계속 찾아서 하고 계신다.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이번 여름 휴가는 이런저런 이유로 나와 부모님, 이렇게 셋만 함께 가게 되었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경주의 호텔에 당첨되었다. 우리는 휴가 2박 3일을 알차게 보냈다. 이 세 명의 조합은 따지고 보면, 내가 태어나고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지의 가족 구성이다. 누구에게나 첫아이의 기억은 얼마나 특별한가? 그 아이는 이제 아버지가 되어 반백의 어머니, 아버지를 모시고 여행을 왔다. 아직도 어머니의 눈에는 내가 갓난아기로 보이고, 아버지의 눈에도 유행가를 잘도 따라 부르던 어린 아들로 보이는 것 같았다.


울산 고래마을, 경주 보문단지, 문무대왕 수중릉 등을 둘러보고, 맛있는 식사도 하고, 멋진 카페도 가고, 그렇게 보냈던 좋은 시간 중에도, 마음이 아파 오는 시간이 있었다. 노쇠한 부모님의 모습을 실제로 보고 느끼게 된 것이다. 괜찮다는 말만 믿고 지나온 지난 시간이 죄스럽고 미안해졌다. 다 갚을 수는 없겠지만, 작은 금 한 조각을 시작으로 할 수 있을 때까지 시간과 마음을 계속 안겨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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