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만큼 힘들고 외로운
우리 집 앞에는 아리랑시네센터가 있다. 성북구에서 운영하는 영화관으로, 아리랑도서관과 붙어 있다. 특성과 기능을 묶어서 이름을 지어 보자면 ‘지역 근린 공공 복합 문화 시설’쯤이 되겠다. 어느 날 그곳으로부터 메시지 한 통이 왔다. ‘인디서울 2025’에서 독립영화 무료 관람권을 배포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인디서울은 서울시가 독립영화를 무료 또는 저렴한 관람료로 상영하는 행사라고 한다. 잘은 모르지만, 이를 통해 독립영화의 저변을 넓히고 시민들의 문화생활 기회를 확대하려는 숭고한 뜻이 담긴 행사이겠거니 짐작했다. 한 십 년 정도 계속된 것 같은데, 물론 코로나 때는 쉬었겠지만, 취지가 좋은 것 같다. 내 일정과 맞는 영화는 ‘여름이 지나가면’이라는 제목이었는데, 아무 정보 없이 날짜와 시간만 보고 무료 관람권을 신청했다. 결과는 초대 관객으로 선정! 최근 들어 뭐 하나 되는 게 없는데, 이런 거라도 떡하니 당첨되니 기분이 좋았다.
처음 제목을 들었을 때는 이런 상상을 했다. 젊은 남녀가 우연한 기회로 낯선 휴가지에서 만나게 되고, 모험 또는 낭만을 함께하며 사랑을 싹 틔우다가, 정말 사소한 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여름이 지나가는 어느 비 오는 날,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는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 엔딩 컷에 ‘여름이 지나가면…’ 이렇게 자막이 뜨면서 끝나는 영화가 아닐까?
막상 포스터를 봤을 때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부모 없이 어린 형이 배달을 하며 동생을 혼자 키우는데, 어두운 일에 휘말려 동생이 죽고, 복수를 위해 폭력배들과 맞서다가 여름이 끝날 무렵 어느 외진 곳에서 주인공도 비운의 죽음을 맞이하는, 그런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상상.
실제로 마주한 영화에는 ‘돈’이라는 한 단어로 압축되는 세계가 있었다. 부모가 없이 아이들만 남겨져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으며 살고,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다소 난폭해지고 거칠어지고, 지방 도시에 살면서, 학교에서도 사실상 포기당한 채, 남의 물건을 훔치고, 법을 어기는 형과 동생이 등장한다. 그들을 수식하는 그 모든 것의 원인은 바로 돈이라는 것이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아닌가 싶었다.
나는 ‘돈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말을 자주 듣고 자랐다. 내가 자랄 때 우리 고향과는 다른 어떤 지역에서는 혹시 ‘돈이 전부다.’라는 말을 듣고 자란 아이들이 있었는지, 그것은 잘 모르겠다. 상대적으로 돈이 없는 축에 속했던 시절에는 그 상황을 아주 조금씩이라도 개선시켜 나가는 것이 보람이고 자랑이라고 믿었고, 그래서 뭔가를 분주하게 준비하고 노력했던 것 같다. 나와 비슷한 비장함과 진지함, 어깨 가득 내려앉은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박수받던 시대도 분명 있었다.
영화는 그런 시대가 끝났음을 말해 주는 것 같았다. 세상이 그래서 아이들이 그렇게 되었는지, 부모들이 잘못해서 아이들이 그렇게 되었는지, 학교가 그들을 망쳤는지, 아니면 AI와 디지털이 그렇게 만든 것인지, 결국 돈이 저질러 버린 것인지, 영화는 쉽게 답하지 못한다. 다만 망쳐진 환경에서 인간은, 특히 아이들은 더 야생의 동물이 되고, 언제인들 그러지 않았냐는 듯 유인원의 본성을 드러내게 되는 것 같았다.
있을 법한 이야기인데 불편하고, 불편하지만 숨기지 않으니 또 후련하고, 그러면서도 갈비뼈에 난 실금처럼 아주 얇은 틈새로도 희망이라는 것이 찔끔찔끔 흘러나오는 상상을 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영화를 만든 감독과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 간에는 공감대가 있거나 생겼다고 가정할 때, 좀 더 큰 공감대 형성을 위해서는 주최 측이 홍보에 좀 더 노력하면 좋겠다는 비판적 지성도 살짝 가져보았다.
오지랖인지도 모르겠지만, 영화 제작자가 이 영화로 팔자를 고치지는 못할 것 같다. 그러나 그의 숭고한 예술혼에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낸다. 누군가 상처를 드러내고, 이건 상처이며 정상이 아니라고 말해 주고, 정신 차리라고 조용히 뺨 한 대를 갈겨 줄 때, 우리는 그나마 인간성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독립영화들이 그런 역할을 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독립운동만큼 힘들고 외로워 보여서 마음이 쓰이기는 해도, 감사한 것은 영화를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은 또 이 작은 무료 영화 이벤트에도 이렇게 들떠서 나불거릴 수 있다는 것이다. 잘되시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