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이야기

ATM

by 멧별

영어로 동물원은 Zoo라고 하는데 동물을 뜻하는 그리스어가 어원이라고 한다. Z는 알파벳의 마지막 글자로 어린이에게 파닉스를 가르칠 때는 얼룩말(Zebra)이 단골로 등장하고, 청소년에게 가르칠 때는 동물원(Zoo)을 예로 들며, 다 커서 군대 가면 알파, 브라보, 찰리 하다가 맨 끝에 줄루(Zulu)를 배우게 된다. TMI지만 아프리카 줄루족의 영웅 '샤카 줄루(Shaka Zulu)'를 아신다면 우리는 동년배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우리 동네에는 '어린이대공원'이라는 국가 시설이 있었는데, 그 안에 동물원이 새로 차려졌다. 기존 동물원은 집과 먼 곳에 있었기 때문에 온 가족이 특별한 날 큰맘 먹고 방문하는 장소로 여겨졌었다. 그런데 집 가까운 곳에 동물원이 생기니, 방과 후에도 찾아가서 늑대, 너구리, 바다사자, 물개, 사슴, 곰 등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무척 즐겼던 것 같다. 그때는 나에게도 동심이라는 것이 있었고, 책으로도 동물 이야기를 많이 접해서 그 친근함은 더했다.

당시 계몽사는 국민을 어릴 때부터 계몽하기 위해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을 편찬했다. 세종대왕도 어린 백성들을 계몽하기 위해 훈민정음을 만드셨는데, 그렇듯 계몽은 주로 말과 글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왜 ''''을 동일시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세계문학전집에는 동물과 관련한 몇 권의 책이 있었는데, 지금도 기억이 나는 건 '시이튼의 동물기'와 '돌리틀 선생 항해기'다.

요즘은 '시튼 동물기'라고 번역하던데, 당시 '시이튼'이라고 길게 발음한 것과 '~의'라는 관형격 조사를 넣은 것은, 아마 일본 원판을 옮겨 오면서 장음 부호(ー)와 소유격(の)을 섬세하게 번역한 것 같다. 거기서 늑대왕 로보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로보 이야기는 '신비 시리즈' '동물의 신비' 편에도 나왔다. 나 어릴 적 봤던 신비 시리즈는 지구의 신비, 곤충의 신비 등 한 스무 권 되는 전집이었는데, 우리 애들 어릴 적 봤던 공전의 히트작 Why 시리즈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다. TMI로 한국은 1987년 '세계저작권협약'에 가입했다.

동물과 말을 할 수 있는 돌리틀 선생의 이야기도 정말 흥미로웠다. 항해기라기보다 모험에 가까운 그 이야기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던 것 같다. '돌리틀 선생'도 예의 일본어 발음과 연관이 있는 것 같은데, 도리토루센세(ドリトル先生)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 같다. Dolittle을 미국 사람에게 읽으라고 하면 십중팔구 '두리틀'이라고 할 것이다. 2020년 영화에 와서야 '닥터 두리틀'로 번역된다.

동물원과 책에서 만난 동물들을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갇힌 동물과 자유로운 동물. 인간은 큰 딜레마에 빠지는데, 동물이 너무 좋아서 가둬놓고 볼 수밖에 없다는 생각과 동물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그들을 가둬선 안 된다는 생각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동물을 가둬놓고 보자는 다수의 사람들이 뭉쳐서 단체를 만들거나 시위를 하지는 않지만, 소수의 그 반대자들은 다르다.

ALF(Animal Liberation Front, 동물해방전선)가 대표적인데, 영화 '옥자'에도 등장한다. '옥자'를 도우면서 본인들의 목적도 달성하려 하는 조직으로 묘사되는데, 이상이 너무 높으면 현실과의 괴리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동물을 보호하기 위해 사람에게 재산 피해를 입혀도 되는가 같은 논란이 그것이다.

ALF에 대적할 만한 가상의 단체도 영화 '12 몽키즈'에 등장하는데 그 이름도 멋진 ATM(The Army of the Twelve Monkeys, 12 원숭이 군대)'이 그것이다. ATM은 내가 그냥 만들어 써봤다. 은행원이라는 직업의 영향인 것 같다. 그들의 '과격한' 반란은 동물의 해방이라는 '장엄한' 결과로 끝을 맺는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영화 '혹성탈출'에서는 동물이 동물을 도와 해방을 맞이한다. 영화의 특성상 물건 물(物)을 써야 할 곳에 놈 자(者)를 쓰고자 한다. 문자 그대로 먼저 깨어난 놈, 선각자(先覺者)인 주인공 시저는 아직 무지몽매한 자들을, 어감이 좀 불량스러운 '가스 흡입법'을 통해 자각시킨다. 무리를 이끌고 답답한 도심을 탈출한 시저는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위를 달려 한적한 교외의 국립공원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한다. 여러 말을 통해 유인원을 계몽시키는데, "Apes together strong."이 대표적이다. 계몽은 말로 하는 것임을 침팬지도 안다. 회사를 집으로 여기라는 여느 사장님들 말씀같이 "Caesar is home."이란 말도 한다. 영어, 어렵지 않다.

'시이튼의 동물기'도 인간에게 붙잡힌 동물들의 비극을 이야기하고 있고, 지능이 높은 동물일수록 인간도 느끼는 폐쇄의 불안과 억압의 공포로 괴로워한다는 것이 알려진 지 오래다. 똑똑해서 좋아하던 돌고래쇼의 이면에 똑똑해서 느끼는 돌고래의 슬픔이 있었던 것이다. 인간은 끝을 모르는 동물이라 극단에서 잔인한 사냥을 즐기는 자들이 있지만, 또 반대편 끝에서 측은지심을 동물에게까지 확대 적용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애완동물, 요즘말로 반려동물을 키울 자신이 없다. 게으르고 여건이 안 되는 이유도 있지만, 가까이한 이상 그들과의 이별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다. 그리고, 지금은 주체 못 할 만큼 사랑이 남아서 또 다른 대상을 찾아야 하는 사랑꾼의 상태는 아닌 것 같다.

사랑까진 아니라도 동물을 괴롭히며 살진 않아야겠다. 우리는 누구나 혼자 남는 날이 올 수도 있으니까,젠가 동물과 함께할 마음의 준비는 해두어도 무방하겠다. 그러나 그냥 예쁘다고 기를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직 굶고 힘든 사람도 많다. 나눌 맘과 여유가 있다면 사람에게 먼저 기회를 줘도 좋을 것 같다. 동물 팔자가 사람 팔자보다 나으면 사람이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