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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멧별 Jul 02. 2020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아이들과 나도 화석처럼 거기에 남겨졌으면

문경수 씨는 과학 탐험가다. 그는 강연도 하고 책도 냈다. 그는 한우물을 판 것으로 추정된다. 나는 그 이름을 오늘 처음 들었다.

이 사람이 문경수 씨다. 저 공룡 화석이 낯익다.

이 이야기는 문경수 과학 탐험가로 시작되었지만 그와는 상관이 없다. 그의 동영상에 언급된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거기 가본 적이 있다. 십몇 년 전 아이들을 데리고 갔었다. 몇 안 되는 아비 노릇 중 하나였다. 그래도 아직 기억에 남는 걸 보면 인상 깊은 날들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립고 쓰리다.


공룡의 이름은 '트리케라톱스'다. 영어 유치원에서는 '트라이세라텁스'라고 가르친다. 뿔이 세 개 달린 얼굴이란 뜻이다. 나도 애들 키우면서 배웠다. '쥬라기공원' 시리즈를 볼 때 말고는 커서 쓸 일도 없을 단어들을 배우느라 치른 대가가 컸다. 혹 나중에라도 먹고사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


일단 영어 논란은 차치한다. 그러고 나면 박물관이란 곳은 꽤 매력적인 곳이다. 특히 자연사박물관은 말 그대로 '자연의 역사'를 보여주는 곳이다.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 1편'이 뉴욕 맨해튼에 있는 '미국자연사박물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박물관이 살아있다 3편'에 등장하는 '대영박물관'은 전리품 전시관 같은 느낌이다.

전리품 전시관 같은 박물관 앞에 선 아들 2호(노란색 패딩). 수험생인 그에게 특별한 응원을 보낸다.

거의 모든 자연사 박물관은 공룡 화석을 떡하니 홀 중앙에 배치한다. 그렇게 해서 자기네 박물관의 관심은 오로지 '자연'에 있음을 강조하는 샘이다. 이집트의 미라와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유적까지 잘라와서 전시해 놓은 '전승 기념관'과는 결이 다른 것이다.

'비둘기에게 수수료를 주지 마시오'가 된 대영박물관 경고판. 2012년 아빠가 찍어 온 사진의 실물을 2017년에 직접 확인하고 재밌어하는 아들 1호. do도 지워짐.

과거에 살았던 생물이 퇴적층 안에서 굳어져 돌처럼 되어버린 것을 화석이라고 한다. 인간은 화석을 통해 죽은 생물의 몸체와 삶을 유추한다.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약간의 과장을 더해서 거대한 모형도 만든다. 공룡, 매머드, 삼엽충, 시조새, 양치식물 등 돌에 남은 흔적을 보고 살아 움직이는 것들을 상상해 낸다.


호박 속 모기 화석에서 공룡의 DNA를 추출해 다는 쥬라기공원에는 과학자들이 등장한다. 평생 책과 돌 속에서 상상만 던 공룡의 실물을 만나는 장면, 나는 그들의 표정과 감정에 주목했다. 그들에게 공룡은 연구대상임과 동시에 친구, 애인,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런 순수한 애착이 학문과 진리에 대한 갈구를 만든다.


내가 아이들을 자연사박물관에 데려간 이유는 뭘까? 그런 갈구를 자극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음을 시인한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지났다. 내 기대의 정확한 지향점도 흐릿해지고, 양육의 범주에서 이제 그들은 벗어나고 있다. 그들이 영화 속 인디아나 존스가 되든, 박물관의 야간 경비가 되든, 이미 그것은 내 몫이 아니다.

스테고사우르스. 그립고 이유 없이 쓰리다.

'자주 다니던 서울 저 동네에 아파트 한 채 살 용기는 왜 못 을까'하는 후회로 점철된 내 삶도 언젠가는 화석이 될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했던 시간을 저 공룡처럼 화석으로 남기고 싶다. 박물관 한 구석에 그 추억의 화석을 전시하고 싶다. 그들에게 더 이상 마법의 드래곤이 필요 없어지더라도 난 박물관을 찾아 그 화석을 감상하련다.


링크는 'Puff, the Magic Dragon' by Peter, Paul and Mary

https://www.youtube.com/watch?v=z15pxWUXv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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