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델루나 사장 장만월이 떠났다. 그대는 휘파람 휘이~히 불며 떠나가 버렸다.
카메오든 우정출연이든 인기 연예인 총출동에 '트루먼쇼'급 PPL이 난무하는 전형적인 요즘 드라마였다. 그러나, 가볍지 않다고 느꼈다. 평범한 우리들 마음속 아프고 어두운 것들을 죄다 끄집어내어 귀신들의 사연으로 잘 풀어냈기 때문이다.
윤회, 업보, 복수의 허무. 작든 크든 죄 안 짓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죄를 지어 남을 상하게 하면 그 값을 반드시 치루어야 한다는 권선징악의 교훈이 깔려 있다. Boy George가 신나게 불렀던 Karma chameleon을 들어보면 진실되지 않은 삶은 심판을 받게 될 거라는 뭐 그런 내용이다. 인터넷에 유행했던 Karma is a bitch란 문장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사적인 복수는 상대도 파괴하고 나도 파괴한다는 교훈이 한 꺼풀 더 깔려 있다.
극에서 사랑, 배신, 오해로 비참하게 파괴된 4명의 남녀가 ‘한’과 ‘업보’를 지고 천년을 헤매인다. 특히 주인공 지은이는, 아 죄송합니다. 장만월은 이승에 몸이 묶여 복수의 칼을 가는 것으로 천년을 보낸다. 그러다가 윤회를 통해 모두 현세에서 다시 만나 서로의 오해를 풀고, 자연스럽게 산 자는 계속 살아가고, 죽은 자는 저승으로 떠나게 된다.
'신과 함께'도 그렇고 요즘 부쩍 사후세계에 대한 관심이 높다. 현실이 팍팍해서 그런 것일까? 조직적 묵인 속에 서서히 구축되어 온 신계급사회가 고착화되고 있고, 시작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축구를 해야 하는 불평등이 심해지고 있다고 일부가 주장하고 있으며, 소수의 가진 이들과 다수의 없는 이들이 서로가 나라의 주인이라 주장하며 대치하는 현실세계는 아마도 사후세계와 그 안락함의 경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별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언젠가는 헤어질 것이 뻔하지만 그래도 이별은 슬프다. 회자정리라고 주문을 외우며 마음을 훈련시켜도 이별은 오고 우리는 운다. 그것이 영원한 이별일 수 있는 '죽음'일 때는 더 크게 운다. 마치 죽을 것처럼 운다. 그러나, 짧은 내 인생에 비추어 봐도 간 사람은 가고, 남은 사람은 또 남는다.
남은 사람들이 울면서 생각해 낸 개념이 윤회라고 보인다. 회자정리의 반대 주문으로 거자필반이라는 말도 만들었다. 월급날이나 카드결제일처럼 정말 딱딱 맞춰지는 것이 아니라 언제일지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몇 갑자든, 천년이든, 만년이든 또는 바로 다음 날이든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꿈같은 얘기는 얼마나 매력적인가?
서양 사람들도 윤회의 매력을 알고 있는 것 같다. 영화 '드라큘라 전설의 시작'에서 불멸의 화신 드라큘라는 자신이 구하지 못했던 미레나 왕비를 환생한 모습으로 현재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물론 아닌 경우도 있다. '원더우먼'에서 산화한 트레버 대위는 시간이 흘러도 프린세스 다이애나 앞에 돌아오지 않았다.
가끔 큰 희생으로 타인의 삶을 연장하고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밀러 대위는 마지막 순간 일병! 라! 이! 언!에게 “Earn this, earn it”(희생의 가치를 헛되게 하지 마라.)라는 유언을 남긴다. 영화 말미에서 노년의 라이언이 훌륭한 인생의 흔적이고 증거인 가족과 함께 밀러 대위의 무덤 앞에 선다. 그리고 "I hope at least in your eyes, I earn what all of you have done"(적어도 당신의 눈에는 내가 당신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았다고 보였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는 장면은 명장면이 된다.
진실되게 최선을 다하는, 그리고 남을 이용하거나 괴롭히지 않는 인생이란 참 어렵지만, 삶과 죽음, 업보와 윤회에 구애받지 않고 행복해질 수 있는 유일한 답일 거라고 이 연사 강력하게 외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