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을 차리다.

[레디메이드 대리 인생] 2

by 멧별

익숙한 어지러움과 메스꺼움이 치민다. 숙취의 느낌이다. 기억들은 방금 뜯은 ‘최후의 만찬’ 200피스 퍼즐 같다. 유다의 얼굴 부분을 겨우 찾았다.

‘내가 산 중고차다!’

오전에 후배의 지인이 와서 키를 건네고 차를 사무실 지하 주차장에 두고 갔다. 그 키는 아직 그대로 꽂혀있다. 나는 왼쪽 뒷주머니를 더듬어 본다. 비어있다. 어머니는 살면서 영국 신사를 만난 적이 있을까? 영국 신사가 되라고 항상 강조했던 어머니는 왼쪽 뒷주머니에 지갑을, 오른쪽 뒷주머니에 손수건을 넣어 다니라 가르치셨다. 오래 전의 가르침이었지만 나는 살면서 그것을 세상사는 중요한 원칙 중 하나로 실천해 왔다. 그런 모성애의 발현이자 가정교육의 집합체인 왼쪽 뒷주머니가 비어있다.


낭패감을 느낀 지 몇 초 후 지갑은 운전석 시트 위에 입을 떡 벌린 채 발견된다. 그 입속은 비어있고 가지런히 꽂혀 있던 신용카드들도 주인의 망설임과 궁색함에 의해 좀처럼 나오지 않던 자리를 비운 채다. 먼 고향 부산에서 운전면허시험을 한 번에 통과하고 따낸 자격증에 스무 살 어린 나, 아니 박 대리, 아니 박나훈이 웃고 있다. 이 상황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천진하고 맑은 웃음이다. 박나훈을 따라 웃어보려는 시도를 하다 이내 고통에 얼굴을 찡그린다. 찡그리는데 익숙한 얼굴 주름을 따라 자연스럽게 표정이 완성된다. 웃음의 어색함이 가신 지금의 표정이 수면내시경을 위해 투여된 프로포폴의 느낌처럼 매우 편안하다. 어떻게 항상 그렇게 웃는 표정이냐며 사람들은 물었다. ‘먹고살려면 웃을 수밖에 없잖아요.’라고 생각하면서 “바보는 항상 즐겁잖아요.”라고 대답했다. 그럴 때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간이나 쓸개로부터 ‘거지새끼' 하는 조롱이 울려 나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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