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디메이드 대리 인생] 4
충직한 베드로의 출근에 대한 기억이 느물 느물 떠오른다. 화학약품들을 뒤섞어 튜브에 채우고 뚜껑을 닫아 포장박스에 넣는 것 이외에 별다른 공정이 떠오르지 않는 치약공장. 출근 준비는 항상 그처럼 간단했다. 어제로 추측되는 날의 아침도 그랬다. 알람을 듣고 눈을 뜨고 욕실에 들어가 면도, 양치, 샤워를 했다. 손으로 적당히 뜨거운 온도를 맞추고 나면 항상 물줄기는 사타구니를 먼저 향했다. 드라이기를 들었을 때도 항상 사타구니부터 말렸다. 몸의 그곳을 차갑게 유지해야 양질의 정자가 생산된다는 지식을 동냥으로 알고 있지만 이미 두 명의 차세대를 보유한 나로서는 무의미한 조언에 지나지 않았다. 그 보다는 뽀송뽀송한 팬티 속과 출근시간이 더 중요했다. 뭔가 잘 안 되는 것에 대한 화풀이라도 하는 듯 ‘쓸데없는 것들!’이라 외치며 뜨거운 바람으로 그곳에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잘 다려진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슈트를 입고 구두를 신고 집을 나섰다.
아침 6시 반. 어떤 부류의 사람들은 새벽이라고 표현할지도 모르겠다. 이제 30여 킬로미터 밖의 회사로 이동해야 한다. 하루의 노고를 미리 격려하는 아내의 포옹과 키스, 두뇌회전에 무척이나 도움이 된다는 탄수화물이 풍부한 아침식사 따위는 없었다. 빨간색으로 칠해 놓고 고집스럽게 Red의 R자를 프린팅 해 놓은 광역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운정신도시와 일산신도시를 샅샅이 뒤지며 사람들을 태웠다. 아우슈비츠 가스실로 들어가는 유태인들의 얼굴이 오버랩된다. 나는 운전석 바로 뒤 복도 쪽 자리에 앉았다. 다른 이를 창 쪽에 앉힐 때 다리를 약간 비트는 정도의 수고만 하면 벽과 사람 사이에 바짝 끼이는 불편함을 피하고 내릴 때 먼저 내릴 수 있는 달콤함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대화역에 섰을 때 에어컨을 더 틀라는 한 승객의 분기탱천한 발표가 있었다. 잠시 후 발표를 비웃듯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코골이 때문에 오래전부터 아내와 각방을 쓰고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강도였다.
주엽역에서 탄 남자의 이어폰은 원래의 기능을 망각한 채 타인들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있었다. 가수도, 가사도 알 수 없었지만 탁하게 울리는 비트에 가벼운 춤을 춰도 될 만큼 소리는 컸다. 마두역에서 차에 오른 아주머니는 큰 소리로 아직 잠자리를 박차고 나오지 못한 아이를 훈계했다. 아주 가끔 공손한 항의나 가벼운 팔꿈치 질로 그런 반사회적 행동들을 직접 제지하는 사람들이 나서지만 대부분은 힐끔거림이나 헛기침 등으로 본인이 정말 비굴하지는 않음을 확인하는데 그친다. 그러곤 주변의 소음을 BGM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이어폰으로 귓구멍을 막아 버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