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디메이드 대리 인생] 8
손목시계는 3시 12분이다. 해가 없으니 새벽이다. 어제가 분명하다. 권 팀장이 거래처를 접대하는 자리가 있으니 함께하자고 했다. 함께하자는 말은 함께 가자는 말보다 조금 심오한 말이다. 함께해서 역할을 충실히 해내라는 뜻이다. 접대 상대와 인원수도 맞추고, 직급의 다양성도 제공하면서, 음주량도 함께 나누자는 얘기다. 뻔한 자리다. 우리 쪽과 저 쪽이 마치 정상회담같이 양쪽으로 나눠 않는다. 접대받는 누군가가 ‘이거 뭐 편 갈라서 싸우는 건가? 허허허’ 하는 유의 의례적인 말로 포문을 열면 전원이 ‘허허허’로 시작에 동의한다. 먼저 제일 높은 사람이 소주와 맥주를 혼합한 폭탄주, 일명 소폭을 만다.(언제부턴가 폭탄주는 마는 것이 되었다.)
‘삼국지’와 ‘대망’에 심취하지 않은 사람이 없어 폭탄주 만드는 사람을 ‘병권을 쥔 사람’이라 부르며 띄워준다. 마주 앉은 넥타이 부대들 간에는 저마다 원하는 것이 있을 뿐 선의도 악의도 없다. 주면 받고, 받으면 줘야 한다. 주고받음의 양은 동일해야 한다. 넘치거나 모자라면 뒤처리가 곤란하다. 술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양을 나누어 마시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보면 술을 권하는 것은 공격행위다. 좋은 거면 서로 마시려고 할 텐데 그런 사람은 드물다. 잔을 주고받다가 ‘아 이거 날 완전히 죽이려고 하는군.’하고 불만 표시를 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그런 지위에 있는 사람에 한한다. 어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인도네시아 대사관 옆 식당에 3대 3으로 마주 앉아 숯불을 쬐는 것으로 접대는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