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X-2221

단편습작

by 변석호

왼쪽 관자놀이가 뜨겁다. 머리에 이식된 기억소자를 돕는 칩이 반 틈 녹았다. 나는 몇 번을 까무러치고 눈을 뜬 것인가? 작은 창에 보이는 황색 행성이 왼쪽에서, 오른쪽... 오른쪽? 맞는가? 이번엔 왼쪽이다. 캔 같은 곳에서 나는 둥둥 떠 있다. 무중력 감옥이었던가? 뇌와 연동된 칩이 꼬인 탓인지 어떤 기억도 명확하지 않다. 내가 무엇을 한 거지? 아니 내가 누구인지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나가면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있을 것이다. 다행히 안이 어수선하다. 튀어나온 전선과 구겨진 벽, 분명히 소행성의 파편과 부딪혔을 것이다. 몸을 비튼다. 이 무중력에서 몸을 비틀고 늘리는 것 외에는 한 뼘도 이동할 수 없다. 겨우 전선이 손끝에 스친다. 이윽고 손가락 틈에 슬쩍 스치는 전선 조금도 멀어지면 안된다... 살짝만 당겨도 나는 벽에 붙을 수 있을 것이다. 전선을 검지와 중지 끝으로 쥐었다. 아주 천천히 당긴다. 손바닥이 전선에 닿을 수 있도록. 이윽고 벽에 붙었다. 머리가 어지럽다. 용을 쓴 탓일까. 둥둥 뜨는 다리를 끌고 손으로 벽을 당기며 유일한 창으로 기어간다. 깔끔하게 용접된 테두리. 주먹으로 내리친다. 양철통 같은 위성이 진동한다. 꿈쩍도 않는다. 도구가 없는 것인가? 떨어져 나간 파이프를 찾았다. 그리고 내려친다. 더 크게 울리는 깡통. 내려친다. 손이 찢어진다. 피가 새어나와 더 끈적하게 파이프가 쥐어진다. 쾅. 쾅. 작은 흠집조차 나지 않는다. 무섭다. 나는 왜 여기 갇혀 있는 거야. 가슴이 알 수 없는 것으로 가득 찬 느낌이다. 터질 듯이 답답하다. 파이프로 가슴을 뚫어 버릴까. 그럼 이 가득 찬 것이 쏟아지고 편해지지 않을까?

그때 일순 황색 행성에서 빛이 번쩍였다. 그리고 창 앞에 보이는 원통형의 비행선. 비행선에서 로봇팔 하나가 뻗는다. 창 위에 팔의 크기와 딱 맞는 막이가 열린다. 나는 파이프로 내리치며 소리를 질렀다.

“살려줘!!! 내보내 달라고!!!”

- 치이익

팔에서 가스가 나왔다. 일순 몸이 늘어진다. 전선을 감고 있던 다리에 힘이 빠지고, 전선이 풀려나가자 깡통의 중앙으로 다시 몸이 떠오른다.

“왜....”

내가 힘없이 축 늘어지자 로봇팔은 여전히 뜨거운 내 왼쪽 관자놀이로 손을 뻗었다...

...

왼쪽 관자놀이가 뜨겁다. 이 위치는 뇌와 연결된 기억소자 칩일 것이다. 구겨진 벽과 어수선한 공간. 내 몸은 중앙에 둥둥 떠 있다. 무중력 감옥인가? 창밖에 보이는 황색 행성. 어렴풋이 떠오르는 왼쪽 위치의 행성과 오른쪽 위치... 다시 오른쪽? 행성을 보자 가슴이 답답하다. 내 가슴보다 큰 무엇인가가 들어찬 느낌... 나가야 한다... 나가야 하나?

파이프 하나가 눈앞을 지나간다. 파이프를 쥔다. 손에서 올라오는 찌릿한 통증. 손바닥에 피가 말라붙어 있다. 벽의 자국들은 내가 한 건가? 내가 누군지 조차 모르겠다. 왼쪽의 열감이 여전히 지속된다. 고치지 않으면 죽는 건가?

전선을 그러쥔다. 둥둥 뜨는 몸이 벽에 닿는다. 차가운 양철통. 벽을 그러쥐고 창을 향해 몸을 끌고 간다. 황색 행성의 궤도를 알지도 못할 정도로 천천히 움직이는 깡통. 기분 나쁜 짐승의 눈알 같은 원형. 나는 무엇을 했나? 나는 무엇인가? 무엇인지 모르는 나는 무얼 해야 하나? 할 수는 있나? 파이프를 더 강하게 그러쥔다. 파이프는 충격에 찢겨 나간 듯 끝이 날카롭다. 강하게 쥘수록 통증은 선명하게 머리로 느껴진다. 목을 겨냥한다. 알지도 못하는 것의 죽음인데, 온몸이 벌벌 떨린다.

곁눈에 들어오는 번쩍이는 빛. 꼭 맞는 원형 막이로 로봇 팔이 창 위로 들어온다. 그리고 취익. 기체가 뿜어져 나오는 소리. 이내 몸의 힘이 빠진다. 몸이 떠오르며 아득해진다. 생각도 부유한다. 내 이름은 카... 힘이 빠지며 파이프가 손을 떠나 다시 둥둥 뜬다. 오... 파이프와 저 팔의 모양이 같네... 몸이 다시 떠오른다. 나는... 뭘...? 차가운 팔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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