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습작
동부 지역은 폐기되었다. 어째선지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그곳엔 사람들이 일순 사라진 듯 쓰레기, 차량, 건물이 그대로 놓인 채 바람에 서서히 먼지로 변하고 있었다. 서로 부서져 서로를 두껍게 덮은 그 도시는 이따금 강한 바람이 불 때면 슬쩍 벗겨져 예전의 모습을 조금 보여주는 듯했다. 작은 벌레의 발소리조차 들릴 듯한 낡은 마른 헝겊 같은 도시.
굉음이 들려온다. 구시대의 디젤 오토바이 엔진음을 씌운 호버바이크다. 자신의 어떠한 것도 폭발하지 않는 바이크가 거짓된 심장을 불규칙하게 터트리는 소리를 내며 다가오고 있다. 바이크가 지나갈 때면 고요히 엎드려 머물렀던 동부의 현 주민들이 질겁을 하며 뒤로 도망갔다. 남자는 구시대의 디젤바이크 소리를 사랑하는 사람답게, 과거의 양복을 점프슈트로 재해석한 검은 뉴포멀 예식 차림에 먼지막이용 아날로그 고글을 썼다. 아날로그 고글을 쓴 탓에 동부의 주민이 눈앞에 소복이 쌓일 때면 눈앞을 닦아야 했다.
그가 멈춘 곳은 3층 높이의 층고를 단층으로 구성한 카츠의 원형극장. 벽면에는 벌집 모양으로 육각형 패널이 붙어 있다. 버려진 도시답게 극장의 외관 패널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검은 몸속에 사방의 버려진 도시만을 담고 있었다.
극장으로 걸어 들어가는 남자. 로비는 층고가 높아 시원한 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넓은 천장에는 과거의 미술들이 낚싯줄에 걸린 듯이, 별이 떠 있듯이 불규칙하게 매달려 있었다. 분명히 예전에는 이것들을 보며 극장을 한 바퀴 돌았을 정도로 운치 있었겠지만 지금은 금방이라도 머리 위로 떨어질 듯 불안감을 조성할 뿐이었다. 남자는 관심 없는 듯, 극장의 유일한 그랜드 홀에 들어섰다. 칠흑같이 어둡고 넓은 공간엔 평평한 바닥뿐이다. 그리고 관객이 한 명인 것을 아는 듯, 바닥에는 드문드문 불이 나간 LED 라인이 쭉 나타나고 그 끝엔 넓은 홀의 중앙 바로 앞 의자가 솟아오르고 있다. 걸어가 그 자리에 앉는 남자. 발을 두 번 구른다.
빈 홀에 크게 발소리가 울리고, 불이 켜진다. 조명이 온전치 못한 듯 두어개의 조명이 흐릿하게 무대 위치를 쏜다. 멀리 어둠 속에서 누군가 걸어 들어오는 소리가 다가온다. 사람이라기엔 한참은 가벼운 발소리. 오래된 기관이 수축 이완하는 듯한 찌그덕거리는 소리도 조금 난다. 규칙적인 소리와 불규칙한 소리가 섞여 한참 들리고, 조명에 그 모습이 드러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연극 로봇 KA-Fra다. 사람의 골격을 모방한 철제 외관이 훤히 드러난 로봇은 몸을 가리려는 듯 짙은 색 망토만을 두르고 조명 아래에 섰다.
“죄송합니다. 알고 계시겠지만 탈은 모두 삭았습니다. 관객이 한 분이시니 무대는 올리지 않겠습니다. 어떠신지요?”
“좋아.”
“아쉽게도 저희 극장은 현재 일인극뿐입니다.”
KA가 의중을 묻는 듯, 남자를 보고 있자 남자는 고개를 끄덕인다.
불이 꺼지고 삭은 스피커를 통해 지저분한 음질의 전주가 흐른다. 전주는 경쾌하다. 불이 천천히 들어온다. 팔이 떨어지고 기능이 정지된 KA-Fra와 KA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아 있다. 테이블에는 브랜디와 잔이 놓여있다. 고개를 푹 숙인 팔 떨어진 KA-Fra.
“하. 얼마만에 만났는데, 곯아떨어진 거야? 비싼 술이라고 좋다고 들이키더니”
“아까 다리가 멀쩡하니까 떠난다고 했지?”
KA는 반대편의 KA-Fra를 일어나 발로 찬다.
“꿈쩍도 안하네. 내일 갈 수 있으면 가봐. 이 쓰레기 같은 놈.”
거칠게 널브러진 로봇의 다리 관절을 연신 밟아 으깨버린다. 분을 못 이기는지 조명 아래를 연신 서성이는 KA.
“망할 놈의 도시. 몇 놈을 죽였는데 신고할 놈조차 없는 게 말이 돼?”
KA와 남자의 눈이 마주친다. KA는 남자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야. 너가 이거 치우고 앉아봐.”
KA는 발로 KA-Fra를 툭툭 찬다. 남자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안들려?”
KA가 고함을 지르자, 남자가 앉은 의자가 서서히 내려간다. 남자는 일어나 무대 의자에 앉는다. 마주 앉은 둘. KA가 입을 뗀다.
“넌 니가 예술가라고 생각해?”
남자는 말 없이 술을 한 잔 따라 마신다.
“왜 여길 다시 찾아온 거야?”
남자가 천천히 입을 연다.
“이거 연극 맞나? 시작부터 이러는 극이 어딨나?”
“왜? 좋아하는 식대로 배경부터 시작해야 하나? 말을 타고 등장해야하나?”
“아니지, 아무런 맥락이 없잖아.”
“배우가 맥락을 물어선 안되지. 저놈처럼 다리가 부서져도 고주망태가 됐으면 비명 하나 안질러야지.”
“하하하하!”
남자가 흡족하게 웃는다.
“더 마셔! 너도 다리가 멀쩡하잖아!”
“긴장감은 있는데, 그저 내가 느끼는 생명의 위협 아닌가?”
남자가 가슴팍에서 권총을 빼내어 든다.
“이제 너도 긴장감이 좀 생기나?”
“하하하하!”
KA는 한껏 웃고는 남자를 보던 시선을 아래로 던진다.
“네 뒤에 누워있는 놈이랑 나랑 뭔 차이가 있는 거 같아 보여?”
“아무렴, 너는 화도 내고, 말도 하잖나?”
“하하하하, 무슨. 쟤랑 다르게 다리가 멀쩡하잖아! 나는. 너는 그 차이를 알겠어?”
남자는 총구로 이마를 툭툭 두드리며 KA-Fra를 바라본다.
“알 수가 없겠지. 알고 싶으면 총 이리 줘.”
남자는 그 말을 듣고는 얼굴에 주름이 가득질 정도로 한껏 미소 짓는다. 테이블에 총을 던지는 남자.
KA는 팔을 뻗어 총을 집어 든다. KA는 총을 흔들어 보이며,
“어때? 일인극밖에 못 하던 놈이 이런 거 보니까 재밌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끄덕이며 술을 들이키는 남자.
“잘 봐. 너라면 이렇게 했겠지.”
총구를 돌려 남자의 머리를 겨누는 KA.
“근데... 재미없잖아? 난 차이를 알려줘야겠어. 그게 진짜 재밌는 거거든.”
이윽고 총구를 남자의 머리 위로 더 들더니 천장을 겨눈다.
- 탕!
무대의 반 틈, 남자가 앉은 쪽의 빛이 사라진다. 테이블의 중앙은 빛의 경계에 놓여있다. 남자의 앞 얼굴이 흐릿하게 보인다. 즐겁게 KA-Fra를 바라보는 남자. 남자의 얼굴 앞으로 고개를 들이미는 KA. KA의 얼굴은 선명하다. 그 상태로 팔을 홱 뒤로 꺾이듯이 돌려 총을 쏜다.
- 탕!
원형극장의 그랜드 홀은 어둠에 잠긴다. 그리고,
- 탕!
빈 홀에 겹겹이 울리는 긴 총성. 불이 서서히 들어온다. 의자에 널브러진 KA의 몸체가 보인다. 그리고 테이블에는 KA의 머리가 구르고 있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물을 흘리며 박수를 치는 남자. 이윽고 일어나 KA가 떨어트린 총을 집어 든다.
빈 홀을 울리는 규칙적인 구둣발 소리가 다가온다. 문이 열리고 총을 든 남자가 로비로 나온다. 걸어나오던 남자는 로비의 중앙쯤에 서서 위를 올려다본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자,
흐릿한 불빛 아래 부서진 목이 떨어지고, 다리와 팔이 떨어진 Ka-Fra 두기가 보인다. 시선을 다시 앞으로 돌린 남자. 천장으로 팔을 뻗는다.
- 탕!
커다란 근육질의 르네상스 석상이 남자의 머리 위로 세차게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