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협

단편소설

by 변석호

츳. 츳. 츳. 츳

초침 소리가 들린다. 침대에 누워있는 부부의 안방이다. 닫아놓은 반투명 창으로 도시의 난반사된 빛이 들이쳐 방이 은은하게 보인다. 곤히 잠든 아내. 하지만 남편은 반듯이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그의 눈에 보이는 어두운 천장은 송출이 끝난 텔레비전의 화면 같은 자글자글한 노이즈가 껴있다.

‘혈류인가. 시각세포인가.’

남자는 온갖 날파리가 끼는 듯 보이는 시선이 괜스레 징그럽다. 눈을 감아도 보인다. 지글지글. 남자는 큰 숨을 들이쉰다. 3일째 잠을 자지 않았다. 하루 밤샌 뒤로 시간이 지날수록 머리 뒤편이 뻐근하게 솟구치는 것 같다. 뒤척이는 아내. 이불이 스치는 소리에 일순 초침 소리가 사라진다. 그리고 다시 조금씩 들리면서 커진다.

츳. 츳. 츳. 츳. 츳.

지나가는 차량의 헤드라이트 빛이 노이즈 가득한 천장을 와이퍼 쓸 듯 닦으며 지나간다. 강한 빛에 방의 실루엣이 완전히 사라졌다가 드러난다. 차량 소리에 묻혔던 초침 소리도 다시 들린다.

츳. 츳. 츳. 츳. 야. 츳.

누군가 불렀다. 고개를 돌려 아내의 얼굴을 보는 남자. 아내는 남편을 향해 돌아누워 미동 없이 잠들어있다. 불현듯 남자는 왼손이 뻣뻣함을 느꼈다. 움직이지 않는다. 팔을 들어 올려 손을 본다. 눈앞에 온 손이 남자의 의지와는 다르게 손가락을 유연하게 꼼지락거리며 부슥부슥 마찰음을 낸다. 꼼지락거림과 함께,

안자고 누워있을 거면 나가자.

부슥거리는 소리에 섞여 말이 들린다. 그리고 문밖을 연신 가리킨다.

내가 미친 건가?

남자는 겁에 질렸다. 잠을 자려 눈을 감으려 한다. 그런데 눈이 감기지 않는다. 어떻게 눈이 감았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 듯하다. 그러더니 화각이 넓어진다. 눈이 좌우로 따로 움직이고 있다. 머릿속에 울리듯 왼쪽 눈이 말한다.

나는 잘 생각이 없어.

나는 답답해.

오른쪽 눈도 말한다. 그들은 스트레칭이라도 하는 듯이 한바퀴 각자 눈을 돌렸다. 남자은 생전 처음 보는 화각을 봤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가 보고 싶을 것을 보며 떠들었다.

언제적 결혼사진이야. 고리타분해.

1시 44분이군. 여름이니까 몇 시간만 지나면 해가 뜨겠는데?

남자는 핑글핑글 도는 시야가 어지러웠다. 병원에 갔어야 했어.

발이 당겨지며 무릎이 세워졌다.

왜 또 멋대로 하려고?

무릎이 말했다. 그리고 침대 옆으로 발이 내려갔다.

거실로 나가자. 거실로 나가자.

왼다리, 오른다리들이 말했다. 휘청휘청이면서 움직이는 몸. 남자는 몸의 감각이 어디까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입과 턱도 멋대로 움직이고 있는 게 분명했다. 걸음과는 상관없이 어깨가 앞뒤로 움직였다. 남자는 온갖 감각에 범벅이 되었다. 발이 대답을 한 것 같으니 다른 생각을 해보려 했다. 그런데 머릿속도 그들이 가득 들어차서 떠들어댔다.

남자의 몸은 아무렇게나 움직여 소파에 쓰러져 앉았다. 그때쯤이었다.

너도 얘기해. 앉아.

어떤 기관이 말하자 남자는 자기도 무언가 둘러앉은 일원이 된 느낌이 들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냐니? 늘 하던 거였는데. 아하하하. 지금까지 어떻게 걸었다고 생각해?

남자는 떠올리니 정확히 어디에 힘을 줘서 걸었는지 또렷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럼 매번 이렇게 서로 떠들었던 거야?

그렇지. 너가 듣지 않았잖아.

들어? 말한 적이 없잖아.

아하하하하 재밌네.

그것도 맞다 맞아.

내가 잠을 안 자서 이렇게 된 거야?

몰라? 나도 모르겠는걸?

내 멋대로 되는 게 없더라니. 이제 몸도 맘대로야?

우린 다 하나씩 갖고 있는데 넌 아무것도 없잖아.

원래도 멋대로 한 건 없었어.

남자는 일순 심장의 위치와 위, 소장, 비장, 이자 등등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럼 난 뭐야?

그러게? 대표인가?

왜 너가 대표지?

너 때문에 몇 번이나 다쳤어. 누구는 지금도 힘들어해.

대표라고? 너? 너로 지칭하는 나는 뭔데?

몰라? 우리도 이건 처음이야.

제발 눈 좀 가만히 있어 줄래? 너무 어지러워.

그래 좀 가만히 있어.

메슥거리던 뇌와 위, 식도와 혀, 치아가 맞장구쳤다.

오랜만에 각자 실컷 보고 있었는데. 알았어.

눈이 감겼다. 다시 찾아온 캄캄한 어둠. 남자는 조금 진정이 되는 듯했다.

다른 놈들도 좀 멈춰봐. 그래. 그래. 그래. 그래...

수의근에게 끌려다니던 불수의근들이 항의하자 아무렇게나 움직이던 몸도 서서히 멈췄다.

계속 이렇게 지내야 해?

어떻게 지내고 싶은데?

그냥 움직이는 대로 움직여지고, 보는 대로 보고, 그런 거 있잖아.

그러고 싶어?

그런데 왜 며칠 동안 잠을 안 잤어?

잠 안 자서 이런 게 맞구나?

모르지.

잠을 잘게. 어때?

싫어. 싫어! 싫어. 싫어 싫어

너가 안 자서 다들 못 놀았어. 내가 좋아하는 꿈 차례였는데.

이제 얘기하는군. 미안해.

왜 그랬어?

되는 게 없던데?

아! 그래서 계속 들어 주던 우리들을 놓지 않은 거구나?

그런가 봐.

괴롭지?

응. 이러나저러나. 미안해.

됐어. 이것도 대화라고 할 수 있겠어?

너가 없잖아. 아하하.

나와의 대화도 있지.

그것도 맞네.

미친 거 아니고?

다른 것도 못 믿겠으니. 모르겠네.

그래.

근데 초침 소리는 없애자.

시끄러워.

그래. 그래. 그래. 그래...

남자의 두 시선은 시계로 향했다. 그리고 무릎을 기점으로 부드럽게 왼발이 놓임과 동시에 오른 무릎이 들어 올려지고 그것에 맞춰 머리, 목, 어깨, 허리, 골반이 무게 중심에 맞춰 몸을 옮겼다. 그리고 거실 벽으로 팔을 뻗었다. 적절하게 마치 문어가 사냥감을 향해 조심스레 다리를 뻗듯 손이 나아갔다. 시계를 움켜쥐는 오른손.

쾅!


- 아악! 무슨 일이야 여보?

- 아, 시계가 삐뚤어져서 건드렸는데 떨어졌네. 미안해. 많이 놀랐지?

- 아 제발 잠 좀 자. 몇 시야 지금.

- 미안해. 떨어질 줄은 몰랐어.

- 알겠어. 빨리 와 자자.

- 그래.

놀라 몸을 반틈 일으켜 세운 아내 옆으로 남편이 가서 눕는다. 아내도 다시 자리에 눕는다. 아내를 진정시키려 손으로 가슴께를 두드려준다. 천천히 다시 잠드는 아내. 확인한 남자 또한 바로 눕는다. 해가 뜨려는지. 천장에 조금 푸른빛이 돈다. 밝아지니 눈에 보이던 노이즈가 조금은 사라진 것 같다. 눈을 감는다.

젖은 것같이 무거운 머리에 생각이 빵가루에 굴리듯 묻었다 조금씩 흩어진다. 다시 뭉쳐지려다. 흩어진다. 리듬을 따라 맞춰서 가슴이 들리고, 숨이 따라 들어온다. 다시 빠진다. 온몸에 힘이 빠진다. 오래 버둥거리다 다시 잠시간 빈사에 빠지는 몸은 벌써 어느 것 하나 움직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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