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아 홍씨 마시고 해!”
박영감의 외침에도 무심하게 턱, 턱, 제본이 끝난 종이 더미가 삼발이 등에 널부러진다. 작은 키지만 당당히 펴진 허리. 보폭도 성큼성큼이다. 괜찮다며 손을 흔들어 보이는 홍씨. 종이가루가 날려도 티도 안날만큼 허연 머리, 제본하며 집중하고 용쓸 때 자리 잡힌 주름이 움푹 패여 영락없는 노인이지만 눈만은 알밤 마냥 번뜩번뜩하다. 그 눈이 제본소 사장을 향한다.
“제일이랬지?”
“예, 오늘 이게 끝입니다.”
홍씨는 고개를 끄떡이곤 삼발이에 올라탄다.
“야! 너도 그만 놀고 배달 가!”
“일도 없구만 뭘. 홍씨가 두 번 하쇼.”
하하하하, 너털웃음을 웃곤 키를 돌린다. 몇 번 터덕이다 굉음을 내는 삼발이. 인쇄골목, 홍씨, 삼발이. 다 같이 늙었는데 요놈만은 목청이 여즉 커다랗다.
‘늙으면 양기가 입으로 몰린다더니.’
골목을 달리는 삼발이. 홍씨를 따라 시끄러움 굉음이 울려도, 골목은 일어날 기미가 없다. 분명 낮인데 더 어둡게 느껴진다. 빛이란 건 인쇄골목 밖의 우뚝 솟은 을지로길 빌딩으로만 모이는 것 같다. 분명 이곳도 중심지고, 번화가였는데 위치는 바뀌는 게 없어도 뒤로만, 뒤로만, 밀려나는 것 같다.
젊을 적 홍씨는 책을 더 보고 싶었다. 근데 공부란 게 맘대로 할 수 있었던가. 큰형에게 밀려 자리를 털어야 했던 홍씨는 대처 구경이라도 하겠다며 기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며칠 여인숙에 뒹굴던 홍씨는 “못한 공부, 종이라도 많이 만지자!”하며 인쇄골목으로 들어섰다.
그래서인지 영화벽보, 신문, 선거 홍보물, 대학교재… 추쿠둥, 추쿠둥, 규격에 맞춰 제본한 종이가 인쇄되고, 다시 짜맞춰져 인쇄로 그 모습을 갖출 때면 그렇게도 뿌듯했다. 텔런트, 기업총수, 대통령, 교수 다닥다닥 붙은 골목에서 시간 날 때면 버릴 파지를 읽기도 했다.
빵-!
어느덧 신호가 바뀌었다. 커다란 차의 크락션. 빌딩이 즐비한 을지로를 중심으로 젊은 사람들이 늘어나더니 차량통행도 많아졌다. 세번째에서 우회전… 능숙하게 대로를 빠져나가 좁은 골목으로 들어선다. 제일인쇄소가 보인다. 인쇄소 사장도 나와있다.
“한성 포스터! 왜 이리 조용해? 오늘 작업 없어?”
“아! 홍영감님! 전화로는 연락 드렸는데. 저희 기계가 완전히 갔어요. 이 작업까지 하려 했는데, 안되겠네요.”
“그럼 어디 맡겨?”
“프린트플랜트에 맞춰놨어요.”
“프린트플랜트? 어디지?”
“그 대로에 새로 생긴 곳 있잖아요. 대로로 나가서 유턴해서 직진하면 되요.”
“그래? 알았어.”
항상 남방을 차려 입고, 토시를 끼고 있던 제일인쇄소 사장이 돌아선다. 이놈도 이제 중년이란 소리 듣기도 힘들겠다. 유난히 고요한 듯한 골목. 골목 너머너머 빌딩 짓는 공사소리만 땅- 땅- 길게 울린다. 그 소리의 여운이 끝날쯤 괜히 말을 건넨다.
“내가 자네 기계 돌려볼까? 부품사면 되지?”
“하하하, 물론이죠. 돈만 챙겨와요.”
쉰소리같은 위로를 끝으로 홍씨는 다시 삼발이를 움직인다. 웨에에엥. 웨에에엥. 고개 넘는 나귀마냥 우는 삼발이.
대로 가의 프린트플랜트는 커다란 창에 깔끔한 흰색인 것이 은행같다. 멀끔한 젊은 사람들도 몇 명 앉아있다.
“거기 대지 마시고, 저쪽으로 주차해주세요. 한성 포스터죠? 종이 여기 놓고 가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바로 작업 안들어가나? 인쇄기는 어디서 돌리지?’
종이를 나르며 봐도 은행 같은 창구 안에 기계는 안보인다. 전화를 받고 컴퓨터를 두드리는 직원들. 오늘 인쇄소 마지막날까지 남방을 입었던 제일 사장이 떠오른다. 괜스레 종이 더미의 각을 맞추고 일어나는 홍씨. 프린트플랜트의 무심한 유리창 너머로 우우웅거리는 삼발이 소리와 함께 홍씨가 도로 한쪽으로 사라진다.
“영감님 제일 갔다 왔죠? 좀만 천천히 가시지.”
“봐봐. 홍씨. 내가 뭉그적거리는 이유가 있다니까.”
“에이 뭐 바람 쐬고 좋지. 근데 그 새 인쇄소 기계는 어디서 돌리나?”
“거기서 안돌릴 걸요? 요샌 외곽에 크게해서 거기서 다 한대요. 제주 갈치도 새벽에 딱 딱 오지 않습니까.”
“그렇구만.”
“영감님 숨 돌리시다 퇴근하세요. 오늘 우리가 정리할게요.”
“고마워.”
사장을 따라 박영감이 느릿느릿 제본소 안으로 들어간다. 제본소 앞 나무의자에 앉는 홍씨. 전봇대에 묶인 펄럭이는 현수막따라 빛 한줄기가 반짝반짝 눈에 들어온다. 높다란 빌딩에서 반사되는 빛. 어느덧 햇발이 죽어가고 있다.
‘여름도 슬슬 물러날 준비를 하나?’
둠-둠-둠-
음악소리가 들려온다. 인사성 좋은 청년 사장이 느지막이 가게문을 열었나보다. 멕시코 음식이랬던가. 서부영화의 덥수룩한 수염과 짙은 눈썹. 판초를 두른 총잡이 투코가 생각난다. 황야의 무법자. 새삼 가로수 하나 없이 낑겨 옹그라붙은 골목이 갑갑하다. 지쳐 엎드린 나귀마냥 놓인 삼발이가 눈에 들어온다.
‘황야를 달리듯이 대처를 휘젓고 싶었는데. 샛길 전문가가 되어버렸군.’
홍씨가 일어난다. 불현듯 예전 이 골목에 잇따라 들리던 추쿠둥- 추쿠둥- 박자를 타는 인쇄 소리들이 똑 총알을 장전하고 쏘는 소리같기도 하다. 그 카우보이들이 싸우던 골목이 사그라지고 이젠 조금만 나서도 멕시코집, 일식집, 호프집으로 채워졌다.
'서부극은 끝났긴 했지.'
밤이 다가오며 칙칙하다 느낀 골목에는 젊은 사람들의 활기가 떠오른다. 그들 사이로 철컥- 철컥- 박차달린 구두를 신은 듯. 꼿꼿한 홍씨가 걷는다. 대로 사거리에 나서자 옹기종기 붙어 꽥꽥거리는 차들. 하루를 마치고 쏟아지는 젊은이들. 서울구경 온 외국인들. 사람들, 물건들, 소리들로 가득하다. 그들 사이로 노인의 걸음은 다시 도시 한 켠을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