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삼다수숲길에서의 또 다른 동행
5월의 제주 햇빛이 강렬해지고 있다.
강렬한 햇빛을 피하면서 산책할 수 있는 곳을 찾다가 누군가 추천한 삼다수숲길로 향했다.
이번 제주여행에는 평소와 다르게 아무런 계획도 없이 내려왔다.
어디를 가고 무엇을 먹고 등의 일체의 계획이 없었다.
삼다수숲길은 여태껏 들어보지 못한 제주의 숲길이라 큰 기대 없이 햇빛을 피하며
편하게 걸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도로에서 숲길 진입로로 들어서는 1~2km 남짓의 길은 비포장도로였다.
쿨렁쿨렁 비포장도로를 통과해 삼다수숲길 입구에 들어섰다.
차에서 내려 4~5m 정도 걸었을 때 강렬한 햇빛도 차단하며 서늘한 그늘을 만들고 있는
삼나무 숲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202505 제주 삼다수숲길
2505 제주 삼다수숲길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제주 삼나무 숲 하면 떠오르는 사려니숲과 다른 아우라를 드러내고 있었다.
지난 목요일 제주에 도착한 다음날 흐린 날씨에도 울창한 삼나무 숲이 그리워 사려니 숲에
다녀온 터라 다른 삼나무 숲에 대한 기대는 없었다.
사려니숲에는 계절과 날씨 불문하고 많은 사람이 방문하는 제주도 핫풀이라 아침에 일찍 가더라도 사람이 많아 호젓한 나만의 산책을 즐기기는 쉽지 않다.
더군다나 초입부터 삼나무 숲의 많은 부분이 데크길로 되어있어 편하게 걷기는 좋으나 온전한 숲길의 느낌을 가지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녹색 이끼를 머금은 수천 그루 삼나무가 하늘을 향해 뻗어있는 사려니 숲의 신비스러운 분위기는 늘 그곳을 그리워하게 한다.
사려니숲이 제주를 대표하는 삼나무 숲이라면 삼다수숲길은 화장 끼 없는 수수하지만 깊은 전통미인 같은 삼나무숲 느낌이다.
오래 걷기 어려운 어른들은 가장 짧은 숲길로, 나와 아내는 5km가 조금 넘는 2번째 코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평지에 가까운 숲길에서 삼나무 숲을 지나고 이름 모를 여러 식물과 나무를 지나고 숲길 옆의 계곡을 지나치며 고요히 발걸음을 옮겼다.
아내를 앞세우고 처음엔 거의 1~2M 거리를 두고 걷다가 초입을 지나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갈 때 나는 아내와 20M 뒤에서 천천히 걸었다.
때로는 발걸음을 멈추고 새소리를 듣다가 숲으로 불어오는 다양한 바람의 소리를 가만히 들어보았다.
바람은 보이지 않는다고 하지만 나무의 흔들림이나 다양한 소리로 자신의 물성을 입체감 있게 느끼게 해 주었다.
한 숲에서 들려오는 바람의 소리가 모두 달랐다.
나무의 군집 상태, 계곡의 위치, 바람의 세기에 따라 소리가 달라졌다.
고요한 숲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바람의 다양한 소리와 모습을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쏴~와", "스스스", "휘이~익" 저마다의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바람의 무리가 모인 느낌이었다.
바람이 한 종류씩 시간을 정하며 자기를 드러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따로 또 같이"
아내와 나는 같은 숲길을 걷고 있었지만 서로 다른 자기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같이 나란히 걸을 때도 있지만 오늘과 같이 서로 일정 간격을 두고 걸으며 자기만의 숲을 느끼는 산책도 신선한 경험으로 다가왔다.
같이 나란히 걷는 것만이 동행이 아니고 서로 떨어져 걷는 것도 또 다른 동행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깊고 서늘한 삼다수숲길이 또 다른 동행을 선물로 주었다.
누군가 제주에서 깊고 호젓한 산책을 하길 원한다면 삼다수숲길을 홀로 걸어보라.
선물 같은 시간이 될 것이다.
2505 제주 삼다수숲길
숙소로 돌아오는 길의 하늘에 번진 노을이 깊고 푸른 하루에 점을 찍고 있다.
2505 제주 신흥리 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