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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jin Nov 03. 2022

뜨겁고 빈 주전자

  아침마다 커피 물을 끓여 내어 커피잔에 가득 따를 때면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남편은 매일 아침이면 물을 끓였다. 작은 보온병을 집 안에서도 들고 다니며 뜨거운 물을 홀짝 거렸다.  남편은, 내가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뜨거운 물을 끓여 커피를 내리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고도 십 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손바닥에 들어가는 작은 보온병 안에 들어갈 물만큼만 끓였다. 나는 남편이 쓰고 난 후  비어있는 뜨거운 전기 주전자에 다시 물을 쏟아붓고, 끓이고,  내 커피를 내렸다. 

 

  그땐 남편과 나의 시간은 흐린 가을날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회색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같이 있지만 쓸쓸하고, 공허했고, 선명한 기쁨도, 슬픔도 없었다.  



나는 남편이 있었다. 중학생 남자아이도 있었고, 20년 가까이 같이 살다 먼저 하늘나라로 간 강아지도, 그리고 그 후에 맞이한 아기 강아지도 있었다. 우리는 아주 오랜 기간 연애라는 것을 했고,  나라가 다른 사람, 생각이 다른 사람, 그래도 사랑이라 믿었기에, 결혼을 했다.  제법 큰 집에 살고 있었고,  나는 늘 마음 한편이 비어 있었지만, 내가 한 선택으로 만들어진 그 가정을 위해 열심히 살아왔다. 남편은 자기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회사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폭언을 했다. 그럴 때마다 내 영혼은 갉아 먹히고 있었다. 화가 나서 그랬다고, 컨디션이 좋지 않아 그랬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사과도 없이 지나가 버리며, 네가 이해해야 한다고 이해를 강요하는 듯한 언행이 징그러웠다.  그리고 그날도 남편은 아이가 학교에 가자마자 이유모를 짜증과 폭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몰랐던 말들, 나중엔 너무 잘 들리고 너무 잘 알아먹어 힘들었던 온갖 중국어 된 욕....... 그날 하루 나는 하루 종일 누워 아이에게 충격도 상처도 주지 않고 죽는 방법을 생각하다, 아이가 독립하여 그 집을 떠난 후 수면제를 먹고 죽기로 생각했다. ' 심장마비라고 아이에게 알려 주라는 유서를 써놓고 가야겠다, 최소한의 양심이라는 게 있다면,   유서대로 말하겠지.'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다 아이가 집으로 돌아왔고, 아이는 남편과 똑같은 모습으로 나에게 이유 모를 짜증을 냈다. "엄마는 없었으면 좋겠다. 엄마는 왜 사람을 짜증 나게 하냐"는 말에 나는 무너졌다. 그리고...... 뛰어내렸다. 아이가 받을 상처, 충격 그 따위는 생각나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해봤자 이런 거라면 차라리 끝내 버리자 싶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나는 깨어났다. 아파트 바닥도, 병원도, 집도 아니었다.

 20년 전 머물렀던 총칭(重庆)의 기숙사...... 침대 위였다.

 

'뭐지? 나를 여기다가 버린 거야?, 난 죽지도 못했던 거야?'


"언니, 안 일어나요? 수업 안 가요?" 잊어버렸던 목소리,  옆방 살던 같이 어학연수를 듣던 여자 아이의 목소리였다. 허겁지겁 나가 문을 열어보니, 그 아인 말간 얼굴로 '왜 지금 일어나나'라고 물어보고 있었다. 


 나는 허겁지겁 짐을 쌌다.  여권을 챙기고, 은행으로 달려가 통장에 든 달러를 모조리 환전해서, 여행사로 달려가 핀란드로 가는 비행기 티켓을 샀다. 왜 하필이면 핀란드였는지는 모르겠다. 아이와 둘이 유럽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경유지가 헬싱키였을 뿐,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곳이면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 같았다. 한국은 아니었다. 나는 이혼을 여러 번 생각했다. 어느 날 아이를 안고 유모차까지 챙겨, 한국에 있는 친정으로 갔다. 친정 엄마는 이혼을 하고 싶으면 아이를 중국에 놔두고 다시 오라고 했다. 그게 아니면 인생은 연극이니 그렇게라도 살아라고 했다. 차마 아이를 놔두고 올 수 없었던 나는 그때부터 연극을 했다. 행복한 척, 멀쩡한 척, 잘 사는 척, 좋은 아내인 척, 좋은 엄마인 척, 그리고 언젠가부터 살기 위해 연극을 하는지, 그 연극을 해 내려고 사는지 모르게 되었다. 한국은 아니었다. 한국은 내가 다시 돌아가 시작할 곳은 아니었다.


  다시 돌아온 2001년 어느 늦여름, 그때부터 이곳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아주 평범하게, 소박하고, 단순하고, 간결한 작은 일상을 살아간다.

  작은 나만의 집을 가꾸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예전처럼 풍족하진 않다. 예전처럼 크고 넓은 집에 살지는 못한다.  하지만 혼자 오롯이 지켜나가는 나의 일상이 한없이 소중하다. 

  어쩌다 중국인이라도 마주쳐,  그들이 쏟아내는 크고 시끄러운 말들이 내 가슴속에 박힐 때마다 나는 남편에 대한 미움보다는 아이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친다.   지금 이 시간이 원래의 나의 시간이었는지, 아니면 꿈인지는 모르겠다.   매일 아침 주전자에 뜨거운 물이 넉넉하게 가득 차 있을 때면 나는 생각한다. 

  

    " 그건 꿈이었을 거야. 내가 그렇게 살았을 리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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