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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jin Jan 04. 2023

봉봉(BonBon) 이야기

 우리에겐 아니 나에게는 봉봉(BonBon)이라는 이름만큼 이쁜 스피치 믹스 강아지가 있었다. 봉봉이는 작년 11월에 19살 하고도 4개월을 더 살고 하늘 나라로 갔다.  11월에 봉봉이를 만나 봉봉이와 나는 가족이 되었는데 11월에 봉봉이는 마지막으로 사람 동생의 목소리를 들으며 엄마 아빠 품에서 늘 있던 자기 자리에서,  가장 이쁜 모습으로 그대로 이쁘게 떠났다.


 이미 19년을 살았으니, 마음의 준비는 어느정도 하고 있었다. 당뇨병이라는 병을 얻고 봉봉이는 하루 두번 아침 저녁으로 인슐린 주사를 맞았다. 당뇨로 백내장이 와서 눈도 보이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봉봉이가 하늘나라로 간 그날만큼은 슬프기 보다는, 봉봉이가 귀를 바짝 뒤로 붙이고 바람을 가르면서 신나게 뛰던 때가 그 표정이 그렇게 생각이 났다.  봉봉이의 행복한 얼굴, 신이나서 어쩔줄 모르는 귀, 바람에 팔락 거리는 분수처럼 퍼지는 꼬리, 봉봉이가 눈을 감자  '이젠 하늘나라 가서 눈도 보일거고 다리도 아프지 않을거고 좋아하는 쿠키도 많이 먹을 수 있겠다' 라는 생각에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다.  


  봉봉이는 내가 대학생일때 학교앞 펫샵 케이지안에 있던 아이다. 오다가자 자전거 타며 봤지만, 다른 아이들은 좋은 케이지(?) 안에 있었는데, 봉봉이는 바닥에 놓여있는 분홍생 작은 케이지 안에 그냥 대충 넣어져 있었다. 어쩌다가 마주친 봉봉이 눈이 까만 구슬처럼 너무 이뻤다.  펫샵 아저씨와 단판을 지어서 ( 봉봉이가 스피치 라기엔 귀 쪽 까만 부분 때문에 팔리지 않았나보다), 600원에 케이지, 사료, 밥그릇, 간식까지 야무지게 챙겨 케이지 고대로 데리고 왔다.


 처음에 축 쳐져 있던 귀가 한쪽씩 차례로 섰고, 손오공을 연상 시키던 얼굴에 다시 털이 메꾸어 지면서 날이 갈수록 이뻐졌다. 특히 깊고 까만 구술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볼때면 너무너무 행복했다. 방하나, 작은 거실하나, 부엌, 화장실하나 있는 그 집에서 봉봉이와 나는 같이 일어나, 같이 먹고, 같이 자고,  내가 수업을 들으러 가면 봉봉이는 온갖 장난질(서랍열어 립스틱 깨먹기, 신발 물어뜯기, 식탁위에 올라가 라면봉지 물어 뜯기, 화장실 휴지 날라오기, 노트북 선 끊어 놓기 등등)을 했고, 수업 갈려고 문을 여는 순간 손쌀같이 탈출을 해서 봉봉이를 잡느라 수업도 늦게 간적도 있었다.  그래도 이뻤다. 세상에 그렇게 이쁘고 사랑스러운 존재가 있다는 것이 신기할 만큼 이뻤다.

  수업이 끝나면  자전거 패달을 열심히 밟아 봉봉이가 있는 집에 가는 것도 좋았고,  늦은밤 과제며 시험 공부를 할때면,  침대 한켠에 누워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면서 내가 자나 안자나 체크하고, 겨울이면 둘이 꼭 붙어 서로의 체온에 의지하면서 그렇게 지냈다. 방학이면 그때 남자친구였던 직장인 지금 남편에게 봉봉이를 맡겨놓고 한국에 갔었는데, 개를 어떻게 집에서 키우냐며 질색 팔색 하던 그 사람도, 봉봉이와 한두달 지내고 나서는 봉봉이 목욕 전담인(?)이 되었고, 나만 빼고 둘이 산책도 다니면서 그렇게 친해졌다. 


 내가 졸업을 하고,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는 그 모든 순간 봉봉이는 있었다.

이름처럼 솜사탕 같이 보송보송한 이쁜 봉봉이는 사람에게 먼저 안기고 애교를 부리는 개는 아니었다. 조금 시크하고, 도도하고, 자존심도 세서 자기가 원할때 그때만 사람곁에 머물렀다.  하지만 결코 짖는일도 없었고, 스스로를 잘 챙기는 독립적인 개였다. 

   임신하고 아이가 태어나면 질투가 나 깨물기라도 할까봐 걱정이었는데, 봉봉이는 동생과 첫 만남에 너무나 점잖고 조심스럽게 냄새를 맡고, 천천히 다가갔다. 그 뒤로 봉봉이와 아이는 한팀이 되어 아빠와 같이 산책하고, 나의 육아 파트너가 되어, 밤중 수유 할때의 동반자가 되었고, 아이가 울면 알람 역할도 하면서 그렇게 누나 강아지 몫을 하면서 지냈다.  물론 아이와 개를 같이 키운 다는건 힘든 일이었지만,  그무렵 출장이 잦았던 남편대신 내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건 봉봉이였다. 

  봉봉이 나름대로  사람 동생에게 질투를 하기는 했는데, 아이가 아가일때 목욕물을 받아 놓으면 그 속에 들어가서 반식욕(?)을 즐긴다거나 << 개를 꺼내어 닦이고 드라이기로 말리고 그동안 아이는 침대에 누워 울고, 물을 다시 부어 목욕물을 다시 받아놓고 반신욕이 끝난 봉봉이는 신나서 뛰어다니고 아이를 씻기고 닦이고 로션을 발라주고 목욕물을 다시 버리고 정리를 하고나면 내 영혼이 없어진듯한 경험도 몇번 하기는 했다>>, 아이의 의자를 사 놓으면 그 위에 혼자 앉아 있다거나, 아이 간식을 당당하게 들고 간다거나 그런 사소하고도 귀여운 질투였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봉봉이가 샘이 났네" 하고 봉봉이 질투를 인정해 주었다.

 

  아이친구들이 우르르 떼지어 우리집에 놀러를 와도, 결코 흥분하거나 사고 치는 법 없이, 아이들이 놀때면 옆에 누워 구경을 하거나, 그것도 귀찮으면 너무 얌전하게 다른방에 들어가 한숨 자고 나오기도 했다.  오히려 나의 아가, 우리집 공주님(남편이 그렇게 불렀다)였던 봉봉이를 아이가 태어난 후 잘 챙겨주지 못해 미안했다. 그렇게 봉봉이는 든든한 누나 강아지가 되어, 나의 20대, 30대, 40대, 내 아이의 출생 후 부터 쭉~ 항상 함께였다.


  봉봉이가 떠나고 나서 한동안 남편은 '봉봉아~ 아빠 왔다' 라고 부르며 현관문을 열다가 화들짝 놀라서 봉봉이 없지, 이랬고, 아이는 자기전에 포근포근한 봉봉이 누나를 한번 더 안아 보고 싶다고 가끔 훌쩍 거렸고, 나는 청소하다 발견한 구석에 날리던 봉봉이 털, 세탁기에서 꺼낸 봉봉이 옷을 보면서 몇번 혼자 눈물샘이 터져서 울었다. 꿈에서라도 보고 싶었는데, 봉봉이는 아무래도 그 곳에서 너무 잘 지내고 있는지, 엄마 서운하게, 한번도 나타나진 않았다. 


 작년 11월 봉봉이가 떠난지 일년이 되는 날 혼자 하얀 장미를 한송이 들고 봉봉이 뿌려준 곳에 갔다. 어찌 된 일인지, 혼자 주저리주저리 투정하듯이 말을 했다. 엄마는 이랬는데, 아빠가 이래서 너무 서운했고, 동생은 엄마한테 왜 그럴까? 그리고 네가 있었다면 든든 했을텐데, 너 너무 서운하다. 왜 한번도 꿈에라도 안나오니, 지금은 동생 강아지가 있는데, 걔를 보면 철이 없어서 웃기기도 한데 네가 너무 보고 싶다. 등등등......


 봉봉이는 나에게 우리에게 그런 존재였다. 그냥 강아지, 반려 동물이 아닌, 나에게 딸이었고, 친구였고, 동료였고, 언니였다.  봉봉이는 나와, 우리와 함께 해서 행복했었을까? 봉봉이가 보고 싶다. 가슴한켠에 봉봉이가 나에게 우리에게 여전히 이쁘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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