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이 넘어 휘몰아치는 감정들
작년부터인가 보다.
특정 계기가 있어서도 아니다. 그래 나이 들어 그런 건가보다.
죄책감, 분노, 서운함, 자책 등등의 온갖 감정들이 44살이 되자마나 밀려왔다.
갱년기 인가? 아니다.
늦게 겪는 사춘기인가? 아니다.
같은 나라에 살고 있지도 않으면서 나는 결혼하고 아이 낳고 나서도 엄마한테 주기적으로 전화를 했고, 잠시라도 기회를 봐서 방학마다 한국을 갔고, 엄마도 일 년에 두세 번씩 방문했다. 며칠간 연락이 오지 않으면 무슨 일이 있냐며 걱정스럽게 연락을 하는 겉으로 볼 땐 지극하게도 평범한 한국인 엄마와 딸. 딸이 없으면 어떡했냐며, 엄마가 없는 사람들은 너무 안쓰럽다며 그렇게 서로를 의지하며 지냈다.
나는 엄마가 정해주는 "착한 딸"이었다.
그러면서도 "고집부리고, 할 말 다 하는 (엄마의 기준에서 본다면) 기가 센 딸" 이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성인이 되고 나서 엄마는 농담처럼 "너는 기가 세서 가끔은 내가 눌러줘야 했어"라고 말을 했다.
나는 엄마가 생각하는 엄마 딸이었다.
그런데..... 엄마가 나에게 해주었다는 수많은 노력과 희생, 마땅히 감사해야 할 마음들이 사실은 주입식으로 학습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땅히 엄마에게 좋은 딸이어야 하고, 불만을 가져서는 안 되고, 엄마와 다른 생각을 가져서도 안되었다.
나의 아이가 크고 있다.
그리고 아이의 나이였던 내가 떠오르면 서글프다.
아이는 원하는 것을 거침없이 말한다. 배우고 싶고, 가지고 싶고, 하고 싶은 것들이 있으면 눈치 보지 않고 말한다. 엄마 아빠가 한심하게 생각할지, 기분이 나쁠지, 안된다고 할지 따위는 걱정하지 않는다.
나는, 그랬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가지고 싶은 것을 말할 때는 혼자 갈등해야 했다.
'엄마가 안된다고 하겠지. 할 수 없다고 하겠지. 어렵게 말을 꺼내면 여지없이 "안된다"였다. 단 한 번도 "할 수 있어, 해봐 잘할 수 있을 거야"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대신 "너는 왜 그렇게 욕심이 많니, 너는 그래서 문제야, 조용히 살면 안 되니, 할 수 있는 것만 해"라는 말만 들었다. 나는 엄마가 해 줄 수 있는 것, 된다고 할 수 있는 것만 말했다. 착한 딸이라는 칭찬을 들으면서....
나는 착한 딸이 되고 싶지 않았다.
생일 카드, 편지에 항상 시작되는 "우리 착하고 똑똑한 딸에게"는 성인이 되고 난 후, 가장 상처가 되었다.
고작 20살이었는데, 나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20살이 책임질 수 있는 선택은 과연 존재하기는 했을까? 인생을 고작 20년을 살지 않았는데..... 잘못된 선택을 해도 잘한척했다. 다시 시작하고 싶어도, 이전의 선택은 내가 잘못한 것이니 새로 하고 싶다고 말하지 못했다. 억지로 억지로 끌어오다 진짜로 선택을 잘할 수 있었을 나이가 되었을 때,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요즘은 항상 "기도해 줄게"라고 한다.
기도.....? 자식에게 기도만 해주는 건 아무것도 안 해준다는 것과 같다. (신이 있기는 한가?)
알고 있고, 할 수 있는 것 안에서 최선을 다해서 키웠다고 한다. 그러나 알고 있고 할 수 있는 것 안에서 최선은 최선이라 할 수 없다.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이제 알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뛰어넘어, 알고 있는 것을 뛰어넘어 아이에게 최선을 다 해 주어야 한다는 거, 번지르한 말, 칭찬 말고,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거.
" 착한 딸"에 갇혀 있던 내가 나를 다시 보게 되니, 그때의 내가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