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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jin Oct 17. 2022

 이 결혼은 슬픕니다.

 네, 첫사랑(첫 연애라고 정확하겠죠?)과 결혼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오래 연애라는 것을 하고, 국제결혼을 했죠. 남들이 보기엔 낭만적으로......


 동화책 마지막엔 꼭 " 그리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이라고 나온답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이야기는 각자 상상하는 거죠.  어릴 적 아니, 결혼 전까지는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아주 행복하게 첫 시작처럼 영원히 행복했을 거라고, 그리고 결혼한 지 15년쯤 지난 지금, '그 후의 이야기를 적기엔 어린이들에겐 너무 잔인해서 적지 않았나 보다'라고 생각합니다.


 남편은 산동성 시골 출신의 개천의 용이 되고 싶은 '개천 도룡용' 쯤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공부하여 상경(?)하고 자기 길을 개척하는 성실함에 반했습니다.  아주 두꺼운 전공책을 끼고 앉아 더운 기숙사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그 모습이 성숙해 보이기도 하고, 믿음직해 보이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보니, 일 년 내내 책 한 권 읽지 않는 모습, 쉬는 날엔 침대에 누워 뒤 불 뒤 불  되다, 끼니가 되면 악착같이 세끼를 챙겨 먹기만 하고, 취미도, 사교모임도 없이 집에서만 붙어서 "밥밥" 거리는 모습에 짜증이 납니다.  중국은  (모두가 그렇다고는 할 수 없어요. 나라도 크고 사람도 많으니), 특히 시골 아이들에게 [ 공부=성공=부의 축적]입니다.  알고 보니 남편은 성공, 즉 돈을 벌기 위해 공부를 한 거였어요. 딱히 독서에 취미가 있지도 않고, 이제껏 읽은 책은 교과서나 전공책이 다 였던 거죠. 남편은 동화책을 가져본 적도, 책을 재미로 읽어본 적도 없는 사랍이었어요.  그래서, 아이에게 책을 읽어 준다거나, 좋은 책을 추천해 준다거나, 손 잡고 서점에 가서 같이 책을 사지도 못합니다.  남편과 서점에 가면 남편은 자기 개발서나  뒤적뒤적하다가, 심심해져서 밖에 나가 있습니다. 처음엔 한심해 보이고 아이가 배울까 봐 많이 싸웠어요. 그리고 솔직히 창피했습니다.  서점에서 30분도 있지 못하는 사람이라니.......  아이가 커가면서 책을 안 읽으려는 모습을 보이면 아빠를 닮아, 책 읽는 아빠를 보지 못해 그런가 싶어 속상했습니다.  결혼 10년이 넘게 치열하게 싸운 근본적인 원인은 "실망감"이었습니다.  그리 오랜 세월을 연애를 했는데 철저하게 숨겨운 남편에 대한 실망, 그리고 전혀 알지 못하고 결혼한 저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었죠.

  

  아이가 어릴 적 레고 블록을 사서 남편에게 아이와 같이 놀아라 한 적이 있어요.  전 아버지와 주말에 레고로 자동차도 만들고, 집도 만들고 했던 좋은 기억이 있거든요. 아빠는 정말 뚝닥 뚝닥 잘 만들어 주셨어요. 자꾸 무너지기만 하는 큰 자동차도 아빠가 쌓아 올리면 넘어지지 않고 잘 달렸고, 동생이 입을 실쭉거리면서 집중하는 모습도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답니다. 당연히 우리 아이에게도 그런 모습의 아빠일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남편은 아주 실망스럽게 같은 모양의 블록을 쌓아 올리기만 했어요.  아이는 짜증을 내고, 전 한심하게 쳐다보다가 " 넌 레고도 못 만드니?"라고 소리 질렀는데, 남편이 " 난 이거 처음 보는 건데" 라며 화를 내고 방을 나갔습니다.  그때 깨달았죠. ' 아..... 난 이 남자가 다 큰 모습만 봤구나. 나는 중국의 과거를 모르는구나.' 그러고 보니,  지금은 레고 샵이 여기저기 있지만 , 우리 아이가 돌 무렵 막 중국에 그것도 상하이에만  들어오기 시작했었나 봐요.

  

  저에겐 너무나 당연했던 기억들이 남편에게는 없습니다.

  엄마 아빠 손잡고 놀이공원에 가는 기억, 아빠와 낚시를 간 기억, 동화책 쭉 늘어놓고 책담을 쌓아 논 기억, 크리스마스이브에 쿠키와 우유를 머리맡에 놔두고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렸던 기억, 피아노 콩쿠르 나가 가슴이 터질 듯이 긴장했던 기억, 첫 뮤지컬 공연을 보고 넋이 나간 기억,  백화점에서 엄마 아빠한테 뭔가를 사달라고 졸라된 기억, 그래서 혼난 기억,  엄마 아빠 떨어져 처음 간 서머캠프, 학원에서 돌아오는 길 친구들과 조잘되던 길, 쉬는 시간 매점으로 뛰어가 손에 가득 뭔가를 가지고 다시 뛰어오던 기억,  처음으로 술이 취한 기억 등등.......

  남편의 기억은 시골길을 아주 멀리멀리 걸어갔던 학교길, 농사일에 고되어 술을 마시고 자는 권위적인 아버지, 글을 읽지 못하는 어머니,  방학마다 만날 수 있던 동생(남편은 기숙사 학교에 다녔어요), 그리고 아주 춥고 무서웠던 학교 기숙사 첫날...... 이런 것들입니다. 물론 중간에 좋은 기억도 있었겠죠. 그렇지만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한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남편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남편은 그런 기억들을 꺼내놓는 것을 자존심 상해하기도 해서 대화가 끊어지기도 합니다.

  

 남편의 성공은 아주 단순합니다.

 열심히 공부했고, 그 결과 좋은 학교를 나와 석사까지 끝냈고, 좋은 직장에서 매월 따박따박 월급을 받고, 그걸로 한국인 부인은 전업주부를 할 수 있고, 아이를 아쉽지 않게 교육시킬 수 있고, 그리고 먹고 싶은 것을 망설이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거죠. 그리고 스스로를 대견해합니다.  미엔즈(面子 체면)가 중요한 남편에게 이 보다 더 좋은 건 없습니다.  남편 기준 이 인생은 성공한 것입니다. 

 하지만 남편은 밥은 몇십만 원을 내고 먹을 수 있지만, 좋은 공연이나 전시회를 본다고 몇십 만원씩 내는 티켓은 너무 아깝습니다.  몇백만 원짜리 코트는 사줄 수 있고, 명품 가방도 사줄 수 있지만, 여행 갈 거라고 하는 건 이해하기 힘듭니다. 여행을 가서도 출장을 가서도 남편은 그렇게 아웃렛을 다닙니다. 물건 못사 죽은 귀신이 붙고, 밥 못 먹어 죽은 귀신이 붙은 것처럼.....(예전 중국은 그렇게 죽은 귀신이 많았다며 남편은 농담처럼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지금은 말도 안 되는 '제로 코로나' 인지 뭔지를 한다고 중국인들이 해외여행을 가지 못하지만, 방학 때 아이를 데리고 상해발 비행기를 타고 상해 도착 비행기를 타고 돌아와야 했던 저는 저들이 그렇게 비행기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물건을 사고, 세금 환급을 받는다고 줄을 서는 통에 비행기 타는 그 순간이 너무 짜증이 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어느 나라 공항에서는 "I am not a Chinese!, just live there!"라고 소리 친적도 많았어요. 

  남편은 뭔가를 돈을 주고 배운다는 것이 너무 아까운 사람입니다. 취미가 하나도 없는 남편에게 피아노를 배우고 싶지 않니? 기타를 배우고 싶지 않니? 테니스는 어때?라고 하면 대답은 같습니다. "돈 없어" 그래서 이젠 포기했습니다. 저는 혼자 테니스를 배우고, 프랑스 문화원에 등록해 수업을 듣습니다. 물론 남편은 아주 그 돈을 아까워합니다.


 저는 성공한 결혼일까요?

 아마도 저의 사랑 호르몬은 남들보다 길게 나왔나 봅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그 호르몬은 어느새 사라졌습니다.

 저는 망한 결혼을 한 거 같습니다. 볼 때는 멀쩡해 보이지만,  아이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남편이 우리 가정을 끝까지 지키고 사랑할 거라는 자신감은 있지만, 문득문득 자아가 사라지는 기분이 듭니다.  남편과 살아온 이야기를 하고, 같은 음악을 듣고, 같은 취미를 가지고, 뭔가를 같이 배우면서 이제부터라도 같은 기억들을 만들어 가고 싶은데, 이미 스스로 성공한 인생을 사는 남편은 그럴 마음이 없는 거 같습니다. 아마도 '성공 or 실패' 이분법적인  답만 있다면 전 아마 실패에 가깝지 않을까요? 

 

 아이는 사랑스럽습니다. 우리가 15년이 넘게 치열하게 가꾼 이 가정도 사랑스럽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사랑스럽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생각보다 끈질기게 나왔던 '호르몬의 실수' 였을까요? 다음 세상이 있다면,  기억을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사람과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중국과는 되도록 인연을 만들고 싶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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