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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라는 직업
계약직 기간제 교사(1)
by
블랙홀
Feb 15. 2023
누가 인간을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나?
명예퇴직을 하고 정해진 시간에 출근을 하고 정해진 시간에 퇴근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는 해방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이들은 성장해서 시간에 맞춰 밥을 차려주지 않아도 될 만큼 성장했다.
어릴 때처럼 엄마의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았고, 엄마의 잔소리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하릴없이 빈둥거리다 보니 오후에 일어나고 새벽에 잠들고 일어나는 생활이 계속되니 하루는 그만큼 짧아졌다.
30여 명의 아이들 속에 파묻혀 지내고 공문에 치이며 상사의 눈치를 봐야 했던 모든 일들이 갑자기 멈춰버리니 항해로를 잃어버린 돛단배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노후
준비를
했으니 크게 돈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는 예상도 빗나갔다.
아이들이 크면서 씀씀이도 커졌고, 요구하는 사항도 많아졌으며, 형제들끼리도 은근히 견제를 하기 시작했다.
수입은
한정되어 있고 씀씀이는 커지니 미래에 대한 입지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주식이니 채권으로 투자(?)를 하다 보니 온전하게 하고픈 일을 시작하기 어려웠다.
그즈음 고교 졸업 후 대학
진학할 돈으로 장사 밑천을 해달라는 둘째에게 프랜차이즈점을 만들어줬지만 계약기간이 끝나고 쉬고 싶다며 집에서 빈둥거릴 때는 속에서 열불이 났다.
백수가
되었으니 필요한 기초적인 생활비는 대 줘야 했다.
그도 예상외의 지출이었다.
하지만
담배는 신이 주신 선물이라며 죽어도 끊지 못하겠단다. 더구나 한술 더 떠 한 개비 주며 '엄마도 피워 보라"라고 권장(?)했다. 베라묵을 놈 같으니라고ㅠㅠ
깍지 않아 더부룩 한 수염, 담배는 하루 몇 갑을 피우는지 옆에 가면 담배 쩐내가 진동을 했다.
하지만 팔랑귀라서
아무도
없을 때, 주고 간 담배를 한
개피 물어보니 아무런 감흥을 느낄 수 없을 뿐 아니라 내가 뱉은 담배연기도 맡기 싫어 고개를 돌려야 했다.
다른
층에서 지내다 어쩌다 방에 들어가 보면 100리터 쓰레기 봉지는 라면 껍질과 담배꽁초로 가득 넘겨서 바닥까지 흩어져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꼴을 보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불쑥 뿔쑥 일어나는 때였다.
그때 술친구 동기로 교장으로 있는 s가 전화로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학교주소를 주며 당장 오라는 연락이 왔다.
귀찮다고 하자 "정오가 되도록 침대에 널브러진 게 안 봐도 비디오" 라며 지랄 말고 빨리 오라고 어르고 치는 통에 부스스 일어나 학교로 찾아갔다.
알고 보니 기간제교사 티오가 생겼으니 잔소리 말고 근무하라며 계약서를 내밀었다.
아침 늦잠으로 정시 출근이 어렵다고 하자, 전담이니 그런 걱정은 하치 말고 수업 후에는
보건실에서 있다가 다친 아이 약 발라주고 체한 애는 배탈약을 주면 된다고 했다.
보건실에 있는 4개의 침대 사이에는 칸막이가 되어 있었고, 아픈 사람이 찾는 곳이라서 냉ㆍ온방은 자동으로 작동할 수 있었다. 알아서 눈치껏 근무하라고 했다.
시골 작은 학교라 보건교사가 없어 가능했다.
그렇게 그 학교에서 11개월을 근무하는 동안 마음고생도 했지만 참으로 행복했다.
사실 아이들과의 생활이 그리웠던 것도 한 몫했다.
현직에 계속 있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감정을 그 직을 내려놓고 나서야 깨달았으니...
수업이 없는 시간엔 실습텃밭에 나가 고구마를 심었고, 텃밭 주변에 지천 인 거친 쑥을 가위로 잘라 망에 걸어 두면 여름 철 해충이 기승을 부릴 때
요긴하게 썼다. 베란다에 양은그릇을 놓고 태우면 은은한 쑥향이 집안을 진동하기도 했다.
시골이라서 김장하기에 부실한 배추와 무는 그대로 밭에 두어 누구든 뽑아가라 해서
욕심 껏
포대로 챙겨
오기도 했다. 다리가 불편한 친정엄마를 대신해 김장을 해드렸건만 간이 안 맞는다, 젓갈이 덜 들어갔다며 타박을 받았지만 말이다.
25년 교직생활동안 20년 정도는 1.2학년을 담당했고 그 외 학년은 한 해씩 밖에 경험한 적이 없어 고학년을 수업해야 한다는 건 곤혹스러울 때도 많았다.
고학년 아이들은
눈치가 100단이라 교사라 해도 잘못하는 건 솔직하게 인정해야
했고, 도움이 필요할 때는 정중하게 부탁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저학년과는 사뭇 다른 환경이었다.
전교회장이란 녀석은 미술시간에 졸라맨을 그려 제출하고 그대로 운동장으로 놀러 가는 통에 당황하기도 했다. 나가지 말라고 하면 돌아다니며 다른 친구들의 수업을 방해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절 절 매기도 했다.
주의를 주면 자리에 앉은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같은 행동을 되풀이하곤 했다. 한 명이 그러니 하루가 지날수록 눈치를 보던 주변아이들도 같은 행동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마치 골탕 먹이려고 미리 짠 것처럼.
중간에 들어온 교사에 대한 속을 떠 보기 위한 고단수 아이들의 테스트
통과의식은 그렇게 치러졌다.
수업시간엔 그렇게 속을 썩이더니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엔 언제 그랬냐는 듯 보건실로 친구들을 끌고 와서 수다를 떨어 혼을 쏙 빼 놀기도 했다.
아이들에겐 자신들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고, 마음으로 대화할 수 있는 그런 교사를 원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두세 달이
지나서였다.
참으로 아이러니했다.
만 14년을 남기고 명예퇴직을 할 때는 언제고. 다시 기간제로 근무하다니.
솔직히 일선의 교사들이 바라보는 기간제는 동등한 교사로보다는 대부분 열외라고 생각해서인지 업무도 그만큼 할당하지 않고, 주요 결정사항 의견수렴에도 의례적으로 대한다는 것을 알고서도 내가 그 길을 걷고 있던 것이다.
학기 초부터 아예 기간제 교사로 채우는 중. 고등학교에서는 누가 기간제인지 알 수 없다.
특히 사립 중. 고등은 정교사보다 기간제교사의 비중이 훨씬 높은 게 대부분이다. 연임해서 근무하니 학부모나 학생들도 알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하지만 초등에선 병가나 휴직의 빈자리를 채우는 게 기간제인만큼 교사나 학부모들이 바라보는 시선도 10% 부족한 게 사실이다.
그렇게 명예퇴직을 하고 얼마 되지 않아 기간제로 근무했다
.
33호봉에서 14호봉을 받으면서.
가끔씩 자존감이 떨어지는 일이 발생할 때마다 난 누구를 위해, 왜 이러고 있는지 헷갈리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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