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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블랙홀
Feb 28. 2023
기간제 교사라서 할 수 있는 버킷리스트 (2)
숙소에서 5분 거리에 있는 학교는 가는 길에
단종의
유배지였다는
청령포와
선돌목이 인근에 있었으며 1개 학년 1 학급의 아담한 곳이었다.
학교 뒤편 주차장 언덕배기에는 아이들이 심었다는 해바라기가
초가을
햇빛을 받으며
튼
실하게
씨앗을 채워가는
여유
로운 곳이었다.
청령포에서 배를 타고 3분도 안 걸리는 단종의 유배지는 냇가치고는 쾌 넓은 물줄기가 흐르고 있어 작은 유람선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바닥의 자갈들이 보일만큼 맑고 투명한 아름다운 곳이었다.
청령포 가까이로 가다 보면 수심이 깊은 곳이 있었고, 사람들은 그 물줄기가 강물이라고 했다.
앞 쪽은 평지에 강물이 흘렀고, 뒤쪽은 깎아놓은 듯한 가파른 절벽 뒤로도 강물이
흘러
강물 위에 둥둥 떠 있는 섬이었다.
섬
안에는 몇 채의 정갈한 초가집이 있었고, 주변에는 보기 드문 울창하고 구부러진 형태의 조선소나무
숲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분재로만 볼 수 있었던 그런 형태의
귀한
소나무들이...
단종이 아내인 정순왕후를 그리워해서 서울이 있는 쪽을 바라보기 위해 매일 올랐다는 곳은
,
가파른 절벽 쪽의 언덕배기 끝이었다.
단종은
처음엔 청령포에 머물렀지만 사망하던 해 홍수가 나서 관아인 광풍헌으로 거처를 옮겼고, 그곳에서 죽음 맞이했단다.
사망 이
후 감히 시신을 수습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지역 아전이 몰래 거두어 매장을 했고 들키지 않으려고 아래에서 보이지 않는
구불구불한
산비탈에 모셨다는 얘기가 있다.
청령포는 비록 유배지였지만 명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풍수지리를 배워서 조금 볼 줄은 앎)
학교 오. 가는 길에 보이는 곳이라 대하드라마 속의 단종이 아닌 실제 단종의 삶이 궁금했다.
운이 좋게도 해마다 4월~5월 사이에 열리는 단종제가 그 해는 9월에
열려
웅장한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지자체의 주관으로 전국행사로 열렸다. 그만큼 단종제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평시엔 굳게
잠겨있던 단종사당도
그날은
오픈되어서
들어갈
수 있었다.
제단에는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떡과 약과, 밤,
대추 등
각종 나물들이 괴어져 있었다.
제가 끝나고 나서도 고여놓은 음식을 내리는 사람이 없어 군청
주무관
에게 허락을 얻어 주변인에게 제사음식을 나누어
줬다.
제사를 지낸
경험이 있어
내가 앞장선 것이다.
덕분에
나도 맛있는 것을 배부르게 먹는 호사를 누렸지만.
단종 사당 뒤에는 꼬불 꼬불 단종왕릉으로 올라가는 비탈길이 있었고, 그 끝자락 산 중턱에는 단종의 왕릉이 있었다.
왕릉 앞에서 보면
소
나무들이 가로막고 있어 확 트인 곳은 아니지만 햇살이 잘 드는 곳이었다.
생존수영체험을 하러 래프팅으로 유명한 동강 근처의 대형 실내풀장을 갔을 때는 비키니수영복을 입고 폼을 잡기도
했다.
... 그 사진을 본 자식들이 다 늙어 주책이라며 당장 내리라고 전화가 빗발쳐 기억 속에만 저장시켰던 추억이 기억난다.
퇴근 후에는 숙소 옆 재래시장에 들러 올챙이국수나 부꾸미를 배부르게 먹어도 5000원을 넘지 않았다. 유명한 순댓국집도 시장 안에 있어 외지인으로 바글바글 끓곤 했다.
시골할머니들이 내온 고들빼기김치는 처음 맛보았지만 쌉쌀함과 농익은 맛이 배어 한 가지만 있어도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웠다.
잠 안 오는 밤이면 시장 안 야식집에서 먹던 잔치국수와
매콤한
닭발은 잊을 수 없는 맛이었다.
주변에 산이 많아
나물이 정말
많았다.
고추장
산채비빔밥
,
간장만 넣고 비벼 먹는
곤드레밥은 향이 진해서 즐겨 먹곤 했다.
함께 나오는
된장찌개도
일품이었다.
주말이면 애들과
친척들
이 와서
하룻밤씩
묵으며
맛집과 인근 관광지를 둘러보기도 했다.
처음
와서
막내는 내 숙소를 보고 꺼이꺼이 울었다. 그리고 그냥 집으로 가면 안 되냐고 눈물 콧물을 뺏다.
예전의 여인숙을 개조한 곳이라 안에는 잠금 쇠가 있었고, 바깥에는 자물쇠도 있었지만 마음만 먹으면 딸 수 있는 허술하기 짝이었는 곳이었다.
신발장도 없어 방안에 신발을 들여놔야 했고, 작은 tv와 헹거, 그리고 접이식 밥상 위에는 숟가락과 젓가락, 버려도 좋은 밥솥과 밥그릇, 냄비하나가 전부였다.
살림을 승용차에 싣고 오기도 힘들었고, 계약이 끝나면 짐을 줄이기 위해 버리기 일보직전의 낡은 것들만 골라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좋았다.
내 수준의 말이 통하는 학급아이들과 함께하는 것도 좋았고, 3~4시간 걸리는 집에 갈 때는 지루하기보다는 주변 경치구경에 흠뻑 취했었다.
휴게소란 휴게소는 모두 들러 한 바퀴 둘러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였다.
갈 때는 여름옷만 챙겨갔는데 계약이 끝나 돌아올 때는 산촌이라 추위도 빨리 와서(11월) 옷가지만 가져오는데도 11인승 승합차에 빼곡히 싣고 왔다.
낯선 객지에 가서
머물렀지만 세 달이란 기간은 지역 단골집을 드나들기도 했다.
미용실 원장님도,
닭발집
할머니
도,
부꾸미를 팔던 시장의 좌판 아주머니도 언제 또다시 만날 수 있을까...
지금도 새록새록 기억이 난다.
어쩌면 내 생이 끝난다 해도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는 가슴이
아려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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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공무원 25년. 계약직 5년. 현재는 자영업을 합니다. 힘들고 화가나면 글을 씁니다. 좋아도 쓴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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