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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랙홀 Mar 02. 2023

기간제 교사라서 할 수 있는 버킷리스트 (3)

두 번째 버킷리스트는 울산이었다.


부산이나 포항은 가봤지만 울산은 가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울산조선소 정도만 알고 있을 뿐.


면접을 보기 위해 가던 날은 초겨울 바람이 너무 세서 절로 옷깃을 스며들 때로, 기차를 두 번 갈아타고 가야 하는 생각보다 먼 곳이었다. 승용차로는 4시간 가까이 걸리는 곳이었다.


햇빛은 있었지만 을씨년스러웠고 기차역 바로 앞은 노점상과 상가들이 즐비했다.



학교는 꽤 많은 학급을 갖고 있는 큰 학교로 주변은 신흥아파트들이 즐비했다.


너무 멀어 간다 안 간다 다가, 12월 중순부터 2월 말까지 근무해서 실제로는 3주도 안된다고 교감선생님이 꼬셨다.


임용고시가 끝난 직후인 11월 말 계약을 해서인지, 고시공부를 하느라 힘들었는지  응시자가 없어 안달이 난 교감선생님은 전화가 계속 왔다.


문제는 신흥아파트 끝자락에 있어 단기 원룸을 구할 수도 없고, 인근에 숙박업소도 없었다.


숙소만 해결되면 간다고 한 후 주변 검색을 해보니, 인근에 24시간 찜질방이 있었다. 라커룸을 장기로 빌려줄 수 있고 건물 내에 식당도 있었으며 주차장도 넓어 꽤 괜찮아 보였다.


근무하루 전인 12월 17일 저녁, 11인승 승합차에 옷가지와 최소한의 필요한 준비물만 챙겨 내려갔다. 초행길이라 4시간 정도 걸렸지만 내비게이션이 발달되어 큰 무리 없이 도착할 수 있었다.


담당학급은 졸업을 앞두고 있는 6학년이었고, 저학년 학급 수는 많았으나 6학년은 2 학급에 학생 수도 20여 명 정도였다. 학급에 따라 11명. 12명.


'아이스크림' 프로그램을 사용하니 수업에 큰 어려움은 없었으나 아침, 저녁으로 겨울바람을 맞고 다니려니 그 점이 어려웠다. 전 담임이 산후휴가를 들어가면서 진도를 맞춰놓지 않아 3~4시간에 나가야 되는 한 단원을 1 시간에 마쳐야 해서 학생들과 래포를 형성할 틈도 없었다.


퇴근 후 저녁은 대부분 찜질방에서 뒹굴거리다 내부 한식당을 이용했다.

정갈하고 맛은 있었지만 흠이라면 울산은 내가 살던 지역보다 물가가 훨씬 비쌌다.

우리 동네 싸우 나는 4000원, 찜질방은 6000원이었는데 거긴 싸우나 가 만원이었고. 국밥도 1500원~2000원은 비쌌다.


무엇보다 특이한 것은 싸우나 와 찜질방은 거의 여성들의 전용이라고 생각했는 게 그곳은 남자와 여자의 비율이 반반이었다.

생각건대 조선소 외부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많은 지역성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워낙 싸우나 와 찜질을 좋아해서 큰 불편은 없었지만 수면방에 누워있노라면

이게 뭔 짓인지,

낯선 곳에서 지금 뭘 하고 있는지,

퇴직하면 그동안 못해줬던 엄마노릇을 충실히 한다고 했지만 '지금 도대체 왜 이러고 있는지' 되 뇌이곤 했다.


하지만 출근을 하고 나면 그 생각은 까맣게 잊고 지냈다.

단순히 호구지책으로만 했더라면 서러워서 못 있었을 것이다.

수면방에서 침낭을 깔아 내 전용자리를 만들어 놓고 떠들거나 문을 열고 다니는 사람은 일일이 참견을 해서 군기반장을 자처했다.


일주일 남짓 끝에 겨울방학이  되어 당직표가 나왔는데 거기에 나도 끼어 있어 교무부장과 한바탕 하기도 했다.


산후휴가나 병가대신 임시로 대체교사인 기간제는, 복무나 업무도 휴가 중인 교사의 입장으로 봐야 하니 당직에 넣지 말아야 함에도 집어넣었다는 것이 내 주장이었다. 그것도 모두 꺼려하는 방학 한 중간에.


웬만하면 그냥 지나가려 했지만 단 하루를 위해 가는 날, 오는 날 삼일이 걸린다는 것을 알면서 그랬나 싶어 교감에게 따졌다.


기간제라서 용감하고 기간제라서 할 말 다하는 건 수틀리면 때려치우겠다는 심산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당장 그만두면 대체교사를 찾을 때까지  교무나 교감이 꼬박 수업을 들어가야 하니 기간제에게 불편한 얘기를 하지 않음이 상책임을 서로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교감은 자기 소관이 아니니 담당인 교무부장에게 미뤘고, 교무부장은 아예 뺄 수는 없으니 개학 하루 전, 전 직원 근무 일로 옮겨준다고 해서 모른 척 넘어가기로 했다.


6개월 이상 장기근무 기간제라면 칼자루를  쥐고 있으니 따라야 하지만, 한 달 이하 단기라면 칼끝을 쥐고 있으니 오히려 대충 넘어가는 게 잡음을 없애는 지름길이라는 걸 학교에서는 잘 알고 있다.


당직에 관해선 학교장의 명에 따라야 하지만, 그런 디테일한 규정이 없다면 그 해석에 따라 의견이 분분해서 종종 다툼의 소지도 있는 게 사실이다.








처음 계획은 울산에 대해 알아보는 계획이었으나 바닷바람이 너무 세고 추워 퇴근하면 뜨끈 거리는 찜질방으로 쏙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근무기간 중에 집에 다녀오는 것도 힘들었고, 주변을 둘러본다는 것도 겨울이라 어려웠다.


겨울철 4시간 가까이 운전한다는 것은 고역이었고, 언제 눈이 내려 블랙아이스로 변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울산은 사투리와 억양이 세서 알아듣기가 어려워 두 번씩 물어봐야 하는 것과, 춥다는 것 외엔 별 생각이 없었다.

아 참, 울산 특히 인근에 있는 울진은 지진이 났었다는 것만 생각났다.


교육과정은 도교육청에서 교육부지침을 받고 다시 지역교육청으로 내려보내주니 지역성을 살린 것 외엔 큰 다름이 없었지만 아쉬웠던 것은 학교 홈페이지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았다.


또한 학생중심의 운영을 해서 교사로서 해야 하는 것도 학생들에게 동의를 얻거나 설명을 하고 진행하는 점이 유별났다는 기억이 난다.


교사는 학생들 동의를 구하거나 설명으로 이해시키는 것도 필요하지만 때론 교사가 앞장서서 따라오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학생들에게 선택권을 주다 보니 졸업 표창장도 이건 싫으니 다른 분야로 바꿔 달라는 해프닝도 있었다.


황당해서 5년 차인 옆반 샘에게 물어보니 학생의 의견을 학부모에게 전화해서 흐름을 설명해 주라는 대답에 할 말을 잃었었다.


융통성을 갖고 학생의 눈높이에서 상호작용을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교사의 빠르고 적절한 판단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지역 특성인지, 교사의 학급운영 방식인지는 모르겠지만...


한편으론 그런 학생들이 강의식, 하향식이 태반인 중학교에서 어떻게 적응할지 궁금했다.



그리고 깨달은 건 두 마리 토끼를 잡지 못하는 겨울엔 돌아다니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울산은 기억거리도 없고, 즐겁지도 않았다.



따뜻할 때 경남이나 제주도를 염두에 두었지만 이후는 코로나로 꼼짝하지 못하고 집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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