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매거진
시집 커피가 그리운 날
실행
신고
라이킷
17
댓글
공유
닫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브런치스토리 시작하기
브런치스토리 홈
브런치스토리 나우
브런치스토리 책방
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블랙홀
Aug 12. 2023
뚱이라서 슬퍼
이른 봄 바람이 앞섶을 여밀 때
제 생각 한마디 말도 못 하고
저 품에서 이 품으로 안겨올 때
커다란 눈망울은 내 가슴에 그대로 남겨졌지.
초롱초롱한 두 눈의 서기
무쇠라도 씹을듯한 아귀
어디든 튀어나갈 수 있는 튼튼한 다리
누구에게도 굴하지 않던 기개
그땐 뚱이가 얄밉고도 좋았어
13년은 짧지 않았지.
배가 고파,
목이 말라,
볼일 본 뒤처리해 줘.
내 곁이 허전해,
곁에 누구 있어?
묻는
걸 알아들을 만큼
우린 긴 시간을 함께 했네.
짖음으로 네 의사를 알아듣는
나는 집사라 할까?
두 눈은 초점이 없고
시커먼 눈꼽은 세상을
덮어
버렸지만
아무리 불러도 미동도 하지 않는 서글픔보다
뒷다리를 질질
끌고도
이리저리
쫓아다니려 애를 쓰는
네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지기만 해.
뚱이야.
도도하고 품위 있던 네가.
이제 내 손길을 빌 릴 수밖에 없다는 것은
해맑게 다시는 뛸 수도 걸을 수도 없다는 것은
너 만큼 나도 같이 늙어가는 거겠지.
주변에 오지도 못하게 까칠했던 그때의 네가,
손냄새를 맡고 안도하는 지금의 너 보다
더 좋았어.
그래서 너를 보면 자꾸만 눈물이 나.
(해설)
뚱이는 3살이던 2010년 2월 우리 집으로 온 입양견 페키니즈로 지금 16살이다.
제 엄마가 결혼하는데 새 신랑이 털 알레르기가 있어
인터넷에 입양공고를 한 것을 보고,
두 눈이 왕방울만 하고 납작한 코가 너무 귀여워
서울 역까지 가서 뚱이를 데리고 왔다.
코트 속에 안긴 따뜻함이 좋았는지 집으로 오는 열차 안에서는 코까지 곯았다.
하지만 집에 오자마자 예민아씨로 변해 누구에게도 곁을 내주지 않았다.
근처에만 가도 조커처럼 큰 입을 벌리며 대드는가 하면,
가족 중 안 물린 사람이 한 명도 없을 만큼 도망 다니기 바빴다.
그때 유일한 우리의 피난처는 소파 위, 침대 위였는데...
다행이라면
페키니즈는 앞다리가 짧아 높은 곳은 오르지 못한다는 걸 안 후였다.
귀 밑까지 큰 입을 활짝 열고
기다란 꼬리를 흔들어 대며
두 귀를 나풀대던,
논두렁을 달리던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노견이란 계급장을 달고
코앞까지 먹이를 갖다 줘야 먹을 수 있고
큰 소리로 이름을 불러도 촛 점 없는 허공만 바라보는 뚱이.
산책을 가면 내려놓은 그 자리를 앞다리로만 빙빙 돌뿐,
걷지도 못하는 뚱이를 보며
희로애락 삶을 함께 지나온
뚱이와 내가 변한 이 현실이 슬프고 우울하다.
당연한 일임에도......
keyword
다리
아귀
반려견
블랙홀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교육학석사
직업
자영업자
소송 하는 여자 (개정판)
저자
공무원 25년. 계약직 5년. 현재는 자영업을 합니다. 힘들고 화가나면 글을 씁니다. 좋아도 쓴답니다.
구독자
274
제안하기
구독
매거진의 이전글
새 신발
꿈
매거진의 다음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