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과 시댁은 사는 방식도 삶의 질도 달랐다.
친정은 여자라 해도 떳떳하게 사회생활을 하라고 없는 살림이었지만 대학을 보냈고 부엌살림은 가르치지 않았다. 더구나 고등학교 때는 야간자율학습으로 밤 10시가 넘어 귀가하니 배울 시간이 없었고, 곧바로 대학에 진학해 기숙사 생활을 했으니 자연 부엌살림과는 멀어지게 되었다.
시댁은 열 명 가까이 되는 대 식구였지만 남자는 부엌에 들어가서도 안되고, 밥상을 들어도 안되고, 설거지는 여자들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유교냄새가 폴 폴 나는 보수적인 집안이었다.
큰 동서가 시집와서 육 개월을 함께 사는 동안 하루 이십여 번 가까운 밥상을 차렸다고 했다. 이른 아침 출근하는 시아버지, 새벽 사우나에서 돌아오는 시어머니, 자신의 남편과 네 명의 시동생은 들고 나는 시간에 따라 밥상을 차려야 했단다.
끼니마다 대여섯 번씩 하루 세끼를 집 밥을 차려야 했으니 손엔 물이 마를 새가 없었고, 방보다는 부엌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고 했다.
더구나 시댁이 시내 한복판에 있다 보니 오다가다 드나드는 외부 손님도 많았고, 시동생들의 친구까지 한몫을 했단다.
천석꾼의 딸로 태어나, 시집올 때 침모를 데리고 왔다는 시어머니는 큰 집 살림을 해서인지 손 맛은 끝내 줬고, 힘이 장사라서 웬만한 집안일은 남자들 손을 빌리지 않고 혼자 다 해내셨 단다.
이런 환경을 보고 자란 남편은 물론 시동생들까지 남자가 할 일. 여자가 할 일은 딱 선을 그었다.
가끔씩 남편이 대책 없는 똥고집을 부릴 때는 보수의 끝판 왕을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좁은 땅 덩어리지 만 예전 선조들은 기후도, 산세도, 농작물도, 사람들의 특성도 다르게 표현했다. 김치만 해도 중부 식, 전라도식, 경상도식. 북한 식 등 젓갈이 뭐가 들어가고, 고춧가루가 얼마 큼 들어가고, 짜고 싱거운 정도에 따라 모두 달랐다.
경기도와 전라도를 접한 충청도는 이도 저도 아니라서 때때로 오해를 받곤 했다.
속내를 쉽게 표현하지 않아 가끔은 엉뚱한 결과를 낳기도 했으니 좋게 말하면 신중하다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고리타분하고 색깔이 없다는 것이다.
객지생활을 하려면 건강이 최고라며 싫다고 해도 음식을 만들어 나르던 남편은, 결혼을 하고 나니 주방엔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죽어도 해주지 않는 것이 있었으니 그건 청소였다.
청소기를 돌릴 때면 소파에 붙박이처럼 앉아 꼼짝을 안 했다.
잔소리를 해도 '너는 떠들어라. 나는 안들을 테다.' 하는 고집쟁이처럼.
다리를 한 짝 옮겨놓고 청소기를 밀고, 다른 한 짝을 들어 옮기면 청소를 끝내도 삐뚤어진 그 자세 그대로 앉아 있었다.
마트에서 쌀 포대를 사서 트렁크에 싣고 왔기에 아파트 안 까지 옮겨 달라니,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참으로 쉽게 말한다.
"밥 할 때마다 바가지로 퍼서 나르면 되잖아!"
결국 퇴근할 때마다 한 바가지씩 나르다 보니 한 포대를 다 먹었던 적도 있었다.
특히 몸을 쓰는 일은 질색했다. 우라질~ 살림은 나 혼자 하나.
남편은 전형적인 충청도 토박이로 성격은 급했지만, 외골수에 보수적인 행동을 보면 영락없는 충청도 남자였다.
한번 아니라고 한 것은 끝까지 해 주지 않았으니 아무리 읍소를 하고 애교를 떨어봐도 소용없었다.
시아버지의 시집살이도 만만치 않았지만, 결혼 한 첫 해는 남편의 시집살이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였다. 이놈의 집은 남자들이 문제였다.
혼수로 가져온 세탁기가 있어도 설치해주지 않아 손빨래를 해야 했고, 손으로 주물럭거리니 때도 제대로 빠지지 않았다.
삶은 바닥부터 다양한 경험을 해봐야 힘들 때 버틸 수 있다는 것이 남편의 주장이었다.
아내는 어떤 척박한 환경에서도 이겨내야 하고, 적응하며 살아가는 지혜를 강조했다. 말 같지도 않은 이상한 논리를 펼치는 게 당황스럽고,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날은 막 출근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웬일로 일찍 일어난 남편은 뭐가 불편했는지 밥을 달라고 했다.
대개는 정오쯤 일어나 모닝커피로 대신하는데. 출근시간이 다 되어 밥을 짓기 어려운 내 처지를 알고도 트집 잡고 있다는 눈치가 보였다.
전 날 먹은 밥에 찌개만 덥혀 상을 들고 가자, 감히 찬밥을 먹으라는 거냐며 불같이 화를 내며 다시 내오라며 밥상을 물렸다.
근무시간은 다가오고 새 밥은 금방 할 수 없음을 알면서 무리한 고집을 부리니 순간적으로 뚜껑이 확 열렸다.
주방에 들어서자 밥상을 들어 그대로 힘껏 바닥에 패대기쳤다.
그릇은 쨍그랑 소리를 내며 바닥에 내 뒹굴었고 반찬은 바닥에 흩뿌려졌으며, 김치 국물은 벽에 튀고 난장판이 되었다.
방 안에서 항아리 깨지는 소리로 불렀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입은 옷에 가방도 못 챙기고 100미터 거리에 있는 직장으로 내 달렸다.
사실 난 전형적인 A형에 INFJ성격이라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오전 내내 후회스럽기만 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이었을까?
그날 점심시간, 집에 가지 못하고 겁도 나서 책상에 엎드려 있는데 남편이 창 밖에서 불렀다. 점심 굶을 거냐며 냉면 먹으러 가 잔다.
응?
어딜 여자가 남자 앞에서 밥상머리를 집어던졌느냐며 입에 게거품을 물어야 는데 아침 일은 꺼내지도 않고 별스럽지 않게 지나갔다.
이번에도 불 꽃 뛰는 순간이 지나니, 남편은 별 볼일 없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