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딴 주머니

by 블랙홀

결혼 전부터 경리가 있었고 나도 직장이 있으니 남편의 일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고, 신경 쓰는 것도 싫어하니 관여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매 달 일정 금액의 생활비만 받을 뿐 한 달 매출이 얼마고 지출이 얼마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시아버지는 달랐다.

결혼 전부터 직장을 그만두고 경리를 내보내라 성화였지만 차일피일 미루다 결국 사고가 터 졌다.

평소에는 얼렁뚱땅 넘어가지만, 일 년에 한 번은 며칠 밤을 새워서라도 토씨 하나 안 빼고 계산기로 탈탈 점검하는 것을 경리는 몰랐던 것이다.


경리가 매출금 중 일부를 외상으로 달아놓고 빼돌린 금액이 상당한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은 결혼한 지 일 년도 안 지나서였다.

횡령 금을 토해 놓고 경리를 내 보낸 후 그 일은 내 몫이 되었다.

아침 출근 할 때 총량을 파악 기록하고, 퇴근하면서 잔고를 확인하면 당일 매출액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아저씨들이 중간에 장난을 칠 수도 있었고, 24시간 옆을 지킬 수도 없었고, cc-tv도 없었으니 그건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하루 매출액은 내 한 달 봉급보다 많았지만 공무원은 사표를 내면 다시는 할 수 없어 시아버지의 명령을 어기면서도 병행했던 것이다.

시아버지가 대 놓고 시집살이를 시킨 것은 그때부터가 아닌가 싶다.


내 직장은 관련 대학을 졸업하면 성적순으로 자동으로 발령이 났기 때문에, 일반 공무원처럼 시험을 봐서 들어갈 기회는 없었다.

사표를 낸 다는 것은 아예 그 직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음을 감수해야 했다.

그래서 사표를 낸 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종일 근무하고, 퇴근 후 장부정리하고, 판매관리 하고, 육아를 돌보며 살림을 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더구나 부가세나 종합소득세 신고를 하려면 며칠 동안 밤을 새워 3개월 이상 밀린 장부를 한꺼번에 써야 했다.

수치까지 정확히 맞춰야 하니 숫자 계산에 젠 병 인 나는 머리에 쥐가 날 수밖에 없었다.

수학은 잘했지만 산수는 정말 어렵기만 하다.

덧셈이나 뺄셈 등 가장 기본적인 셈은 지금도 헷 갈려하고, 돈 계산도 조금씩 틀려 계산기를 끼고 있어야 마음이 놓인다.


그렇게 죽어라 새벽까지 장부와 씨름할 때도 남편이 나 몰라라 할 때는 정말 얄미웠다. 스트레스로 꼭지가 돌아갈 때 난 한 가지 궁리를 해내고는 쾌재를 불렀다.

스스로 내가 내게 일 하는 만큼 보상을 하기로 한 것이다.





처음엔 간이 작아 조금씩 손을 대다가 남편이 얄미울 때는 한 달 판매 금의 30%를 in my poket을 해도 남편은 몰랐으니 사업은 펑크가 날 수밖에 없었다.

내 주머니가 빵빵해질수록 외부적인 매출은 줄어들었지만 난 점점 대담해졌고, 당연한 노력의 대가라고 합리화시켰다.


바깥으로만 맴도는 남편의 행동은 사업이나 가정이나 모두 적용되었으니 몸 쓰고 신경 쓰는 것은 극도로 싫어하는 특이한 사람임에는 틀림없었다.

좋아하는 일은 밤을 새워서라도 하지만. 싫은 건 쳐다보지도 않아 경리도 그 사고를 친 것이니 경리 탓만 해서도 안되고, 아내가 딴 주머니를 찬다고 탓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오너가 자기 본분을 제대로 안 한 것이니 남편은 사업가 체질이 아니었다.

그저 한량으로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가끔은 죄를 짓는 것 같아 멈칫하다가도, 돈은 죽을 때 짊어지고 갈 것도 아니고 결국은 가정과 아이들을 위한 대비책으로 쓰일 테니 흔히 말하는 삥땅이나 딴 주머니는 아니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그렇게 딴 주머니는 가족을 위한 비상금정도로 생각하니 두려움도 죄책감도 없었고, 내 간은 점점 커져 배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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