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퇴근이 없으니 남편의 취침 시간은 들쑥날쑥했고, 일어나는 시간도 제 각각 이었다. 막내를 제외 한 두 아이는 학교에 가야 하니 자는 시간도 거의 정해져 있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잘 때 남편은 TV를 보며 뒹굴 거렸고, 새벽 2시가 되면 출출하다며 곤히 자는 나를 깨워 라면을 끓여 달라고 했다. 화를 냈더니 집안이 들 썩 일 정도로 큰소리를 냈다.
더 큰 사 달은 주로 주말에 발생했다.
밤새 잠이 오지 않는다고 툴툴대다가 동이 트면 잠이 들고 저녁때 일어나니 잠이 안 오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잠 안 오는 날은 새벽 4시 목욕탕 문 여는 시간에 맞춰 둘째를 강제로 깨워 목욕탕으로 갔다.
주말이라 늦잠 잘 생각에 들떴던 둘째는 새벽부터 깨우는 손 길이 지겨웠을 것이다.
안 일어나면 강제로 일으켜 세웠으니, 아이는 찔끔거리고, 찔끔거린다고 혼나고, 혼나니 더 울고, 우는 걸 보면 또 화를 내고, 빈곤 속의 악순환처럼 빙글빙글 돌았다.
그 걸 말리다 불똥이 튀어 부부싸움으로 번지곤 했다.
남편은 특이하게도 화가 나면 자기 분을 못 이겨 더 화를 냈다.
마치 피를 보면 더 날뛰는 똘키처럼.
그래서 남편이 애들을 훈육(?)할 때는 뒤로 물러서 있어야 집안이 조용했고, 잔소리하는 시간도 그만큼 줄어들었다.
심지어는 우리 모두 살을 빼라며 강제 운동을 시키기도 했다.
그 잣대는 순전히 주관적인 결론이지만. 운동으로 단련된 자신을 보라며 아파트 앞 중학교 운동장을 연령별로 열 바퀴, 여섯 바퀴 등 정해주곤 주방 베란다에서 망원경으로 감시했다. 하이 구야.
아 흐. 난 이 세상에서 숨쉬기 운동이 제일 좋은데. 꾀를 부리느라 운동장에 서 있는 떡갈나무 아래로 단체로 숨어버리면, 창문을 열고 빨리 뛰라며 고래고래소리 질러댔다.
대신 목표 감량을 하면 그 보상은 확실했다.
아이들에게 지갑에서 잡히는 대로 세어보지 않고 용돈을 줬고,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렸지만 남편은 돈도 써 본 사람이 관리도 잘한다며 막무가내였다.
덕분에 애들의 머릿속의 아빠는 '돈 잘 주고, 맛있는 거 사주고, 옷 잘 사주는 변덕쟁이'로 기억되었다.
그중 바른 소리를 해서 가장 혼난 건 첫째였다.
혼나고 울어가면서도 할 말은 다했고, 회초리를 맞으면서도 도망가지도, 잘못했다고 하지도 않았다. 결국은 남편이 지쳐 스스로 회초리를 놓고는 더 이상 부딪치는 상황은 회피했다.
그 와중에도 아빠의 기분을 제일 잘 알아 실속을 챙긴 건 둘째였다. 아빠가 좋아할 일은 먼저 했고, 기분이 좋은 틈을 타서 용돈을 타 냈으며 적당한 거짓말도 술술 했지만 난 제재하지 않았다.
짐승도 도망갈 틈을 주고 쫓으라고 했는데, 복잡한 뇌 구조를 가진 인간은 주변과 타협해서 살아가는 요령을 터득하는 것도 삶의 방편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주말부부로 지낼 때는 최악이었다.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은 남편이 직업군인인 줄 알았단다.
집에 도착하기 30분 전엔 항상 전화가 왔다. 어디쯤 왔다고. 밤 11시든 새벽 1시든 관여치 않았다.
전화를 받으면 온 가족은 발 빠르게 카트를 끌고1층 입구에서 도열해서 기다려야 했다.
차가 도착해서 라이트불빛에 네 명 모두 기다리고 있으면 흡족해서 입이 귀밑에까지 찢어지게 좋아했고, 한 명이라도 빠지면 언짢아했다.
올 때마다 뒤 트렁크도 부족해, 뒤 좌석까지 차지한 생필품들을 보며(사실 일주일 동안 먹지 못해 친정과 이웃에게 나눠주고 상해서 버리는 게 부지기 수였지만) 다음 엔 그냥 오라고 했다가, 가족들 먹이려고 일부러 장을 봐 왔건만 그런 마음 몰라준다며 버럭 하는 통에 군말 없이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가져온 것을 가족이 맛있게 먹는 걸 보면 남편은 뿌듯하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추운 겨울이든 비바람이 몰아치든 1층 현관입구에서 도착할 때까지 서성거리며 기다려야 했다.
새벽에 도착할 때면 자는 아이들을 깨워서 데리고 가야 했으니,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아찔하기만 하다.
그 모습을 본 이웃들은 처음엔 우리 가족을 이상하게 봤고, 나중엔 남편이 지방에서 근무하는 직업 군인이라 가족들이 저렇게 맞이를 하나보다. 라 고 생각했단다.
아이들은 남편의 일방적인 요구에 뒤에서 볼 메인 소리를 했지만 50년이 가깝도록 굳어진 성격 때문인지 남편은 쉽게 바꿔지지 않았다.
술을 먹지 않으니 24시간 맨 정신으로 여유로울 때는 한없이 자애스러웠지만, 몰아세울 때는 숨을 돌릴 틈도 주지 않았으니 아이들은 아버지의 그런 모습에 힘들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