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어진 망아지

by 블랙홀

D시로 이사를 오면서부터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

그동안의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몸으로 나타난 것이다.


처음엔 뒷목통증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심각한 고혈압 진단을 받았다.

한번 먹기 시작하면 일평생 달고 살아야 한다는 혈압 약을 그때부터 먹기 시작했고, 고혈압은 고지혈과 당뇨를 세트로 달고 왔다.

의사는 운동을 하며 살을 빼라고 했지만 운동과는 철벽을 쌓고 있던 터라 무작정 굶으며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출산을 할 때마다 늘어난 몸무게를 교훈 삼아 다시 길고도 오랜 싸움을 해야 했다.

다이어트를 할 때는 어느 정도 제자리로 돌아왔다가 남편에게 스트레스를 받으니 다시 불어났던 것이다.

병원 부설 비만 클리닉은 비의료보험으로 한 달 수십만 원이 들었지만 예전의 '나'로 돌아간다면 아깝지 않았다.

주사를 맞고 약을 먹고 적당한 운동까지 시켜주는 병원에서 서너 달 만에 헐렁한 옷으로 감추지 않아도 될 만큼 몸이 다시 돌아왔다.


휴가 때면 정기적으로 단식원에 가서 몸의 독소를 빼주며 관리를 하니 예전의 살은 빠지고 남편에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니 기미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듬은 외모는 자신감과 용기를 줬다.





한 달에 많아야 서. 너 번 오는 남편의 잔소리에서 풀어진 해방감으로 물 만난 고기처럼 농익은 모습에서 나오는 자신감은 날 과감하게 만들었다.


간신히 되찾은 몸을 유지하기 위해 퇴근하면 헬스장에서 운동을 했고, 같은 시간대에 자주 보던 괜찮은 남자는 운동기구사용법을 알려주겠다며 다가왔다.

스포츠댄스에서 배웠던 룸바, 자이브, 차차 스텝을 연습하며 일주일에 한 번은 사교춤 레슨을 받으러 다녔다.


2년 차 후배들을 꼬드겨 한 달 한 번 나이트모임을 만들어, 파장할 때까지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실전에 몰입하기도 했다.

다만 나이트에 가도 부킹 하지 않을 것, 플로어에서만 비비다 올 것, 반드시 정장에 힐을 신고 나올 것'이 세 가지가 우리 모임의 철칙이었다.

그렇게 풀어진 망아지처럼 놀기 시작했고, 직장에선 승진을 위해 문어발식 점수를 채워나갔다.


주변에선 멘토가 되어주겠다는 사람이 늘어났고, 그만큼 따르는 후배들도 많아져 24시간이 부족할 만큼 바빠지기 시작했다.

이젠 외롭지 않았다.

큰 애가 고등학교에 다니는 내내 아침밥을 챙겨준 적이 없었다.

집과 학교는 동쪽과 서쪽 끝에 있어 같은 학교로 실어 나르는 봉고차는 아침 6시 반이면 첫 출발지인 우리 아파트 주차장으로 왔으니, 그 시간에는 죽었다 깨도 밥을 해 줄 수가 없었다.

저녁은 밤 10시에 끝나는 야자로 학교 급식 실에서 먹으니 집에서는 주말 외엔 밥 먹을 기회가 없었다.


둘 째는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친구들과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큰 아이와는 달리 아무리 노력을 해도 도로 나무아미타불이라 차라리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하며 내 버려뒀더니 친구 아빠가 운영한다는 pc방에서 살다시피 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니 가능한 일이었다.

대신 제 몸이라도 지키라고 태권도, 검도, 생존 수영 등은 게을리하지 않고 시켰다.


외할머니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막내는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조용했다.

집을 어지른다는 외할머니의 잔소리에 친구들을 데리고 오지 않았고, 집 밖은 위험하다는 잔소리에 친구 집에도 놀러 가지 않았다.

아파트 놀이터에서 혼자 노는 것도 허용하지 않고 제 까닥 불러들여 손자에 대한 사랑을 그렇게 옭아매는 것으로 표현했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면 서운하다고 하셔서 말을 하기도 어려웠다.


위로 두 아이와는 달리 항상 제 자리에 조용히 있었기 때문에 막내에겐 신경 쓸 일도 없었고,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


그렇게 엄마는 있었지만 제 구실을 못 했고, 아빠는 주말에나 올라와 잔소리만 늘어놓고 내려갔다.

그 부족함과 빈자리는 용돈으로 보상했다.

남편이 했던 것처럼 어느새 나도 그렇게 변해가고 있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엄마의 손길과 잔소리보다는 친구들과 노는 걸 좋아했고, 일정 궤도 밖으로 이탈하지 않았다.

막내를 빼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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