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불장난

by 블랙홀

누군가 그랬다.

여자는 사십 대, 남자는 오십 대가 되면 '불 같은 바람’으 로 패가망신할 위험에 흔들릴 수 있다고.


여자는 사십 대가 되면 어느 정도 육아에서 해방되고, 생활에서도 여유가 생기지만 남편은 예전과 다르다.

집에 있을 땐 삼식이가 되어 TV만 끼고 살면서 잔소리만 더 늘어난다.

잠자리가 불편하다며 각 방을 쓰자고 하거나, 거실에 나가서 자는 게 편하다고 한다.

머리를 볶아도 화장을 진하게 해도 새 옷을 입어도 관심도 없다.

갱년기라서 밤 잠도 못 자고 온탕과 냉탕을 왔다 갔다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잘도 잔다.

오십 대가 되면 여자로서의 삶이 끝나는 것 같아, 다시 한번 여자임을 확인해 보고 싶어 한다고 했다.


남자 역시 오십 대가 되면 집에 들어가도 아내에겐 예전처럼 환대를 받지 못하고, 자식들은 컸다고 얼굴 보기도 어렵다.

뭐라고 얘기하면 건성으로 듣고 넘기니 가장으로의 체면도 구겨진다.

젊어서는 상사 눈치 보고 일에 쫓겨 정신없이 살았지만, 오십 대가 되면 직장도 안정되고 주변을 둘러볼 만큼의 여유도 생기지만, 바쁘게 살다 보니 변변한 취미생활도 못 해봤다.

집에 가봐야 재미도 없고, 하릴없이 TV만 끼고 살면서 연속극을 봐야 한다는 아내의 성화에 리모컨도 내주고 만다.

흰머리는 늘어만 가고 몸도 예전 같지 않, 직위가 있으니 시간은 많아지는데 환영받지 못하는 가장이 되어버렸다.

그럴 때 관심을 가져주고, 대화에 귀 기울여주고, 소통이 되는 젊은 여자를 보면 혹하고 쉽게 빠져들 수밖에 없단다.






여자의 사십 대, 남자의 오십 대는 사그라지는 성에 대한 허무 함으로 자신의 궤도를 이탈해서 지랄발광을 하고 싶어 하는 가장 위험한 나이라고 했다.


경험해 보니 모두 맞는 말이었다.

내 남편도 그때 흔들렸고, 나도 그때부터 흔들렸다.

남편은 오십이 가까워오며 눈에 띄게 바깥으로 돌았고, 나도 사십이 되니 남편에게만 매달리지 않고 주변인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곱씹어봐도, 남편이 그 여자를 언제부터 만났는지 알 수 없다는 게 더 문제였다.

여자는 다방에서 레지로 있었고 모텔에서 잔 심부름을 하며 지냈다는 것이 내가 아는 전부였다.


결혼 전 다방에 드나들다 만났는지, 아니면 결혼 직후 도박에 빠졌을 때 모텔에서 심부름하던 여자인지, 그도 아니라면 교통사고 수술과 재활을 하던 시기 병실에 혼자 있었을 때 차 배달을 와서 말벗을 해줬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읍내 아파트로 이사 간 후, 같은 아파트 다른 동에 거주한 적도 있다니 이사 간 직후였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아니, 생각해 보니 10여 년 전 형제들끼리 캐나다여행을 다녀오면서 짐을 풀 때 내 것이 아닌 리바이스여성용 청바지를 따로 챙기는 걸 봤었다. 별거 아닌 듯 얼버무리던 그때부터인가?


더구나 그 조카를 사무실 경리로 들이면서 주변에선 도를 넘었다고 생각해서 알려 줬다고 했지만 그건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었다.

나도 모르는 남편 통장의 비번, 전체적인 사업의 돈 흐름까지 알 수 있는 자리인데.


여자들은 촉이 빠르다고 했지만 내가 이상을 느낀 것은 교통사고가 난 후부터였는데, 아예 결혼 전부터였다면 감쪽같이 모를 수 있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남편의 그 상황이, 그 시작을 알기 어렵다는 사실이 날 우울하게 했고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주말 부부로 지내는 3년 동안은 아무런 생각도 티도 내지 않는 묵언의 시간으로 잡았으니 당분간은 잊고 지내기로 했으나 문득문득 떠 오르는 생각은 날 막막하게 만들었다.


친정 부모님은 지나가는 바람이라고 했지만 내 예감은 달랐다.


그럼 나는? 나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이런 혼란스러움과 배신감은 날 자꾸만 불구덩이로 뛰어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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