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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랙홀 Feb 06. 2024

백발도사님

피임을 안 했음에도 첫 아이를 낳고 만 4년이 지나도록 둘째가 생기지 않아 은근 노심초사할 때였다.


주변어른들이 아이는 터울 없이 낳아 멋모르고 키워야지, 터울이 크면 수록 육아를 하다가 젊은 시절 다 간다고 한 마디씩 했고.


육아를 도와주던 친정부모님은 당신이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도와주지 힘딸리면 그 마저 어려우니 낳으려면 빨리 낳고 아님 말라며 은근 압력을 가 해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마음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당시 부부동반으로 자주 뭉치던 남편모임의 후배 아내가 인근에 아주 용한 철학관이 있는데 한번 가보지 않겠냐며 물었다.

그렇게 두 남편 모르게 읍내 뒷골목을 돌아 슬레트주택의 열린 철문을 들어갔다.


깃대도 없고, 명패도 없는 평범한 집이었는데 다만 방문 앞에 여러 켤래의 신발이 있었다.

아줌씨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한참을 기다리다 보니 끼리끼리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옆방에 있는 백발도사의 신통함을 들을 수 있었다.


바람피운 남편 때문에, 아이들 진학 때문에, 어느 방향으로 이사를 해야 하는지,  주제는 모두 달랐지만 백발도사에 대한 믿음만은 한결같았다.


하지만 난 궁금한 게 많았다.

앞 날을 그렇게 잘 맞추고 부적의 힘으로 별의별 예방을 한다면서 정작 도사님은 방 두 칸에 마당도 없는 허술한 스레지붕에 깔판 막대기만 걸친 푸세식변소가 있는  집에서 사는지.


그렇게 첫 만남의 내  질문은 이렇게 용한 도사님이 왜 이렇게 사는지... 썰들을 들으면 못 할 게 없는 분 이라는데...???... 화를 낼 줄 알았던 도사님은 껄껄 웃으며 원래 중이 제 머리를 못 깍듯 자신도 마찬가지며, 이렇게 사는 것은 자신에게 주어진 최고의 삶일 뿐이라고 했다.


삼 개월이 되는 달 임신을 할 것이며, 사내아이를 낳지만 난산으로 몸에 칼을 댈 수 있다는 도사의 말을 반신반의하며 그 집을 나섰다.


정말 신기하게도 삼 개월 후 둘째를 임신했고, 병원에서 파란색 출산물을 준비하라는 언질을 받고 나서야 난 도사님을 신봉하기 시작했다.


임신중독증인 하지 정맥류로 하반신은 실핏줄이 뱀처럼 튀어나왔고, 전치태반에 태아가 거꾸로 있어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는 도사님의 방문이 닿도록 드나들었다.


수술날짜는 요?  

수술시간은 언제로 할까요?  

이름은 뭐라고 지을까요?

이사 갈 아파트에 들어가서 안될 글자가 있나요?

아파트는 언덕이 나을까요 평지가 나을까요?

무슨 일을 시작할 때마다, 나쁜 일이 생길 때마다 찾아가 부적을 받아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부적을 활용하면 시끄럽던 집안일이 조용해졌으니까.


그리고 한 시간 반이 걸리는 타 지역으로 이사 간 후에도 한. 두 달에 한 번씩은 도사님을 찾아갔다.

하지만 도사님의 집이 재개발로 이사를 가고, 도사님의 전번이 바꿔지면서 발길은 뜸해졌지만  큰애가 대학 갈 때는 어느 과를 진학하고 어느 직업을 잡아야 평탄한 삶을 살지 알려주는 대로 물줄기 흐르듯 결정했다.


그렇게 도사님과의 인연도 20년이 지났고 그 사이 도사님의 수염과 눈썹이 하얀색으로 변할 무렵 도사님은 나이가 들어 모든 일이 힘에 부친다더니 홀연히 사라졌다.

정말 어려운 일이 생겨 주변지인에 주변사람에 물어봐도 간 곳을 알 수 없으니 답답하기만 했다.


백발도사님의 신력(?)을 맛본 후 용하다고 입소문이 난 무속인이나 철학관을 서울부터 전라도까지 찾아 헤맸지만 별 효험(?)을 보지 못했다. 다른 이는 정말 잘 맞는다는데 난 왜 맞지 않지??


심리학전공자답게 분석을 해서 얻은 결론은 돌팔이 의사도 연대가 맞으면 내 병이 낫고, 무속인이나 철학관도 텔레파시가 맞아야지 그렇지 않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게 내 지론이다.


지금도 꽈배기처럼 꼬인 것들을 풀고 싶을 때 내 선택이 옳은지 묻고 싶을 때마다 백발도사님을 찾고 싶지만 그렇지 못 함에 아쉬움은 커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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