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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의 수상한 대화
마지막 만찬
이승을 떠난 기 전
by
블랙홀
Mar 15.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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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명의 여자들이 마지막 만찬을 즐기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나이도. 고향도, 학연도 그렇다고 직장동료도 아니고 친구는 더더욱 아닌 오늘 처음 보는 상대라서 그런지 서로에 대한 관심도 없다.
이층을 오르락거리다 마주쳐도 그림자처럼 스쳐 지나간다.
자살한 이, 병사한 이, 사고로 죽은 이, 억울하게 살해를 당한 이, 노환으로 죽은 이, 태어나지도 못해 보고 엄마 뱃속에서 사라진 아이 등 이승을 떠나게 된 사연도 다르다.
그렇다.
그녀들은 오늘 이승을 하직하고 내일 심판을 받기 위해 이렇게 한 자리에 모
였
다. 앳된 아이부터 지팡이를 든 노인까지 나이도 행색도 구구각색이다.
1층 중앙 홀의 원형식탁에는 산해진미로 식탁이 차려졌고,
달콤한 레드 와인까지 구색을 띤 진수성찬이
차려졌지만
먼저 나서서 먹는 이가 없었다.
입맛이 없는 걸까?
배가 고픈 줄 몰라서일까?
난 긴장감으로 숨이 턱턱 막혀오는 그 공간이 불편해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 듯했다.
갈 때 가더라도 차려준 밥상은 받고 가야 되지 않겠느냐
고
했지만 그 소리는 내 귀에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웅얼거리고 있었다.
음식이 차갑게 식어갈 때, 마지막 만찬이라는 걸 기억했는지 관심을 보이지 않던 여자들이 하나 둘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리곤 며칠을 굶은 사람들처럼 쩝쩝 거리며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이승에서의 삶이 리셋되기 전에 모조리 쏟아내고 싶었던
건
지, 아니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밤이 아쉬워서지 자리를 뜨지 않고 있다.
좋은 일이든 궂은일이든 서운 한 일이든
털어버리고 가자는 누군가의 제의에 모두 동의를 했으니... 사실 나도 말하지 않으면 발목의 족쇄처럼 끌려올 삶을 지겹게만 기억할지 모른다.
허심탄회하게, 심판관에게 불려 나갈 때처럼 솔직하게 말하기로 했다.
이런저런 사연으로 함께 만났지만 살아온 삶은 모두 달랐다. 이승을 떠나게 된 사연도.
산속 바람은 시원하다 못해 서늘하기까지 했다.
둥근 보름달과 쏟아질듯한 별빛만이 흐르는 밤, 주변엔 풀벌레소리만 간간이 들렸다.
누가 밤을 칠흑 같다고 했나! 하늘은 예쁜 진보라빛 세상인 것을.
모
임터라 불리는 건물 위로 보름달이 떠 오르기 시작했다.
아!~ 진짜 보름달은 둥글구나...
바쁘게 살다 보니 별을 보고 달을 보고 살았던 때가 언제인지......
저렇게 아름다운 달을 쳐다볼 여유도
없이 지난 삶이 서러워 눈물이 왈칵 났다.
유난히 가족이 보고 싶다.
지난 삶이 파노라마처럼 어지럽게 지나가면서
두고 온 아이들이
제일 먼저
생각났다.
이렇게 급히 떠나올 줄 알았더라면 더 자주 챙기고 좀 더 보듬어 줄 것을.
생활이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이리 허망하게 떠나올 줄은 정말 몰랐다.
나이는 숫자일 뿐이고 죽음은
나 하곤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무도 쉽게 찾아왔으니.
억울하기도 했다.
그동안 딸아이와 함께 계획한 버킷리스트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막내는 직장에 다닌다는 핑계로 어려서는 외할머니, 커서는 학원으로 그리고 따로 떨어져 살았으니 아이의 얼굴마저 희미하다.
남편처럼 챙기고 보살펴준 둘째는 오히려 애증의 관계가 되어 서로의 아픈 상처를 건드리곤 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스럽다.
여자들은 말 문을 텄는지 안채를 오가며 술과 안주를 가져와 홀짝이기도 했다. 개중에는 적당한 취기 때문인지 훌쩍이는 이도 있었다.
사람들, 아니 죽은 이들도 즐거우면 웃고 슬프면 우는 것은 같은가 보다.
앳된 여자애는 무릎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아직 볼살이 빠지지 않은 얼굴에 보조개가 예쁜 저 아이는 왜 이 자리에 와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한쪽다리를
끌고 지팡이에
의지했던 할머니는 식사도 잘 못하더니 밤바람이 차다며 안으로 들어갔다.
울 엄마의 옛 모습이 생각났다.
10월이라지만 산속은 한기가 날 만큼 추웠고 지나가는 바람에도 닧살이 돋았다
셔츠의 맨 단추를 모조리 잠그고 팔짱을 껴봤지만 소용이 없다. 춥다. 몸도 마음도.
만감이 교차하는 듯 달을 바라보는 이들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새벽 4시가 되기 전에, 동이 트기 전에 여자들은 각자 길을 떠나야 한다.
그리고 심판관 앞에 가서 그동안의 삶을 이실직고한 후 중음관이라 불리는 곳에서 외부와 단절된 채지내야 한다.
7일간 심판관의 명령을 기다려야 한다는 건은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느낌으로 알고 있었다.
그곳은 한 평밖에 안 되는 작은 방으로 출입문 외엔 사방이 막혀 있으며
귀는 있되 들리지 않고, 입은 있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다는
곳이다.
심판이 내려지면
목
적지는 몰라도 어쨌든 저승길을 떠나야
하
는 같은 처지를 지닌 공동체인 셈이다.
나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그때 맞은편에 앉아있는 여자가 얘기를 꺼냈다.
말문을 튼 여자는 깊은 한 숨을 내쉬 곤, 자신의 얘기해 담담하게 풀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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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하는 여자(개정 2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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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25년. 계약직 5년. 현재는 자영업을 합니다. 힘들고 화가나면 글을 씁니다. 좋아도 쓴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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