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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바람(1)

by 블랙홀

울 외할머니는 농ㆍ어촌을 아우르고 있는 작은 마을에서 알아주는 당골네였다.


외가댁에 갈 때마다 팥시루떡과 조청을 해 주시곤 했는데 시누이들이 친정에 올 때는 애먼 외숙모만 바빴었다.

하얀 치마저고리와 동백기름을 듬뿍 바른 쪽진 할머니 품 안에 안기면 땀냄새와 기름냄새가 어우러진 푸근함이 지금도 코 끝을 맴돈다.


남아선호사상이 뿌리 깊던 시절.

딸 만 줄줄이 여섯을 낳은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 눈치를 보느라 산후조리는커녕 산후부기가 빠지지 않은 몸으로 일을 했다고 한다.


다섯째 딸인 엄마는 다섯 번째 계집아이란 뜻으로 오희라는 이름을 받았다고 했다.

아래로 막내이모를 더 낳고서야 바라던 아들을 낳았다니 외삼촌은 6녀 1남의 막내인 셈이다.


학교문턱에도 못 간 다섯 언니와는 달리 막내이모는 남동생을 봤다는 이유로 딸 중 유일하게 국민학교를 나왔다고 했다.


그렇게 태어난 외삼촌은 바람 불면 날아갈까 애지중지하며 먼 길 학교를 보내지 않고 동네 마을 서당에 보냈지만, 똑소리 나는 누나들과는 다르게 말을 더듬고 행동이 굼떠 외할아버지는 여전히 불만스러웠나 보다.


긴 곰방대로 놋대야를 쨍쨍 두드리면 딸들은 밭으로 도망가서 종일 땡볕에 시달려도 아버지가 무서워 해가 져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니.

크고 작은 굿거리를 하고 저녁 때나 돌아오는 외할머니의 귀가시간에 맞춰 돌아오곤 했단다.


딸들 덕분에 밭농사는 잘 돼 소농이지만 중농처럼 먹거리가 풍부한 외가댁과는 달리, 꽤 많은 논이 있었지만 친가는 보릿고개를 넘기지 못하는 곤궁한 생활이었다.


2남 5녀가 있었지만 할아버지는 밭이 있으면 여자들이 고생한다고 논농사만 지었고, 할머니는 딸ㆍ아들 구별 없이 모두 고등학교는 보내야 한다는 신개념으로 농사일은 오롯이 할아버지 몫이라 돌아가실 때까지 손톱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일만 하셨다.


나 어릴 적 채소며 고구마는 외가댁과 인근에 사는 이모 댁에서 보내주었던 기억이 난다.

암튼.

외할머니가 굿거리에서 생돼지를 먹은 게 탈이 나서 황달로 돌아가신 후 에도 난 무당이란 걸 몰랐다.

그저 눈과 피부가 누렇게 변하는 황달이란 병으로 가신 줄만 알았다.


적어도 엄마와 이모들 간에 오가는 수상한 그 대화를 엿들을 때까지는ㆍㆍㆍ아니, 엿들었어도 엄마가 말해줄 때까지 물어보는 건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걸까? 그저 한쪽 귀로 흘려듣곤 했다.


외조부모가 돌아가신 후 외숙모는 외할머니의 우산에서 벗어나려고 외삼촌을 졸라 논ㆍ밭을 팔아 낯선 도시로 이사를 간다고 했다. 그리고 기독교로 개종한다고 할 때도 그 뜻이 넘 완강해 시누이들은 말릴 수 없었다고 한다.


잘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장사를 한다더니 얼마가지 않아 물 말아먹고 외삼촌 부부는 일용직으로 막일을 뛴다고 했다.


그리고 사 남매 중 가장 똘똘해 고교졸업과 동시에 기사자격증을 따 대기업에 취직했다는 외사촌 동생이 간경화에 걸려 투병을 한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간이 석회처럼 딱딱해져 힘들다고 했다. 얼마 후 외사촌 동생은 22살을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다.


그 후 영화에서나 봄직한 일이 실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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