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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랙홀 Apr 25. 2022

아버지

아버지를 모시고

내려오는 산기슭으로

노을이 물들어온다.


살아생전

자식 고생시키지 않으려


가을에 떠나겠다던 

말씀처럼 


들국화  흐드러지게 핀 날

그렇게 가셨다.


산자락을 돌고 돌아 내려오는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난다.


아버지가

보고 싶어

눈물이 난다.


떨어지는 가을 낙엽이

사람 따라 날아가니

더욱 눈물 난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한겨울에 가면,

엄마 때처럼 자식들이 고생한다며 

당신은 볕 좋은 가을에 가시겠다고 누누이 말씀하셨다.


5년을 요양병원에 누워계시던  엄마가 가신 후, 

덩그머니 집에서 혼자 지내셨다.

전기세 나온다고 침침하게 지내셨고

가스비 나온다고  겨울에는 이불속에서 사셨다.

입맛 없다고 맨밥을 죽으로 만들어 드시곤 했다.


암 말기가 되도록 자식들은 몰랐다.

뼈까지 전이되어 이겨낼 수 없는 아픔으로 

응급실에 실려가신 날에야 알게 되었다.

자식들이 뒷바라지로 힘들까 봐 진통제로 버티신 것이다.


중환자실로 가신 삼일 째 되던 날

계기판이 0으로 내려갈  

여윈 손을 잡고

아버지의 귀에 속삭였다.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어둡지 않고, 춥지 않고, 배곯지 마시고

이태 전 가신 엄마랑 편히 지내세요.


길게 자란 손톱과 발톱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깎아드린지

삼일째 되던 날

그렇게 가셨다.


아버지를 모시고 산자락을 내려오던 날,

차창 밖의 시월 하늘이 너무도 아름답고

길 섶의 들국화가 너무도 흐드러지게 피어서

자꾸만

자꾸만

눈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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