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현지 교수님이 내게 남긴 단어 'lebendig'
독일에서 2년 동안 석사과정을 다니면서
수 십 번의 레슨을 받았다.
교수님이 하신 이야기도 분명 많다.
독일어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녹음해 둔 레슨 내용을 여러 번 듣기도 했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딱히 없지만,
교수님이 나에게 남긴 단어가 있다.
바로 'lebendig'라는 단어이다.
살다 라는 뜻의 leben 동사에서 온 형용사 형태로
lebendig는 살아있는, 생동하는, 활기 있는, 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lebendig라는 말은
졸업할 무렵, 교수님께서 내게 몇 번 언급하신 단어이다.
그때의 난 이미 lebendig의 사전적인 의미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난 교수님이 왜 lebendig라는 단어를 언급하셨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
그때의 나를 돌아볼 여유가 생기고 나서야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의 나는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할지 고민 중인 졸업을 앞둔 학생이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lebendig 한 연주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삶이라는 것이 (das Leben) 늘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불확실함 투성이 이지만,
타국에서 외국인으로서 삶은 비자라는 또 하나의 불확실함을 끌어안고 가야 하기에
더욱 불안한 마음이 깊이 깔려 있었던 것 같다.
그 불안한 마음은 마치 낭떠러지 앞에 서 있는 마음 같은 것이었다.
한 발자국만 떼면 떨어질 것 같고,
뒤로 물러서서 돌아가기엔 너무 많이 와버린 그런 낭떠러지.
음대를 졸업하고 악기를 잠시 내려놓는 동안
독일에서 여러 가지 경험들을 하면서 느낀 것은
삶이라는 것이 (das Leben) 정해진 하나의 모습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피아노가 인생의 전부인 것 같지만,
사실 나의 인생 안에는 피아노 말고도 무수한 많은 것들이 있다는 것.
원래 진로는 늘 생각해도 답이 없는 것이고,
내가 어디로 가게 될지,
내가 가게 될 길은 어떤 길일 지 다 알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 어떤 길로 가게 돼도 괜찮다.
그 일이 나의 자존감과 존엄성을 짓밟는 일만 아니라면 말이다.
그때는 그걸 몰랐던 것 같다.
피아노 놓으면 인생이 망할 수도 있다는 불안이 마음속 깊은 곳에 있었던 것 같다.
삶은 정해진 모습 하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걸 깨달은 지금은
여전히 불안한 삶임에도 불구하고
lebendig 한 삶을 살고 있다.
이제 lebendig 한 연주를 할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