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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비어바우어 프락티쿰

프락티쿰 시작!

면접을 보고 정확히 2주 뒤 회사로 부터 프락티쿰을 2주간 해보자는 메일이 왔다.

프락티쿰(Praktikum)은 영어로 internship, 즉, 인턴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출근시간은 아침 7시 30분까지, 퇴근은 오후 4시 15분이었다. 출근이 빠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회사와 가까운 뮌스터에 2주 동안 지낼 곳을 찾아야 했다. 이곳저곳 알아본 결과 에어비엔비에서 숙소를  구하기로 결정했고 뮌스터 도심에 있는 Aasee라는 호수 근처의 집에서 머물게 되었다. 


첫날, 회사까지 거리가 좀 있어서 새벽부터 분주히 움직였다.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또 버스를 타야 했다. 





회사에 도착한 후 나는 일단 대기해야 했다. 매주 월요일마다 있는 직원회의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에 1시간 가까이 바닥을 쓸었다. 마침내 회의가 끝나고 셰프는 나에게 광택을 내는 임무를 주었다.  


사포질을 하고 광택제를 바르고 기계로 광을 내는 작업이었다(자동차 광택 내는 것과 비슷하다). 몸이 힘든 작업이었지만 작업을 다 끝내고 피아노가 새것처럼 빛나는 걸 보면 또 뿌듯했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거의 모든 단어들이 생소했고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다는 점이다. 나는 수첩을 주머니에 넣어 다니면서 눈치껏 필기하고 퇴근 후엔 집에서 모르겠는 내용이나 단어들을 검색했다. 


프락티쿰기간의 끄적거림


그렇게 첫째 날과 둘째 날을 광택작업과 사일런트 피아노 건반을 깨끗하게 닦는 작업을 하고 직원들과 이야기도 해보면서 천천히 일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이후로는 여러 부분을 돌아가면서 경험을 했다. 수리와 복원위주의 회사였기 때문에 이와 관련된 작업(건반, 액션, 해머의 재생작업과 조정 등)이 대부분이었다. 2주 동안 전부 배우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마 몇 부분을 골라 시켜보면서 테스트를 한 것 같다. 


일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은 '일은 재밌어?'와 '궁금한 거 있어?'이 두 가지였다. 후자는 아마 시킨 일만 너무 열심히 하고 질문은 많이 안 해서 들은 질문이지 않을까 추측한다. 대부분의 독일인이나 유럽사람들은 질문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고 그게 당연시되는 문화다. 그런데 나는 묵묵히 일만 하고 있었으니 조금 이상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실제로 한 직원은 나를 조용히 불러서 "왜 모르는데 안 물어봐? 그냥 물어봐! 물론 질문이 너무 많으면 내가 가끔 귀찮을 수도 있지만 네가 나중에 못 알아 드는 것보다 훨씬 나아"와 같이 말한 적도 있다. 그날 이후로 바로바로 물어보려고 많이 노력했지만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그렇게 프락티쿰 마지막날이 되었다. 그때가 부활절 즈음이라 이때까지 나를 잘 도와준 직원들에 대한 감사의 선물로 부활절 초콜릿을 준비해 갔다. 혹시 마지막 소감을 말하라고 시킬까 봐 며칠 전부터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하고 정리를 했었다. 오전근무를 마치고 셰프가 갑자기 나를 회의실로 불렀고 인터뷰가 시작됐다. 잔뜩 긴장을 하고 있었는데 먼저 질문이 들어왔다. '일은 어땠어?' 포괄적인 질문이었다. 다행히 전날밤 미리 할 말을 준비했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을 빠짐없이 할 수 있었다. 그러고 셰프가 말했다. 


"나는 네가 일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너를 뽑고 싶어. 너는 여기서 일 하고 싶어?"


나는 당연히 '예스'였고 그 이후로는 가벼운 이야기가 오고 가고 일사천리로 계약이 진행되었다. 

계약서 마지막에 내가 사인을 한 후 악수를 했고 갑자기 자기 이름(First name)을 소개했다. 독일어로 Duzen, 즉 더 이상 성(Last name)으로 부르는 사이가 아닌 이름(First name)으로 부르는 사이가 가능해진 것이다. 회사의 한 식구가 된 것이다. 정말 말할 수 없는 쾌감을 느꼈다. 이제 아우스빌둥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우스빌둥 시작은 8월부터였기 때문에 그때까지 약 4개월 정도 여유가 있었다. 그렇게 다들 4개월 후에 볼 것을 기약하면서 퇴근길에 올랐다.




뮌스터 중앙역에 도착했을 때 여자친구가 꽃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프락티쿰이 끝난 기념으로 꽃을 사 온 것이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계약서를 내밀었고 이게 뭐냐면서 계약서를 읽은 여자친구는 활짝 웃으며 '뭐야!'를 난발하며 매우 기뻐했다. 정말 고생해서 스스로 이뤄낸 결과이기에 더욱 값지고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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