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옥 Dec 31. 2021

5. 세 번째 삶의 시작

 엄마를 만나기 전날 밤, 마트에서 산 큰 빨간색 타포린 가방 세 개에 간병 물품들을 차곡차곡 채워 넣었다. 뇌질환 커뮤니티에서 찾은 간병 물품 체크리스트 대여섯 개를 보며 엄마에게 필요할 만한 것들만 추렸는데도 생각보다 짐이 많아졌다. 짐을 다 싸고도 뭔가 석연치 않아 몇 번이고 더 체크를 하고서야 짐 정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잠을 청하려 누웠는데 내일 엄마를 만난다는 게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다. 외롭게 혼자 모든 걸 감내했을 엄마를 몇 분이라도 더 빨리 만나고 싶었다.


 다음 날, 오후 2시쯤 외과계 중환자실에 도착했다. 입구에 있는 벨을 누르고 기다리니 간호사님이 나오셨다. 엄마의 보호자라고 말씀드리니 잠시 보호자 대기실에서 기다리라고 하셨다. 많은 짐을 들고 낑낑대며 대기실로 갔다. 대기실은 환자 보호자로 보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소리 내어 서럽게 우는 보호자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내 눈까지 괜히 붉어지는 것 같았다. 2월의 내 모습과 그 보호자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때 간호사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지혜 환자 보호자님, 중환자실 입구로 와주세요.”


 이때부터였다. 내 이름은 김지혜 환자 보호자가 되었다. 중환자실 앞으로 갔더니 간호사님이 저 멀리 침대 하나를 가리키시며 엄마가 이미 일반 병실로 이동하고 있으니 얼른 따라가라고 하셨다. 급한 대로 짐은 대기실에 두고 그 침대를 향해 달려갔다. 엄마인지 확인하고 싶었는데 엄마는 흰 시트로 얼굴부터 발 끝까지 가려져있었다. 이송 직원분께 여쭤보니 김지혜 환자가 맞다고 했다. 나도 침대 사이드바를 어설프게 잡고 병실로 함께 이동했다. 당장이라도 시트를 걷어 엄마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시트를 덮어두신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 같아서 참았다.






 병실은 병동 입구와 간호사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 병실은 간호사가 24시간 상주하는 집중치료실이었다. 이송 직원분이 침대를 고정하고 가시고 난 후 조심스럽게 시트를 걷어보았다. 분명 우리 엄마는 맞는데 내가 알던 엄마의 모습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낯선 모습을 하고 있는 엄마였다.


 머리카락 한 올 없는 엄마의 머리에는 흰색 망사 모자가 씌워져 있었다. 눈은 뜨고 있었지만 마치 갓 세상에 태어난 아기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리거나 깜빡일 뿐 내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콧등에는 코로 식사를 하기 위한 줄을 고정하는 테이프가 붙여져 있었고, 왼쪽 콧구멍으로부터 아래로 길게 늘어뜨려져 있는 콧줄은 충분히 엄마를 중환자로 보이게 했다. 목 한가운데에는 목관이 있었고 목관과 연결된 줄은 엄마의 목을 죄고 있었다. 왼쪽 쇄골 근처에는 응급으로 혈액투석을 하기 위해 필요했던 관이 엄마의 피부를 뚫고 나와 있었다. 손과 팔은 퉁퉁 부어 올라 마치 금방이라도 뻥 터져버릴 것 같았고 발톱은 그간 중환자실에서 엄마가 있었던 긴 시간을 증명하듯 길게 자라 있었다.


 조심스럽게 엄마의 손을 잡아보았다. 반사적으로 엄마가 내 손을 잡아주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은 잡기가 어려웠나 보다. 그간의 힘든 시간을 버텨낸 엄마에게 나직이 속삭였다.

“엄마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어요. 정말 고마워요.”


 초점 없이 눈을 깜빡이고 있는 엄마를 보고 있으니 과거의 엄마 모습들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타지에서 대학교를 다니던 20대 초반이었다. 여름방학 때 부모님 집에 와서 엄마 밥을 먹고 여유로운 하루를 보낸 후 엄마와 나란히 누워 있었다. 엄마가 과도하게 일을 많이 하는 모습에 걱정도 되고, 엄마를 열심히 살게 하는 원동력도 궁금해서 물어본 적이 있다.


“엄마는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아? 조금씩 쉬면서 일 하시면 안 돼요?”


엄마가 좀 쉬면서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무심코 물었던 질문에 엄마는 진심을 다해서 대답했다.


“젊었을 때는 이것보다 더 열심히 살았는데 이제 그 정도 체력은 안 되네. 엄마는 하루를 알차게 보내고 이렇게 밤에 누우면 기분이 좋아. 하루를 살아도 똑바로 열심히 살아야지. 그리고 엄마는 신장 이식 수술을 받은 이후로는 제2의 삶을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있어. 엄마한테 이렇게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기회를 다시 줬으니 잘 활용해야지. 오늘 최선을 다해서 살아서 엄마는 내일 죽어도 후회 없다.”


 그 당시 열심히 사는 것과 거리가 멀었던 나는 엄마의 대답을 들은 후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렸다. 우리가 어둠 속에서 이 이야기를 나눈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당신의 삶 자체로 나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었던 엄마는 아기가 되어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나에게 이 세상을 소개해 준 엄마에게 내가 세상을 다시 소개해 줄 차례가 되었다. 자식이 없는 나는 아기를 키워본 적은 없지만 그날부터 나는 엄마를 내 아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기인 엄마를 보호해야 했던 나는 슬퍼할 겨를도 없이 엄마의 세 번째 삶에 동승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4. 엄마의 보호자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