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있던 병실엔 3명의 다른 환자분들이 있었다. 그 환자분들은 간병인이 케어하고 있었고, 나는 유일한 가족 간병을 하는 보호자였다. 난생처음 해보는 간병일에 나는 서투른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기저귀를 가는 방법, 가래 뽑는 방법 등 간병과 관련한 동영상을 찾아 여러 번 보았지만 손에 익지 않으니 어려웠다.
옆 자리 환자분의 간병사님이 말씀하셨다.
“에휴, 그렇게 기본적인 것도 못하는데 어떻게 엄마 간병을 하려고 그래요. 엄마가 고생하겠다.”
대각선 자리 간병사님은 한 술 더 뜨셨다.
“아가씨 그러지 말고 내가 명함 하나 줄게. 내가 팀장이라 좋은 간병인 구할 수 있어. 여기 와서 명함 받아가. 간병일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보호자들이 간병하면 환자가 고생한다니까.”
싫은 내색 하나 못하는 나는 힘들면 도움을 요청하겠다는 말과 함께 그 간병사님이 주는 명함을 받아 들어 서랍 안 구석에 넣어 두었다. 허공을 응시하며 눈을 깜빡이는 엄마 모습을 보니 내가 엄마를 힘들게 하고 있는 건가 싶어 미안해짐과 동시에 오기와 비슷한 감정이 내 속에서 끓어오르는 듯했다.
기관절개술을 하고 목관(기관절개관)을 가진 환자들은 스스로 가래를 뱉지 못해 가래를 타인이 뽑아주어야 한다. 가래를 제때 뽑아주지 않으면 숨을 쉬기도 어렵고, 폐렴이 올 위험이 있기 때문에 가래를 잘 뽑아주는 것이 중요하다.
가래가 심하게 많은 환자의 경우 하루 종일 가래가 생기기도 하는데 엄마도 전체적인 컨디션이 좋지 않아 가래가 많은 편이었다. 엄마 목관에서는 가래가 끓어 넘치고 있는데, 간호사님들은 다른 바쁜 일들로 바로바로 가래를 못 뽑아주셨다. 나는 간호사님이 오시길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고 있었고, 우리 방 간병사님들은 엄마가 가래 때문에 힘들어하는 소리를 모두 들은 것이다. 그러니 그분들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도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석션은 의료 행위이긴 하나 모든 환자들의 가래를 간호사들이 뽑을 수 없기에 자연스레 간병인이나 보호자들의 몫인 것 같았다.
이튿날부터 엄마의 목관에서 가래가 끓을 때마다 간호사님 그리고 간병사님들의 도움을 받아 석션하는 연습을 했다. 엄마 목에 카테터를 내가 직접 넣어서 압력을 넣고 가래를 빼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연습만이 살길이라던가. 며칠 후 나는 다행히 석션을 할 수 있게 되었고, 더 이상 철저한 을이 되어 간호사님에게 석션을 부탁하는 사람이 될 필요가 없었다.
엄마는 목관이 있기 때문에 목소리도 못 내고 의사표현도 못했지만 통증은 충분히 표현했다. 마비가 온 환측 다리까지 움직이시며 몸부림치는 엄마의 모습에서 그 고통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었다. 석션을 할 때 시뻘겋게 변하는 엄마의 얼굴색을 보면 마치 내가 죄를 짓는 느낌이었다. 석션을 다 하고 엄마가 무의식에 흘린 눈물을 닦아드릴 때 그 죄책감은 절정에 다다랐다. 엄마가 불쌍했다. 왜 착하게 살아온 우리 엄마가 저런 고통을 느껴야 하는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억울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려다가도 엄마가 혹시나 볼까봐 다시 눈물을 삼켰다. 석션 스킬은 익혔지만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는 엄마를 보며 내 감정을 컨트롤하는 것은 날이 갈수록 더 어려워졌다.
엄마 목에 뚫린 저 구멍을 언젠가는 꼭 막고,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뇌질환 커뮤니티에는 기관 절개를 하고 나면 목관을 빼는 것이 쉽지 않다는 내용의 글들이 많이 보였다. 개중에는 목관을 뺀 사람들의 후기들이 있었는데, 나도 언젠간 저런 글을 쓰고 싶었다. 우리 엄마 목을 죄고 있는 목관 줄을 언젠간 풀어 주고 싶었다.
간병하는 날이 하루하루 흘러갈수록 엄마의 목관 제거에 대한 나의 갈망은 커져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