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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옥 Jan 08. 2022

7. 콧줄 식사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 중간쯤 어딘가에 있는 엄마는 밥 먹는 방법조차도 나와 달랐다. 엄마는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영양을 콧줄을 통해 공급받았다. 엄마가 쓰러지시기 전까지는 환자 영양음료를 식사로 섭취 가능한지 몰랐다. 그저 환자들이 입맛이 없을 때 간식으로 마시거나 한 끼 정도 대체할 수 있는 음료로만 알고 있었는데 나중에 어떤 간병사님이 말하길 이 음료로만 10년 이상 식사를 하신 분도 있다고 했다.



 엄마는 신장이 제 기능을 못하기에 수분을 섭취하면 대부분이 몸에 그대로 쌓인다. 수분이 과도하게 많이 쌓이면 심장, 폐 등에도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수분을 제한해야 한다. 투석 환자용 영양 음료는 영양이 고농축 된 형태로 나와서 환자가 수분을 적게 섭취하면서 충분히 영양을 공급받을 수 있었다. 엄마는 하루에 200ml 캔을 4번 드셨다. 한 캔에 총 400kcal로 엄마는 하루에 1600kcal를 섭취하며 연명했다.


투석 신장질환자를 위한 균형영양식


<엄마의 식사 시간>

오전 7시

오전 11시

오후 3시

오후 8시



 따뜻하게 음료를 데워 드려야 해서 플라스틱 대야에 뜨거운 물을 받아와 캔을 담갔다. 몇 분 후 캔이 따뜻해지면 피딩통에 음료를 붓고, 피딩줄을 엄마의 콧줄과 연결했다. 너무 빠른 속도로 식사가 들어가면 안 되기 때문에 천천히 들어갈 수 있도록 속도를 조절했다.




 피딩통으로부터 엄마의 식사가 똑똑 한 방울씩 떨어지는 것을 보고 있으니 문득 어렸을 때의 기억이 났다. 주말 아침에 내가 늦잠을 자고 있으면 엄마는 그렇게 밥을 먹으라고 깨우셨다. 엄마도 분명 늦잠을 자고 싶을 수도 있었을 텐데 자식 아침밥 챙기는 게 무엇이라고 그렇게 열심이셨을까. 그땐 엄마 사랑에 배가 불렀었나 보다. 엄마 밥을 이렇게 그리워할 줄 알았다면 좀 더 감사하게 여겼을 텐데 말이다.







 

 병실엔 엄마와 나 말고도 다른 6명의 환자와 간병인들이 있기에 보통 소리가 많이 나는 음식은 먹지 않았다. 그날은 베이글 칩이 먹고 싶어서 먹을까 말까를 몇 번이나 고민하다 다른 분들에게도 나누어 드리면서 먹기로 결심했다. 심신이 지친 내 앞에 놓인 베이글 칩 한 개를 입안에 집어넣었다. 유난히 바삭한 칩이라 요란한 소리를 안 내고 먹을 수가 없었다. 입안에 있는 칩이 식도를 넘어가기도 전에 난 또 다른 베이글 칩을 이미 손에 쥐고 있었다.



 그때였다. 내가 들고 있었던 베이글 칩을 엄마가 순간적으로 왼쪽 손으로 낚아챘고 입 안으로 넣으려고 했다. 엄마는 입으로 음식을 먹으면 안 되기에 얼른 내가 다시 뺏었다. 의식이 명료하지 않은 엄마는 가끔 눈을 깜빡이며 나를 쳐다보긴 했지만 그렇게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행동한 것은 처음이었다.




 엄마의 그 순간적인 행동이 시사하는 바를 생각해보았다.

1. 엄마는 의식이 명료하진 않으나 내 행동을 관찰하고 있다.
2. 엄마는 비록 콧줄로 식사하고 있지만 음식을 입으로 먹는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3. 내가 먹고 있는 그 칩을 엄마도 입안에 넣고 싶었다.




 설렜다. 뇌를 다치신 분들 중에는 입으로 음식을 먹는 행위조차도 잊어버리는 분들이 있다고 들었다. 엄마는 적어도 그건 잊지 않았던 것이다. 보호자 침대에 누워 엄마랑 같이 치킨 먹는 상상을 했다. 다음 날 회진 때 주치의 선생님께 그날 있었던 일을 말씀드릴 생각에 신이 나있었다.



 다음 날, 전날 있었던 엄마의 그 순간적인 행동에 대해 들뜬 목소리로 선생님께 설명했다. 그러고 나서 조금은 조심스럽게 우리 엄마가 입으로 식사를 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여쭈어보았다.

 

 


 주치의 선생님은 내가 생각한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답을 하셨다. 엄마는 연하(음식을 삼킴)와 관련된 뇌의 일부분이 다쳤기 때문에 입으로 식사를 못하실 수도 있다고 하셨다. 믿을 수도 없고, 믿고 싶지도 않은 말이었다. 연하 재활은 시작도 못해봤는데 저런 소견을 들으니 맥이 다 빠졌다. 무슨 답을 드려야 할지 몰라서 그냥 ‘알겠습니다.’라고만 했다.









 입으로 음식을 먹는 일이 이렇게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인지 몰랐다. 동시에 이런 당연한 행위에 대해 내가 간절함을 느끼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엄마의 예쁜 코를 가리고 있는 콧줄 스티커를 떼어버리고 싶었다.  콧줄 때문에 세수도 제대로 못하는 엄마가 불쌍했다.


 


 긴 하루를 살아내고 좁디좁은 보호자 침대에 내 몸을 누이면 이 모든 상황들이 꿈처럼 느껴질 때도 많았다. 아니, 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미지 출처 : 대상welllife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에이치앤메디 베스트 케어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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