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요양원에서의 추석은

by 초보 글쟁이

요양원의 추석은 바깥세상(?)처럼 음식장만이며,

고향방문 등으로 화기애애하지 않다.

평소와 별로 다르지 않다.

그나마 다른 것이 있다면 면회가 많아지고,

휴일이라 프로그램등이 없어서

면회가 없는 어르신들은 생활실에서 조용하게 보낼 뿐이다.

그리고 면회를 오는 사람과 오지 않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시설에서 연휴 전에 보호자들을 초청해

전을 부치고 나눠 먹으며

잠깐이라도 명절 기분을 냈지만

그날 몇몇 어르신들이 탈이 났다.

위로 아래로 난리도 아니었다.

평소 드시던 음식이 아니니 속에서 놀랬나 보다.


면회가 많아지면 항상 긴장해야 한다.

오랜만에 만나서, 명절이라서,

좋아하시는 음식이라서, 드시고 싶다고 하셔서

보호자 욕심에 어르신들께 음식을 드리지만

꼭 탈이 난다.


우리 층에 어르신이라고 부르기도 미안한 젊은(?) 분이

계시는데, 몇 날 며칠을 보호자를 졸라

드디어 치킨을 먹을 수 있게 된 날

보호자를 기다리는 건지 치킨을 기다리는 건지

누가 봐도 알듯한 표정으로 면회를 가시던 분

한 시간여 만의 면회를 끝내고 너무나 행복한 모습으로

본인 침대에 올라가셨다.

그리고 10분쯤 넘었을까? 울리는 호출벨

가보니 침대 가득한 구토의 흔적.

참 안쓰러웠던 기억이 있다.


이번 추석 연휴 나의 근무는

연휴 7일 동안 휴무가 딱 하루만이다.

그것도 추석당일 나이트 휴무,

아침 9시에 퇴근해서 휴무인 것이다.

그리고 계속 근무....

덕분에(?) 나도 어르신들과 요양원에서 추석을 보내게 되었다.

추석 전날 나이트 근무를 위해 출근했을 때

이전 근무 교대자와의 첫 대화는 "별일 없었죠?"였다.

밤 근무는 두 명이 하는데 40여 명의 어르신을 살펴야 한다.

그런데 누군가가 열이 난다거나 배회를 한다거나

주무시지 않는다면 그날 밤은 그야말로 헬(Hell)인 것이다.

그런데 유독 희한하게 면회를 하신 어르신들의 증상이

밤이 되면 심해진다는 것이다.

연휴 때는 면회가 많기 때문에 긴장이 된다.


그래서 이전 근무자는 "조용한 밤 보내세요"라며 퇴근을 한다.

정말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그런데 그날은 이상하리만치 너무 조용했다.

밤이 깊어지고 급기야 무료해지기 시작할 때,

"오늘 밤은 너무 조용하네요"

"그런 말 하면 안 돼! 여기서도 응급실처럼 금기어가 있단 말이야!!"

"에이 농담도...."

"진짜야 너무 조용하잖아? 그러면 12시가 지나고 새벽이 되면 방에서 조용하게, 마치...."

"마치....?"

"좀비처럼....."

"좀비처럼...?"

"어르신들이 한분... 두 분.. 씩 나와.."

"아악~~~~!!! 그건 안 돼요!!"

"그렇지? 그러면 그땐 우리 휴식시간은 없는 거야"

"그런 일은 없어야죠. 그런데 설마 보름달의 정기를 받아 마흔 명 다 일어나시는 건 아니겠죠?"

웃자고 한말이었다.

그런데 그 방정맞은 소리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평소 얌전히 잘 주무시던 어르신이 주무시지 않고 밖으로 자꾸 나오셨다.

그러면서 알 수 없는 말을 하셨다. '끄러 가야 된다"라고

뭘 끄러 가는 되는 건지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고 배회하기 시작했다.

우린 '혹시 낮에 면회하셨나?'싶었다.

'역시' 낮에 딸과 면회를 하셨다.


그 어르신을 선두로 한분, 두 분, 어르신들이 안 주무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리를 지르고, 기저귀를 뜯어서 바닥에 던져버리고,

밖으로 자꾸 나오시고, 다른 방에 다니면서 주무시는

어르신들 깨우고,

걷지도 못하는 어르신이 화장실 가야 된다고 침대밖으로 나오시려고 하고,

평소에 고운 말만 하시던 어르신이 욕설로 고함을 질렀다.

말이 씨가 되어버렸다.

순식간에 조용하던 밤이 좀비 떼가 출몰한 난장판이 된 것 같다.


사실 명절에 몇몇 어르신들은 외박을 하실 줄 알았다.

연휴도 기니까 인지도 있고 심하지 않은 어르신들은

하루쯤 가족과 같이 지낼 줄 알았다.

그런데 면회와 외출만 있는 것을 보고 가족들 참 너무하네 싶었다.


그런데 같이 일하는 선생님이 말했다.

"나도 우리 엄마 하루쯤 집에 모셔서 같이 있고 싶었어

그런데 안 가신다고 할까 봐 너랑 같이 산다고 할까 봐 못 모셨어

같이 못 사는데 그 모습 보면 가슴 아플 것 같아서 그랬어"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면회 마치고 들어오는 어르신이 "우리 아들 집에 가야 된다"라고 하시거나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면 보는 우리도 마음 아픈데 가족들은 오죽하겠나 싶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면회 끝나면 재빨리 어르신을 모시고 오는 거였나?




'토끼님, 토끼님, 달에서 방아 찧고 있는 토끼님,

우리 어르신들 좀 재워주시면 안 되나요?

내일 아침까지 푹~ 주무시게 해 주시고

오늘 밤 가족들과 행복하게 지내는 꿈 꾸게 해 주세요'


아직 온전히 채워지지 않은 달에게

소원 좀 빌어보려 했더니

알고서 벌써 숨었나?

달도 보이지 않는 올해 추석 전날밤이었다.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02화선생님이라는 호칭이 낯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