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00 어르신은 입소 후 간식에 집착을 보이셨고,
우리와 대화도 전혀 하지 않으셨으며, 일반적인 생활에도
소통이전혀 없었다. 뭔가 해달라고 하는 게 있을 법도 한데
그런 게 전혀 없으셨다.
단지 침대 위에서 성경책만 읽으셨다.
간식에 대한 집착도 날이 갈수록 잦아들었고,
그와 동시에 우리와의 유일한 대화마저도 하지 않게 되셨다.
본인이 철저하게 울타리를 치셨고, 본인 스스로 격리가 되듯
하셨지만......
그렇게 되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우리들이 아니었다.
마흔 명의 어르신과 같이 생활하고,
요양보호사 일을 10여 년 넘게 한 선생님들도 계시는데,
그런 어르신이 어디 한두 분이었겠는가?
어느 날부터 1번 방에선 선생님들의 혼자만의 연극, 독백극이 시작되었다.
"어르신 식사하세요"
"......"
"그렇죠? 맛있겠죠?"
"...?.."
"네네! 알겠어요 안 뺏어 먹을 테니 어르신 혼자 맛있게 드세요"
"??"
"어르신 날씨가 참 좋죠?"
"......."
"나가고 싶으시다고요? 안 돼요 지금 추워서 안되니까 나중에 나가요"
"???"
1호 방 다른 어르신과 대화하다가
"그건 어르신이 잘못한 거예요 이 00 어르신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
"봐요 어르신 이 00 어르신도 어르신이 잘못한 거라고 말씀하시잖아요"
"????????"
뜬끔없이 본인이 등판하니 어리둥절한 어르신이었다.
프로그램 참여할 때도
"이 00 어르신이 하고 싶으시데요"
"?????????"
결국은 하지 않으셨지만 모두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그것이 더 큰 외면으로 돌아왔지만 우리는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근무 때마다 그렇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이트 근무 때였다.
라운딩을 도는데 1호 방을 갔을 때였다. 이 00 어르신이
침대 위에 서계셨다.
허리도 몹시 굽어있는데 침대 위에 서 계신 모습이 너무나
위태해 보여 나도 모르게 "어르신"이라 소리를 지르며
달려갔다. 알고 보니 창문 블라인드를 내리기 위해
서 계신 거였다. 너무 놀라서
"어르신 위험하게 이러시면 어떡해요?"라는 말이 조용하게 나오지 않았다.
"미안해 밖이 너무 밝아서...."
아까보다 더 놀랬다. 항상 몇 마디 하지 않으시고,
그나마 하시는 말씀이 좋은 말은 아니었는데... 미안해라니?
정말 진짜 깜짝 놀랐다.
"괜찮아요 다음부턴 벨을 누르세요 그러면 저희가
해드릴게요"
같이 일하는 선생님께 말씀드리니 '설마 그럴 리가'라고
하셨다.
그날 놀랄 일은 그것뿐이 아니었다.
우리는 밤에 자주 라운딩을 하는데 간혹 주무시지 않는
어르신들이 잠도 자지 않는 우리들을 안타까워하시기도
하셨다.
그날 라운딩을 도는 나에게 이 00 어르신은
"꼬맹이가 잠도 못 자고 고생이다"라고 하셨다.
아까보다 더 놀랜건 꼬맹이라니....
내 비록 키가 작긴 하지만 내 나이 50이 넘었는데..
아무리 어르신이 우리 아버지 뻘이라도
꼬맹이라니... 그날 들은 말 중에 가장 슬픈 말이었다.
그날부터 난 그 어르신에게 꼬맹이가 되었다.
그날 이후로 데이근무 때 그방 담당이 되면 이전보다
대화가 늘었다. 밤 늦게까지 스탠드를 켜놓고 책을 보시다가
내가 가면 꼬맹이가 밤에 잠도 안 자고 고생한다고
책 읽는 걸 멈추시고 잠을 청하셨다.
나뿐 아니라 다른 선생님과도 대화를 하셨다.
그렇게 어르신은 우리와 소통하셨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읽으시던 성경책을 더 이상 읽지
않으셨다. 성경책이 라디오로 바뀌고 같은 방 어르신과
대화가 많아지셨다. 프로그램 참석도 잘하셨다.
그 어르신은 부부가 같이 입소하셨는데,
아내분은 우리 위층에 계셔서 두 분이 만나는 날은
강당에서 프로그램이 있는 날이나 일요일 예배가
있는 날이다. 두 분이 부부라서 같이 앉으시도록 하는데,
어느 일요일, 그날은 내가 예배에 참석하는 당번이었다.
여느 때처럼 두 분이 나란히 앉으셔서 예배가 시작되길
기다리시는데, 보통 때는 별 대화도 안 하시던 분들이
말씀을 나누셔서 본의 아니게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집에 가고 싶다"
아내분이 말씀하셨다.
"이제 우리 집 없다 여기가 우리 집이라 생각해라"
"여기 우리 집 아니다"
"안된다 애들 고생한다 쓸데없는 말 하지 마라"
어르신도 집에 가고 싶으실 텐데, 집에서 지내고 싶으실 텐데
자녀들 고생할까 봐 아내분에게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걸
보니 같이 있던 선생님들까지 마음 아파했다.
언젠가 내가 어르신께 여쭤봤다.
"어르신, 아내분이랑 자주 못 봐서 서운하시죠?
보고 싶으시면 말씀하세요 안 바쁘면 잠깐 같이 갔다 와요"
"어마이가 정신이 없어 나도 못 알아봐"
"저번에 알아보시던데요?"
"잠깐뿐이야 아들도 몰라봐"
"어르신 보면 알아보실 거예요 남편 왔어? 하실걸요"
"몰라 가끔씩 찾을지도... 혹시 찾으러 다닐까 봐 같이 왔어
내가 저이보다 오래 살아야 돼"
"두 분 다 오래 사실 거예요"
그렇게 대화도 나누고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보호자와 면회 후 어르신이 층을 옮기신다고
하셨다. 경치가 좋은 2층으로 가신단다.
우리 층은 1층이라 햇볕도 들지 않고 창밖에 나무밖에
없는데 2층은 햇볕도 잘 들고 창문으로 보면 정원이 한눈에
들어왔다.
보호자가 원했는지 짐을 싸는 동안 어르신은 불만이
가득했다.
"어르신 여기보다 좋은 데로 가시는 거예요 바로 옆건물에
아내분도 있어서 자주 만나실 거예요"
앞 침대 어르신도 서운하지만 마누라 있는 곳에 가는 거니까
잘 가라고 배웅하셨다.
그렇게 어르신은 옆건물 위층으로 가셨다.
다음날부터 위층 선생님들이 수시로 우리 층에 오셨다.
어르신이 간식을 찾으신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층에선 어르신이 간식을 찾지 않으셨고
그나마 몇 개 있는 것도 다 같이 싸서 보냈는데 더 있다고
하신다는 것이다.
마치 어르신이 우리 층에 처음 오셨었을 무렵의 어르신
같았다. 그 층의 선생님들이 어르신 때문에 힘들다고
할 때마다 조금 있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계속 말을 걸라고
알려주곤 했다. 그러다가 며칠 뒤 어르신이 입원하셨다는
얘기를 들었고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야간 근무 때
어르신이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그층 선생님에게 들었다.
우리 층 선생님들도 다 알게 되었고,
"그 어르신 계속 우리 층에 계셨으면 안 돌아가셨을 텐데"
차마 어느 누구도 입밖에 내지 못했던 말을
어느 선생님이 말했다. 그 누구도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지만, 침묵이 무얼 뜻하는지 우린 알고있었다.
다행히 아내분은 어르신 부재에도 잘 지내신다고 하셨다.
혹시라도 아내분이 찾을까 봐 아내분보다 조금이라도
오래 사셔야 된다고 하셨는데....
이 00어르신, 아내분은 위층선생님들께서 잘 보살펴주실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그곳에서 잘 지내세요
요양원에 왔다는것부터가 어르신에게는
큰 스트레스일것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되도록이면 어르신의 침실이나
층이동은 자제했으면 좋겠다.